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 남벽] 표고차 3,000m를 끌어올린 헝그리정신
한국산악재단 원정대, 세계 최난벽 8,200m 지점 도달
세계 최고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로체 남벽은 정오가 지나고 오후가 되면 항공기 엔진음 같은 공포의 강풍
이 불기 시작한다. 아마다블람의 추쿵쪽에서 시작한 바람은 미세한 모래 먼지를 동반해 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지나 로체 남벽으로 매일 밤낮으로 강하게 돌진한다.
한국 로체 남벽팀은 슬로베니아의 토모 첸센
루트로 등반 계획을 잡고 원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BC에 도착하여 김형일 부대장이 정찰한 결과 러시아
루트로 등반하자는 쪽이었으나 이충직 대장은 안전과 등정 우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시 고려해보자며 고심
하다가 며칠 후 대원 전원 합의를 통하여 토모 체센 루트로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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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공불락의 히말라야 거벽 로체 남벽 전경. | 세번째 도전하는 일
본팀과 협동으로 펼쳐
11월17일 한국팀은 김형일 부대장의 선등으로 의욕적
으로 도전했지만 막상 남벽과 마주치자마자 대원과 셰르파들을 무더기로 공격하는 낙석으로 부상을 입었다. 특
히 강기석 대원은 C2로 향하다 강력한 낙석을 맞아 팔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 원정대를 당황케 했다. 오전 10
시부터 6,300m 직벽에 매달려 한-일 합동으로 강기석 대원 후송작전이 시작되어 저녁 8시에야 BC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월18일. 낙석의 공포로 장비와 식량을 수송할 셰르파들이 대부분 카트만두로 하산했
다. 이제 우리로선 헝그리 정신으로 버텨온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오늘 강기석 대원과 나, 그리고 고소포터인 파
상보티가 정상공격을 위해 출발한다.
현재 루트작업은 C3(8,050m)까지 완료된 상태다. 자신의 등정
보다 팀의 등정을 위한 희생정신이 강한 성낙종 대원이 선두에 서서 루트를 개척해 8,050m 지점에 C3를 구축
하고 호흡기 후두각혈로 하산했다. 준비한 식량은 각자 간식 한 봉지와 1리터 수통에 가득 채운 김치, 알파미와
김 한 봉지이 전부다.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 우리가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날까지 먹을 식량이다.
고정로프가 시작되는 구간부터는 낙석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번 등반에서 제일 힘든 요인 중 하나
는 낙석이다. 낙석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 1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경 운행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등
반을 펼쳤다. 참외만한 낙석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등반 의욕을 상실케 했다.
C1까지는
고정로프가 2동이 깔려 있다. 일본대와 한국대가 따로 설치했다. 동일한 거벽 루트에 먼저 나가는 팀에 의한 낙
석 예방, 그리고 경쟁심리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와 신뢰 훼손을 예방하고자 협력등반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루
트개척에 한해 협력하며 산소, 장비, 식량 등 물량은 각 팀에서 별도로 운송하는 등 완전한 합동등반은 아니었
다. 이후 한국팀과 일본팀이 격일로 각 팀의 장비로 루트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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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2 사이트. 설사면의 눈을 파서 텐트를 설치하였다. | 일본팀은
일명 비너스 허리라고 불리는 바위의 오른쪽에 텐트 4동을 설치했고, 우리는 빙벽 왼쪽으로 텐트 3동을 설치했
다. 일본대는 여러 명의 셰르파들과 센다 대원과 겐모지 대원이 올라와 있다. 센다 대원은 나와 여러 번 루트작
업을 같이 했었다.
