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 선선, 투루판, 하미, 돈황 여행 정보

2010. 8. 18. 16:37[포토 갤러리]/▒ 여행갤러리 ▒

선선 관광지 정보

 

 선선

타클라마칸 사막의 황량함 가운데 푸르른 녹지로 빛나는 아름다운 도시!
중국 타림분지 남동쪽의 고대 오아시스 국가 누란(樓蘭:로우란)과 선선(鄯善:산산)이 있던 작은 도시이다.

실크로드 서역남도(西域南道)에 자리하고 있어 동서무역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가장 동쪽 끝이라고 전해진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시속의 사막이라고 불리는 쿠무타크 사막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인구 20만, 면적은 3.98만 평방미터 정도이고 포도와 하미과 등 과일의 당도가 높고 맛있어 유명하다.
 
  쿠무타크사막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시로 연결되는 모래 사막!
쿠무타크(库木塔格)는 역사적으로 실크로드의 일부로써 동서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너무나 특색있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현재는 사막공원형식으로 조성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쌍봉낙타 보호 구역이며 날로 심각해지는 사막화 현상이 전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오늘날 "녹불퇴,사부진(綠不退,沙不進)"이라는 기이한 사막화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누란왕국이 사막에 휩쓸려 갈 때 누란의 공주가 자신이 인어(人魚)가 되어 쿠무타크 사막에 영혼을 바칠테니 왕국을 지켜달라고 소원하여 그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바람결에 따라 물결치는 곱고 아름다운 모래 사막에서 사막차의 스릴도 느낄 수 있고, 낙타를 타지 않아도 무리없이 걸을 수 있기에 사막 언덕 위까지 걸어올라가는 경험도 해 볼 만 하다.

또한 선선의 역사와 문화, 특산을 주제로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래성, 모래조각상들이 있어 볼거리도 다양하다. 사막 바다의 인어인 누란의 공주상이 인상적이다.

 

 

하미관광지 정보

 

 하미
하미(哈密)는 신강위구르자치구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15.3만㎢의 면적을 지녀 신강 전체 지역의 9%를 차지한다.
37개 소수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고, 총 인구는 53만명인데 그 중 위구르족이 32%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기후는 매우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으며 북으로 빠리쿤 초원지대가 펼쳐져 특히 여름이면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한 남부의 분지지형은 당도높은 대추와 하미과를 재배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하미과

 


 
 빠리쿤 초원
해발2000m의 고산 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빠리쿤 초원은 하늘과 초원, 그리고 붉은색의 지붕이 인상적인 예쁜 별장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특히 여름철에 방문하면 마치 엽서 사진처럼 환상적인 경치에 두 눈과 마음까지 확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백석두(白石头)라는 관광지역도 있는데 범상치 않은 하얀 돌과 옛날 이 지역 부족의 공주와 청년의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동상을 볼 수 있다.
카자흐 족 거주지역으로 승마체험도 할 수 있는데 종종 말에 오르기 전후로 가격을 바꾸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말을 타기 전에 꼭 가격흥정을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이 곳의 아름다운 풍경은 전세계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빠리쿤 초원

 


 
 
 회왕릉
하미국은 17세기부터 약 200여년간 청나라의 위탁을 받아 이 지역을 통치했던 작은 나라로 왕과 왕비 및 왕족들의 왕실묘가 바로 "회왕릉"이다.

왕족이 이슬람을 믿는 회족이었기 때문에 이슬람 양식의 관과 건물, 사원이 있고, 이 이슬람 사원 안에서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과 공휴일마다 예배가 이루어지며 이슬람 신도의 경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는 사원에는 총 108개의 기둥이 있는데 전통적인 이슬람 양식이라고 할 수는 없고, 아마도 불교의 영향이거나 황제의 수라고 불리는 9를 암호처럼 숨겨놓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약 100여년 전에 민족의 화합을 기원하며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도 하나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왼쪽 지붕은 만주식, 우측 지붕은 몽고식이다.

 

회왕릉

 

 

 

 

 
 하미박물관
하미박물관은 하미시 천산동로(天山東路)에 위치하며 1988년에 건축되었다.
하미고대문명에 관한 문물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는 종합박물관으로 총 1200여개의 전시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청동기(靑銅器), 채도기(彩陶器), 의복과 장신구(服飾)및 미이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문물전시관(历史文物陈列)", "언부라극묘지출토문물전시관(焉布拉克墓地出土文物陈列)" "오보묘지출토문물전시관(吴堡墓地出土文物陈列)"등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으며 총 면적은 500㎡에 이른다.
 
