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을 바라본다.

2007. 10. 18. 09:13[사람과 향기]/▒ 삶 의 향 기 ▒

언제부터인가 신자유주의의 늪에서 물신의 포로가 되어가는 대한민국을 본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엔 국가가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주입시키려고 했다면, 신자유주의 현대 사회에선, '자본'이 국민들에게 아무 생각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의 광폭한 힘은 인간 위에 군림하여 인간을 짓밟고 무시하고 도구화하고 있다.

 

노동의 유연성으로 파이를 키워야 다수의 민중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물신의 자본주의의 논리 하에,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낱같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고,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경쟁력'이란 미명 하에 '해고'의 위험에 시달린다. 하루 앞의 삶을 예측할 수 없이 내던져서, 파이를 키우기 위한 부품으로 '소모' 되고 있다.

 

현재에도  4%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수의 비정규직과 서민들에겐 커진 파이의, 작은 부스러기일망정 그 성장의 '단 맛'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피폐한 육신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이런 경제 문제의 해결은 분명 시대적 요청이다. 여/야의 많은 정치인들이 대선의 화두로 경제를 선택했고, 그 경제를 일으키겠다고 장담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듯, 속는 셈 치고라고 믿어보고 싶을 정도로 현실이 절망적이지만, 그들의 논리 역시 광폭한 신자유주의에 천착해있거나, 말로만 떠드는 무책임함과 맞물려있다. 그래서 그들에겐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 

 

내가 문국현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그의 말은 그의 삶 자체였다는 것, 이것이다.
모든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직원을 해고하는 것만이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편승했을 때, 문국현은 홀로 외롭게 사람중심의 패러다임, 그 위에 서 있었다.

 

놀라운 것은, 개발독재아젠다가 여전히 판치고 있던 10 여년 전 부터 '사람'의 중요성을 통찰한,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기업 경영에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알려져있듯, IMF 당시  단 한명의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평생교육 시스템 식으로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선택했다.

100만 실업자가 거리를 헤매고 한강 다리 위로 올라가 몸을 던질 때, 그런 그들을 등 떠밀었던 숱한 기업인과 그런 그들을 품에 안고 끝까지 그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문국현이 있었다. 모두가 안된다고 했지만 그것이 정말 안되는 일이었는가. 사람을 안는 일이 기업인으로서 정말 바보같은 짓이었는가. 정말 다 같이 망하는 일이었는가.

 

'사람'을 중시하고 '사람'에게 투자한 결과, 해고와 비정규직 없이 유한킴벌리는 매출 10 배를 늘린 1조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회공익실현기업 국내 1위이며, 아시아와 선진국에서조차 벤치마킹하는 기업이 된 것이다. 처녀때 입사한 여직원이 아이를 대학에 보낼 때까지 다닐 수 있는 기업이 되었고, 복지와 교육 시스템으로 직원 모두에게 평생 직장이라는 일터가 된 것이다. 세계 시장에 모든 제품이 다 개방되어도 유한킴벌리제품만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세간의 말처럼, 아시아와 세계가 인정하는 뛰어난 경쟁력까지 갖추었다.

 

문국현은 해낸 것이다. 기업과 직원이, 사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공생하고 번영하는 신패러다임의 시대를 그 암흑기에 열어간 것이다. 세계적 CEO인 GE의 젝웰치가 < 문국현 같은 기업인이 1000명만 있으면 한국사회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듯이, 문국현이 새로운 가치를 선포한 것은 한국 대선이 최종지향점이 아닌, 전세계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대한 철퇴며 저항으로서의 선언인 것이다.

 

승자독식의 사회를 지향하고 정의와 법치를 조롱하는 이 사회의 늪에 발을 담그고 , 나 역시 그 경쟁의 늪에서 지금보다 '더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허나 문득 뒤돌아서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젖는다.  뭔지 모를 박탈감이 엄습한다. 설령 이전보다 조금 더 수입이 나아졌다 하여 만족을 주지 않는다. 왜? '더 가지지'않으면 뒤쳐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부품'처럼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건강하고 풍요로워지는 대신 피폐하고 척박해지는 내 영혼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물신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희망이다'란 단지 구호가 아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 문국현의 삶, 그 자체이다. 마른 대지에 단비를 적시듯, 사막 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나는 그래서 기쁘다. 문국현이 아닌, 문국현의 삶과 가치관, 사람중심의 패러다임을 사랑한다. 너무나 가려웠던, 그러나 내가 손을 뻗어 긁으면 할퀴고 상처내어 피투성이가 되었던 그 부분에 이제 새 살이 돋는다.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단지 대선주자 문국현이 아니라, 천민자본주의 속에서 병들어가는 한국사회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의 파고에서 신음하는 지구촌 전세계를 향한 '새로운 가치' 선포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출현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