내일 C2로 향하는 일본대는 새벽 3시에 셰르파들이 출발하고, 대원들은 30분 뒤
에 출발한다고 한다. 한국대는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앞서가는 등반자가 가까이 있으면 무수히 많은 낙
빙과 낙석이 떨어진다. 그래서 30분 간격을 두고 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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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2 비너스 ‘옆구리’ 구간으로 접근하는 대원들. 남벽의 모든 낙석이 모여드는 통로다. |
19일. 새벽 2시30분 눈을 떴다. 새벽 3시쯤 되자 일본대 셰르파들이 바위지대를 주
마링하느라 분주하다. 새벽 4시 우리도 C2를 향해 출발했다. C1과 C2의 거리는 굉장히 멀다. 고소적응이 안된
상태에서는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굉장히 위험한 직벽과 오버행의 바위지대는 일본대 로프와 한국대 로
프가 3동 고정되어 있다. 여기는 층층이 오버행이 많고 바위가 날카롭게 각이 져 로프가 빨리 마모되고 절단된
다. 얼마 전에는 우리 셰르파 1명이 등반을 끝마치고 하강하다 로프가 끊어져 6~7m 정도 추락한 사고가 있었
다. 다행이 배낭을 메고 있고 다른 로프에 슬링을 걸고 하강해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
였다.
캄캄한 벽 밑으로 아이젠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헤드랜턴 불빛이 반짝인다. 이 비너
스 허리 구간을 지나면 설빙 구간이 나온다. 여기엔 낙석이 쉴 틈도 주지 않고 무수히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낙
석이 옆으로도 날아다닌다. 이 구간을 오를 땐 항상 위를 보고 떨어지는 낙석을 피하려고 준비한다. 오른쪽과
왼쪽에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쿨와르에는 계속해서 낙석과 낙빙이 떨어진다. 나, 강기석 대원, 파상 보티 3명이
각자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도를 맞추어 올랐다. 서로의 모습을 봐주며 격려의 손을 들어 주
고 서로 마음 속으로나마 파이팅을 외쳤다.
팔에 낙석 맞고 강행하다 끝내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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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C3(7,400m) 직전의 와이어사다리 구간으로 진입하는 대원들. | 트
래버스가 끝나면 80도 경사의 빙벽구간이 나온다. 쿨와르가 끝나는 깔때기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낙석이 제
일 심한 구간이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속도로 올라야 하지만 몸이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는다.
이 구
간을 넘어서면 설빙구간이 나오고, 삼각형 대암벽으로 향하는 빙벽으로 된 좁은 쿨와르가 나온다. 쉴 새 없이
소나기처럼 낙석 낙빙 세례가 퍼붓는다. 여기를 통과해 도달하는 C2는 설릉을 깎아 만든 캠프사이트는 좁고 동
굴 같다. 그 속에 한국팀이 3인용 텐트 1동과 2인용 텐트 1동을 설치했다. 한국팀 위쪽은 일본팀 텐트가 3동 설
치됐다.
20일 C2. 일본팀은 하루 더 쉬었다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는 C2에서 4시간 거리인
임시캠프의 3인용 텐트에서 하루 자기로 하고 거대한 대암벽 밑으로 트래버스한 후 직벽의 와이어사다리를 올
라 임시 C3에 도착했다.
21일 새벽 5시쯤 우리 대원들이 등반하고 있을 때쯤 일본대 셰르파들이 C3
에 짐을 데포하고 내려가야 하기에 길을 양보하고 그 뒤를 따랐다. 7,000m 지점에 있는 거대한 쿨와르는 등반
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구간이었다. 엄청난 양의 스노샤워와 낙석, 그리고 높은 고도에서의 혼합등반이다. 하켄
설치도 썩 좋지 않다. 이 구간을 통과하면 다시 직벽 구간이 나온다. 여기는 오전에는 응달이라 몹시 추웠고, 오
후나 되어야 햇살이 조금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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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2에서 임시C3(7400m)로 이동중인 대원들.