 
돈황 관광지 정보

 

 돈황고성
돈황의 시가지에서 25km가량 빠져 나와 남동쪽, 명사산이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성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이 영화세트장으로 유명한 돈황고성이다.

1987년 중일합작으로 대형 역사영화 <돈황>을 찍기 위하여 만들어진 세트장으로 송대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원본으로하여 사주고성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그 건축면적이 1만평방미터에 달한다.

돈황고성의 건축풍격은 서역의 운치 속에 동,서,남으로 난 세개의 성문과 성루가 우뚝 솟아있다. 성내에는 고창, 돈황, 감주, 흥경, 변량 5개의 주요도로를 조성해 놓았으며, 도로 양편으로는 불당과 전당포, 창고, 주점, 주택 등이 지어져 있다.

돈황고성은 당송시기의 서북 요충지인 돈황의 웅장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중국 서부건축예술 박물관이라 불리고 있다. 이곳은 중국 서부의 최대 영화 촬영기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봉신연의> , <신용문객잔> 등 2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 교통: 투어버스 이용 / 택시(20분 소요)이용

 

돈황시내의 거리의 악사

 


 
 
 월아천
월아천은 명사산 안에 있는 초생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로 남북길이가 약 150m, 폭이 50m 정도다. 서쪽에서 동으로 갈 수록 수심이 깊고, 제일 깊은 곳은 5m 정도인데, 물색이 맑고 파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월아천의 발원지는 돈황 남쪽에 솟아있는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만든 당하(黨河)라는 이릉의 강으로 이 물이 지하로 흘러 비교적 저지대인 이곳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매년 광풍이 불어도 이곳 만큼은 좀처럼 모래에 덮이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졌고, 옛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칠성초와 같은 생물이 평생 늙지 않아 '만천(萬泉)'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쉽게도 최근들어 당하(黨河)와 월아천의 사이가 끊겨져 인공적으로 물을 대고 있다.

모래산에 둘러싸인 채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어우러진 풍경은 사막 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이런 월아천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일몰때 명사산에서 바라보면 정말 예술이다. 현재는 월아천 옆에 누각을 세워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가 주는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 개관시간 : 08:00-일몰까지

 

월아천

 

 

 

 

 

 

 

 

 
 
 양관
돈황시에서 남서쪽으로 70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대에 만들어진 실크로드 길목으로 서역 남도(南道)의 입구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양관하면 당대 시인 왕유가 남긴 "그대에게 한잔의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벗이 있겠는가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라는 시구를 떠올린다.

양관은 이미 오래 전에 파괴되어 지금은 단지 붉은색 모래산 위에 양관의 눈과 귀의 역할을 했던 봉화대만 남아 있다. 봉화대의 높이는 4.7미터, 길이는 8미터이다.

양관 근처에는 남호(南湖)와 포도길이 있어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며 이곳 민속문화를 탐방할 수도 있다.

 

양관

 

 

 

 

 

 

 

 

 

 

 

 

 

 


 
 
 서진벽화묘
서진시대 (265~317년)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고분군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지역이다.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 안에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 사진들이 사진첩에 끼워져 있고, 실크로드 관련 책자 및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묘실 안이 상당히 어둡기 때문에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관광에 임하며 전문 안내원의 인솔을 받아야 한다.
1600여년 전에 너무나 세밀하게 만들어 놓은 묘분을 보면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지하로 내려간 묘분 입구에는 벽돌형식으로 쌓아 만들어 놓은 대문이 있는데 벽돌 하나하나에 벽화가 새겨져 있고,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등잔을 놓았던 자리, 관을 두었던 자리 등의 흔적이 뚜렷하고, 부엌과 화장실 등 이승에서의 집처럼 구조를 꾸몄으며 도굴의 흔적이 있는데 그 기술이 치밀하고 교묘하다.
 
 
 막고굴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돈황에는 구법승, 대상, 병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때문에 경제적인 융성 뿐 아니라 돈황예술을 꽃피우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흔적이 바로 세계적인 불교유적지로 유명한 막고굴(莫高窟)이다.

