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에겐 누이 없고 그 바다엔 우체국 없네

2008. 7. 26. 08:15[사람과 향기]/▒ 문학의향기 ▒

» ▷ 일러스트 이림니키.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스무 살 때 쓴 시 <낙동강>의 한 부분이다. 이 시가 그리고 있는 대로라면 우리 아버지는 강에서 목선을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거나 뱃사공이어야 한다. 또한 아버지에게 그물 한 장을 물려받은 시 속의 ‘나’는 이 시를 쓴 안도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그물을 물려주기는커녕 그 당시 경기도 여주에서 수박농사를 짓던 농부였고, 낡은 목선을 소유했거 나 수리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나는 요샛말로 뻥을 친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 이 시를 쓰는 동안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강은 물이 깊은 낙동강이 아니었다. 나는 낙동강 의 지류의 하나인 예천의 내성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 냇가에 시의 화자를 세워두었을 뿐이다. 그곳은 예나 지금 이나 수심이 얕아 배를 띄울 수 없는 냇물이다. 시의 제목 역시 뻥이라면 뻥이다

나는 낙동강이라는 제재를 붙들고 ‘할아버지-아버지-나’로 이어지는 삼대의 면면한 핏줄을 노래하고 싶었고, 그물 한 장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음속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자 했다. 관계를 상징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인 그물을 어떻게든 이 시에다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아니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어부로 둔갑을 시킬 수밖에 없었 다. 그렇다면 나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시로 말했으니 사기를 친 것인가? 나는 시인으로서 진실하지 않은 뻥쟁 이인가?

시적허구 속에서 노래하고
연출가·배후조종자가 되라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 화자는 때로 ‘서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 ‘서정적 주인공’ ‘페르소나’ (persona)와 같은 용어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시인과 화자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하 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습작기에 있는 사람일수록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시인의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안타깝게 도 우리의 문학교과서는 ‘소설은 허구’라는 명제를 강조하면서도 ‘시는 허구’라는 말을 기술하는 데 인색하다. 모든 시가 허 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신변잡기 같은 사사로운 글을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소한 체험은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 을 우리는 시적 허구라고 부른다.


» ▷ 일러스트 이림니키.
오규원의 말대로 “시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가 아니다. 시 속의 ‘나’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 어디까지나 창조적 공간인 작 품 속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나’는 객관화된 ‘나’이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국면 속의 형식화된 인간으로서의 ‘나 ’이다.” 따라서 일상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때는 일상 속의 ‘나’가 아닌, 구체적 경험 속의 ‘나’를 그리는 시인의 형상적 시각 이 필요하다. 시인은 현실 속의 ‘나’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나’를 살려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형기는 또 “사실의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듯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신은 ‘사실’ 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 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물론 진실을 노래할 기력도 사라진다. 그의 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 그날 있었던 사실만 쓰려는 아이는 일기에 쓸 게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쩔쩔매게 마련이다.)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당신은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화자를 시의 무대 위로 내보내 놓고 화자의 뒤에 숨어 배후 조종 자가 되어야 한다. 배우(화자)의 연기가 서툴거든 호되게 꾸짖어라. 그래도 배우가 영 탐탁지 않으면 당신이 배우의 가면을 쓰고 아주 잠깐 배우와 똑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로 나가보라. 관객(독자)의 눈에는 당신이 무대에 등장한 줄도 모르고 가면 쓴 배우만 보일 뿐이니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보다 진실 그리는 시인
실제-가공의 사잇길 걸어야

우리 현대시의 훌륭한 배후 조종자인 김소월과 한용운은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에서 여성 화자의 입을 빌려 이별의 정 한을 멋들어지게 노래했다. 고은의 가계에는 실제로 누이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초기 시의 화자는 <폐결핵> <사치> <작별 >과 같은 시에서 실제로 없는 누이를 여럿 거느리는 포즈를 취하면서 소름 돋도록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대학 4학년 때 겨울,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나는 혁명에 실패하고 서울로 잡혀가는 전봉준을 그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 다. 신춘문예가 입을 모아 요구하는 ‘참신성’을 공식처럼 외우고 다니면서도 나는 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80년대라는 시 대와 시를 어떻게 결합할 수 없나, 하는 것이었다.(캠퍼스 안에는 정보 경찰들이 합법적으로 방을 얻어 드나들던 시절이었 다. 문학의 밤을 준비하면서 그 이름을 ‘이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시’로 내걸었다가 ‘어둠’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지는 사람들 과 고된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그 흔한 ‘어둠’의 은유 하나도 허락되지 않던 때의 시는 그에 맞서기 위해 ‘어둠’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무렵에 읽은 책 중의 하나가 재일사학자 강재언이 쓴 <한국근대사>였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책의 뒤표지에 는 한 장의 조그마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을 설명하는 짤막한 한 마디,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나는 노트 한쪽 에 또박또박 적어 두었다.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고치고 그걸 제목으로 삼아 학교 앞 자취방에 엎드려 시를 썼다. 동 학농민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건드리는 몇 가지 허구의 재료들을 모 았다. 전봉준이 전북 순창의 피노리에서 체포된 시기는 음력으로 정월이었다.

그 어느 책에도 서울로 압송되는 동안 눈이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역사는 압송 시기를 음력 정월로 적어 놓았으니 이걸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시의 배경에다 눈을 퍼부어 대기로 했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시는 시가 끝날 때까지 눈이 내린다. 만약에 앞으로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을 영화로 찍는 감독이 있다면 반드시 눈이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잡을 것 같다. 시적 허구는 역사적 사실보다 생동감 있는 진실을 보 여주므로.


»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몇 해 전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를 발표한 후에 독자들한테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그 바닷가가 도대체 어디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 바닷가를 지나다가 우체국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혹시 이 시의 배경이 그곳이 아니냐고 물 어오는 분도 있었다. 정보통신부에서도 연락이 와서 그 바닷가 우체국의 위치를 알려주면 시비를 하나 세워보겠다는 것이 었다.

아아, 나는 그분들을 모두 실망시키고 말았다. 나는 가끔 변산반도 쪽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데, 그 바닷가 언덕에 있는 몇 몇 낡은 집들에 매혹되어 오래오래 그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게 죄였다. 그 언덕 위의 낡은 집 문앞에 빨간 우체통 을 세워두고, 우체국장을 출근시키고, 우표를 팔고, 우체부의 자전거를 굴러가게 하고,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거는 상상을 한 죄!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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