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왜 가나냐고 물으면...

2019. 2. 21. 21:41[알피니즘]/▒ 알 피 니 즘 ▒

사람들이 산악인들에게 묻는다. 산에 왜 가느냐고?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위험한 고산을 왜 오르느냐"고 진지한 눈길로 묻는다. '죽음의 지대'라 스스로 일컫는 험난한 고봉에 제 발로 올라가서는 다시 살아 내려오려고 투혼을 불사르는 산악인들의 모순된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이번 구르자히말에서 참변을 당한 김창호 대장 일행의 죽음을 두고서 그 궁금증은 더욱 고조됐다. 인터넷에서는 '무책임' '무모함'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는 댓 글이 쌓인다. 개인적인 산행에 왜 정부가 수습을 지원하느냐는 비난의 글도 이어졌다. 인터넷을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산악인들의 산행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등반과 탐험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지만,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왜 가족의 만류와 주변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무런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산을 오르려고 했을까. 인간이 산을 도전의 대상으로 삼은 지 250여년이나 됐고, 지구상의 고봉 대부분이 인간의 발아래 놓인 지 오래됐건만 전세계 고산에 산악인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등반은 산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행위이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류 최초로 8000m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이면서 그 공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수여하려던 올림픽 메달을 거절한 유일한 사람이다. 메스너는 "등반은 스포츠 경기와 다르다. 내가 오르려고 한 것은 14개의 정상이 아니라 그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14개 봉 정상에 집착하기보다 각각의 등반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올랐다. 낭가파르바트(8125m) 신 루트 등정, 에베레스트(8848m) 무산소등정, 8000m 3개 봉 연속 등정 등 그의 성취는 그대로 현대 등반사의 새 장을 장식했다. 특히 그가 이룩한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은 인간이 제 호흡으로 도달한 마지막 극점이라는 점에서 인류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오늘날 지구상에 인류가 개척할 미답의 정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개척자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의 산에 여러 미답의 길과 그 길을 통한 정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지에 따라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이 등로주의(登路主義) 정신은 비단 등반들뿐만 아니라, 하나의 정상만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의 삶에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등반활동을 스포츠 경기처럼 계량화해 평가할 수는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불확실성은 오르는 사람마다 다른 환경을 접하기 때문이다. 산과 등반가의 일차적인 관계 아래서 이뤄지는 등반 활동이 외적으로는 역동성을 가진 육체활동이지만, 이 행위가 지향하는 바는 내면의 세계다.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고산 거벽을 화폭 삼아 치열하게 자기의 길을 찾아나가는 등반가들의 모습은 오히려 창조적 행위에 가깝다. 그것을 통해 등반가들은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성취와 성찰을 경험하게 된다. 오르는 길이 험할수록 성취감은 더욱 커진다.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자연과 과학에 대한 도전이라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개인들의 자아실현 역사가 아니었던가?

 

서구 사회에서는 그런 역사적 경험이 풍부해 개인들의 다양한 모험활동에 대해 관대하다. 그러면서도 결과만을 포장해 본연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거짓된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어떤가?국립공원만해도 5cm 적설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국민의 소박한 겨울 산 도전을 통제하고 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하자 세계는 '극한의 위험에 맞선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라 추켜세웠다. 그 도전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1911년 남극점에 도달한 아문센의 탐험정신에서. 아니 1492년 신대륙을 찾아 나선 콜럼버스의 위험한 항해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도 가지 않은 구르자히말 남벽에 '코리안 웨이'를 만들려고 한 김창호 대장의 '위험한 도전' 8세기 중엽 파미르 고원을 횡단한 혜초 스님의 순례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고, 1962년 히말라야에 첫 발자취를 남긴 박철암 대장의 도전정신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들의 도전 자체가 미래를 향한 도약이었다. 따라서 김창호 대장의 죽음 이후에도 미지의 세계를 향한 산악인들의 여정은 멈출 수는 없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럼에도 산악인들은 여전히 '위험한데 왜 가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고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위험하니까 오른다.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다만 극복할 뿐이다."

 

글쓴이 : 남선우(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장 / 한국등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