둔황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 약 삼십분 거리에 있고, 굴 주변으로 가느다란 시냇물이 흐르며 주변은 온통 황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막고굴은 서기 366년 승려 악준(樂樽)이 명사산(鳴砂山)과 삼위산(三危山)에 이상한 빛이 있음을 알고 석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4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 화가, 역경사, 석공, 도공, 목공, 시주 들이 드나들면서 하나, 둘씩 굴을 팠으며 그렇게 파게 된 크고 작은 굴의 전체 수가 약 천 개 가량이 된다.


그 수많은 굴 중에서 17번이라 번호가 붙여진 굴 속에는 우리나라 신라 혜초 스님이 남긴 '왕오천축국전'이 다른 보물들과 함께 잘 보전되어 있다. 1,000개의 굴이 있다 하여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굴마다 불상의 형태나 벽화의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어두운 동굴의 천장과 벽화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림에는 한결같이 어떤 종교적 고행이 느껴지며, 또한 각 굴의 천장화는 매우 정밀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와 예술의 피땀어린 결정체이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경동의 유물들은 일찍이 약탈로 인해 수만점이 해외로 유출되어 현재에는 10여개국의 박물과과 도서관에 분산 보관되고 있다. 이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막고굴문화재의 보호와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1961년에는 국무원에서 막고굴을 중점문화재로 지정하고 막고연구원을 설립하여 보호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가는방법 : 서역빈관 앞이나 돈황반점 부근 미니버스 탑승.
 

막고굴

 

 

 
 명사산
돈황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명사산(鳴砂山)이다. 이 명사산은 돈황의 남쪽으로 5㎞ 떨어진 곳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래산으로 쌀알만한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형성된 산이라고 한다.

신사산(神沙山), 사각산(四角山)이라고도 하는데, 심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모래산은 거대한 소리를 내며, 가벼운 바람이 불어도 마치 관현악 연주를 하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산의 특징으로 鳴(소리낼 명), 沙(모래 사) 를 따서 명사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 미끄러지듯 내려오다 보면 발 아래에서 내는 모래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북 20KM, 동서가 약 40KM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산은 이름 그대로 모래결이 희고 가는 정도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명사산 위로 올라가 바라보는 저녁 일몰의 풍경은 천하의 절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또 이때는 아름다운 모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체와 모래의 마찰로 인하여 일어나는 불꽃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기온이 매우 높아서 오후 4시 이후에 가는 게 좋으며, 명사산안에서 낙타를 타고 갈 수 도 있다.


▷ 가는방법 : 시내에서 명사산행 미니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결코 편한 방법은 아니므로 왠만하면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약 15위안 내외로 요금이 나온다.

▷ 개방시간 : 8시 - 일몰때까지
 

명사산

 

 

 

 

 

 

 

 

 

 


 
투루판 관광지 정보

 

 고창고성
황량함 속에 옛 고대인들의 생활자취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옛 고창왕국의 유적지로 후한이 멸망한 후 번성했던 투루판의 중심지였다. 투루판시 동쪽에서 40㎞ 떨어진 화염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불타오르는 듯 화염산을 배경으로 폐허만 남아있다. 기원전 1세기에 고창벽이 지어졌으나, 13세기에 전쟁으로 훼손되었다.

교하고성과는 달리 흙벽돌로 축적된 사각형으로, 벽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버들가지나 마른풀을 섞었는데 황국이 멸망한 후 주위 농부들이 벽돌을 깨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폐허가 된 것이라 한다. 지금은 사원과 궁전 유적 이외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파손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성윤곽은 남아 있다.

고창고성은 장방형으로 매우 크고 길이는 5㎞이며, 외성, 내성, 궁성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투루판
투루판은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일부분으로, 1975년 7월 15일,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성립된 도시이다. 투루판이란 위구르어로 '패인 땅'이라는 뜻이다.

투루판 분지는 이름의 뜻만큼이나 중국에서 가장 표고가 낮은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애정호의 수면은 평지보다 154미터나 낮다.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을 연출해 뒤에 둘러진 천산의 주봉과 함께 신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서한(西漢)시대부터 오랫동안 서역 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이곳이 예로부터 발달하게 된 것은 북서쪽의 우루무치와 남서쪽의 카슈가르, 남동쪽의 감소성(甘肅省)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매우 더워서 "화주(火洲)"라고도 칭해지며, 기후의 특성상 포도의 생산지로서도 유명하다. 또한 역사적 유물과 진품이 많아서 중국과 해외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매년 방문하고 있다.

