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山是山, 水是水...

2007. 6. 8. 18:15[사람과 향기]/▒ 삶 의 향 기 ▒

    山是山, 水是水 (산시산, 수시수) 山不是山, 水不是水 (산불시산, 수불시수) 山是水, 水是山 (산시수, 수시산) 山是山, 水是水 (산시산, 수시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믿었더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구나.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라고 보이는데,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로구나. '산과 물'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 노래는 노장사상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의미를 깊고 높은 수준의 선승이 쉽게 풀어준 간결한 말입니다. 그러나 쉬운 듯한 이 노래의 의미도 아는 만큼 느끼고 깨달은 만큼 알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 줄과 넷째 줄은 문장의 내용만으로는 똑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문장이지만, 노래를 읊은 이의 마음 속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를 단계별로 표현한 말이고 가장 높고 깊은 수준에 이르러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귀한 원점에서 느끼는 산과 물은 처음과 전혀 다른 차원의 산과 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표현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이 바로 틀리게 되는 그런 단계인 것입니다. 첫째 줄에 나오는 눈에 보이는 산과 물을 알기 위해서 보이는 현상의 느낌에 그치지 않고 선(禪)수행을 계속해 나갈 때, 둘째 줄처럼 뒤집어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릅니다. 서양철학에서 데카르트가 도달한 단계를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데카르트는 기존의 모든 지식을 의심하고 비판했는데, 최후에 가서는 이러한 의심을 품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도달하고 이것이 철학의 근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선사는 山은 山이고 물은 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믿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산과 물이라는 엄연한 실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산과 물은 우리의 눈에만 산과 물로 보일 뿐 가장 미세하게 분해된 최소의 모습은 空인 것입니다. 선사는 산과 물의 실체를 본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본래 형체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산과 물의 경계가 없어진 것입니다. 산이 물일 수도 있고 물이 산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만물이 하나로 보이는 것입니다. 나와 우주가 하나이고, 나와 남이 다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라고 느꼈다는 것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선사는 다시 감격적인 해탈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원점으로 회귀한 이 단순한 표현은 해석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불교의 표현으로는 '以心傳心'일 뿐입니다. 말은 眞理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사가 읊은 '산과 물'은 물질적으로는 처음과 나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사는 물질적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선사가 느꼈던 마음을 성철스님께서 물은 것입니다. 원각(圓覺)이 보조하니 적멸(寂滅)이 둘이 아니다. 보이는 만물(萬物)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眞理)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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