[사람과 향기]/▒ 문학의향기 ▒

[스크랩] 한용운시인의 시

피츠로이7 2007. 6. 2. 08:53

    비밀(秘密)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밀은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나의 꿈


    당신의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이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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