총 면적은 6.97㎢이며, 5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위구르족, 한족, 회족 등 25개의 민족이 살고 있으며, 그 중 위구르족이 전체 인구의 73%를 차지한다.

또 투루판이 오아시스 도시이기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아 걸어서도 도시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데, 거리에는 차보다도 양이 너 많이 지나다니며, 그 분위기가 독특한 이슬람문화와 어우러져 이국적이고 색다르다.

최근에는 새로 신설된 천산지구(天山地區)로 통하는 철도의 주요역(驛)이 되어 옛부터 서역의 교통요지였던 명성을 유지해 가고 있다.

 

투루판의  위그루족들

 

 

 

 

 

 


여행을 위한 메모
◇ 기차가 지나가는 길이 모두 사막이므로 공기가 무척 건조하다. 미리 충분한 광천수와 과일 등을 준비하자.

◇ 사막의 모래바람이 무척 심하므로 모자와 마스크를 필히 준비해야한다.

◇ 사막의 특성상, 밤과 낮의 일교차가 무척 심하다. 밤에는 대부분 영하로 떨어지므로 충분한 옷을 준비한다.

◇ 투루판 시내 자체는 무척 아담하고 좁다. 따라서 시내에서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 보다 자전거를 빌려 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 투루판은 '화주(火洲) : 불의 땅'이라는 칭호가 있을만큼 여름 더위가 심한 곳으로 한낮온도가 49.6도에 달하기도 한다. 정오에는 지표온도가 올라가 80도씨까지 올라 '모래 위에서 계란을 익힌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그 더위 속에서도 여행객들이 7,8,9월을 투루판 여행의 가장 좋은 시기로 꼽는 것은 투루판의 상징적 과일인 포도가 익는 철로 푸른 포도밭의 광경을 볼 수 있을 뿐아니라 포도축제를 즐길 수 있기때문이다.

◇ 투루판 하루 여행코스는 소공탑-칸얼정-천불동-고창고성-화염산 순이 좋다. 오전에는 소공탑과 칸얼정, 천불동을 관광하고 오후에는 고창고성과 화염산을 여행하는것이 좋다. 중간 가장 더운 시간에는 포도구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루판 포도를 맛보는 것도 좋다.

◇ 하루 코스로 투루판의 유명관광지를 알차게 여행하고 싶다면 택시를 빌리는 것도 좋다. 요금합의만 잘 되면 기사가 기꺼이 가이드 역할을 해줄 것이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겠지만 관광지를 헤매지 않고 돌아볼 수 있는 것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격은 인민폐 200위안 내외면 적당하다.
 

낙타대상의 모형

 

 

 

 


 
 화염산
약 1km에 이르는 거대한 산으로 투루판 분지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고창고성, 아스타나고성, 백저커리커즈불동을 볼때 그 뒤로 서있는 산이 바로 이 화염산이다.


동서 길이가 100km, 남북 길이가 9km에 달하며 최고 높은 봉우리가 해발 851m다. 산은 대부분 홍사암으로 되어 있고, 정상위의 풀도 길게 자라지 못한다. 또 약 40년 전에는 이곳 극단의 최고온도가 48.5도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으로 기록되기도 했었다. 그때 지면의 온도는 82.3도에 다달았고, 이렇게 화염산의 온도가 높은 것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분지가 태양을 향해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인은 이 산을 "구즈로다고", 즉 빨간산이라고부른다. 또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화염산의 불길 때문에 고초를 겪는 사건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천산의 억센 힘줄이 불끈솟아 이루어졌다고 하는 이 산은 불길이 치솟는 듯이 보여 그 이름도 화염산이라 붙여지게 되었다.
 

 
 아스타나고분
고대 고창국과 당나라 귀족들의 공동묘지로, 대략 3-8세기에 걸쳐 만들어졌다.

아쓰타나는 "휴식"을 의미하는 위구르어로, '영원히 잠든 묘지' 또는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1916년 외국 탐험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묘는 서진태시 9년(273년)의 묘이며, 가장 최근의 것은 당대력 6년(77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발견된 미라들은 현재 우루무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당나라때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개관시간 : 9시 - 21시
▷ 입장료 : 10원 (중국인 기준)
 
 
 천불동
투루판 여행 중에서 빼놓지 말고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원명은 배제클리크 Bezeklik 천불동이며, 백자극리라는 말은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으로, 백자극리천불동은 투루판시에서 45km 떨어진 화염산중단의 목두구(무르투크)라는 강 계곡 서쪽 낭떠러지에 조성된 굴사원이다. 고창고성에서 15km 떨어져 있으며, 신장시내와 교외지역에 남아있는 불교석굴사원중의 하나다.

이 굴사원에는 총 83개의 석굴이 있고, 현재 57개가 남아있다. 그 중 벽화만 40여개고, 총 면적은 1200평방미터에 이르고 있어서 투루판에 현존하는 석굴중 제일 크고, 벽화의 내용도 가장 풍부하다. 벽화의 내용을 보면 주로 대형 입불상을 중심으로 한 "불체생경변"의 이야기와 그 외의 불교이야기, 천불상 등이 대부분이다. 그림을 통해 불법을 전파하려던 노력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남북조 후기이며, 그 후로 당과 오대, 송, 원 이라는 7세기의 시간을 거친 것으로 고창지역의 불교를 대표하는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교하고성
투루판에서 가장 볼 만한 곳 중 하나다. 투루판시 서쪽 교외로부터 1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는 고성 유적지로, 도시의 길이는 1650m이고, 폭은 300m이다.

이 곳은 고대 서역성곽 제국 중의 하나인 교하국, 차사전국(車師戰國)의 도시로 서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이었다. 교하국은 실크로드의 천산남로와 천산북로에 위치하여 교통의 요충을 차지했던 왕국이다. 또한 진한시대부터 차사전국의 수도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인구 6500명을 가진 실크로드 천산남로의 교통 요충지였다.

14세기 전반 원나라 때에 전쟁으로 훼손되었으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이 되고 있는 미개간 도시이다. 최근 고고학자가 고성을 발굴하는 도중에 최초로 지하 사원과 차사국의 귀족무덤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바다 진주, 사리 등의 진귀한 물품들도 출토되었다.

교하고성은 글자그대로 두 하천사이로 치솟은 30M의 벼랑위에 새워져 있고, 가로 300m, 길이 1,650m의 고성은 남쪽에 입구가 있으며 교하고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중앙의 전망대까지 도로가 곧게 뻗어 있다. 고성 안에는 불탑과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머물렀다는 불전, 사원, 관청, 감옥과 민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많은 탑의 잔해가 남아있어 신비스런 분위기이다.

비록 잔해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이 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기 때문에 세월이 가도 오래도록 보존될수 있었던 것이다.

 

교하고성

 

 

 

 

 

 

 

 

 

 

 

 

 

 

 

 

 

 

 

 

 

 

 

 

 

 

 

 

 

 

 

 

 

 

 

 

 

 

 

 

 

 

 

 

 

 

 

 

 

 

 

 

 

 

 

 

 

 

 

 

 

 
 소공탑
투루판시에서 동쪽으로 2㎞ 떨어져 있는 포도밭에 위치해 있는 신강 최대의 고탑(古塔)으로 이슬람양식의 독특한 양식의 탑이며, 매년 이곳을 참관,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청대 명장인 액민화탁(額敏和塔)이 청왕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울러 자신의 일생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은화 7000냥을 들여서 짓기 시작했던 것으로, 액민탑(額敏塔)이라고도 불린다. 액민화탁이 죽은 이듬해인 1777년에 둘째 아들인 소래만(蘇來滿)에 의해 완공되었다.

탑외부는 전부 청회색이며, 44m높이의 원형탑이다. 탑 안에는 72개의 나선형 층계가 꼭대기에 이어져 있다.

▷ 개관시간 : 9시 - 21시
▷ 입장료 : 25위안
 

 
 카레스
칸얼정은 중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만리장성, 남북을 잇는 대운하와 함께 고대의 3대 공청(공사) 중 하나로 꼽히는 수리시설이다. 2000년 전의 한(漢)대 이미 처음으로 시작되어 그 후인 수나라 실크로드를 따라 발전하여 중앙아시아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칸얼정은 지하수를 지면으로 끌어올린 방법으로 만든 수로로서 통계에 따르면, 투루판분지에 칸얼정이 1,237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853개이며 총 길이는 5,000킬로미터를 넘는다. 칸얼정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대략 3 ~ 8km 사이이며, 가장 깊은 곳은 90m 가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투루판에는 포도와 하미과가 맛있기로 유명한데, 이 칸얼정을 이용한 물로 재배가 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또 천연광천미용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용에 좋은 역할을 하는 성분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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