| 삼각형 대암
벽을 돌아올라 8,050m 지점의 C3 자리인 능선 끝자락에 도착했다. 여기도 다른 남벽 구간처럼 텐트를 설치하
기 어려운 곳이다. 일본대는 소복이 쌓인 설릉을 깎아 4인용 텐트를 겨우 설치했다. 한동안 캠프사이트를 찾다
가 간신히 직벽에 버섯처럼 붙어 있는 눈덩이를 깎아 3인용 텐트를 쳤지만 자리가 좁아 2인용이 되어버렸고 입
구는 벽면과 붙어버렸다. 아슬하게 공중에 떠 있는 형태가 되어 첫날은 전부 안전벨트로 확보한 상태에서 잠을
잤다. 그 좁은 자리에서 웅크리고 3명이 새우잠을 청했다.
22일. 강기석 대원은 컨디션이 안
좋아 아침 일찍 C3에서 BC로 하산했다. 밤새 마신 산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 날 고소포터인 파상 보티
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BC로 하산, 한국대는 이제 나만 혼자 남았다. 일본팀 센다 부대장과 셰르파 1명과 C3에
서 5피치 정도 트래버스한 후 정상부의 좁은 쿨와르로 진입하는 구간에서 로프작업을 계속했다. 해발 8,000m
가 넘는 무시무시한 구간이다. 예지 쿠쿠츠카가 여기서 추락사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채 직벽에 가까운 암벽을 트래버스했다.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고 하켄을 박아야 하는데 해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후 4시쯤 일본대의 셰르파도 컨디션이 안 좋은지 C3로 돌아갔다. 센다 부대장과 함께 쿨와르 중간지
점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한 후 C3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컨디션 저하로 하루 휴식을 취하고 24일 정
상공격에 나선다. 우리 팀으로서는 오늘이 마지막 정상공격이 될 것이다. 나와 일본팀 센다 부대장, 켄모지 대
원 3명이 한 조가 되어 정상공격에 나섰다. 왼쪽 능선은 유고슬로비아 루트이고, 오른쪽 능선은 러시아 루트다.
오늘 컨디션이 좋다.
쿨와르 중간에 산소통 하나를 걸어놓았다. 내려올 때를 대비해서다. 오늘은 바
람이 많이 부는 편이다. 양쪽으로 바위벽이고 우리는 좁은 골 안에 들어와 있다. 낙석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
다. 바람이 한 번 거세게 지나가면 낙석피하기에 바쁘다. 저 위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낙석은 무자비한 공포의
굉음을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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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2(7,100m)의 대암벽 구간. | 여긴 중간 중간에 직벽의 빙벽이 나
온다. 등반하다 수많은 낙석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헬밋과 몸과 마스크에 돌이 떨어진다. 그나마
작은 돌들이었지만 순간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됐다. 왼손으로 카라비너를 빼는 순간 엄지손가락과 카라비너
에 동시에 낙석을 맞아 피멍이 들었다. 센다 대원은 선글라스 오른쪽이 깨져서 금이 갔고, 켄모지 대원도 얼굴
에 낙석맞은 자국이 나 있다. 그런 상태에서도 서로서로 장비를 주고받으며 등반을 계속했다.
얼마
후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8m 정도 빙벽 구간을 오르기 위해 센다 대원에게 신호를 보내고 출발했는데 2~3m
올랐을까, 왼쪽 손목 10cm 위에 주먹만한 낙석을 맞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고 한동안 빙벽에 머리를 숙인 채
고통을 참았다. 그리곤 빨리 내려오라는 센다의 말을 듣고 그제야 다시 내려왔다. 손가락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
았다. 옷을 걷어 보니 살이 움푹 패였다. 센다도 말이 없다. 그렇게 10분 정도 몸을 추스르고 고통을 참은
후 다시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처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냥 옷으로 덮어 버렸다. 상태를 보니 두터
운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나 보다.
무전으로 들리는 BC 매니저 최준열 대
원의 절규와 다른 대원들의 걱정이 말이 아니다. 센다 대원에게 다시 오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50m 정도 선등
으로 로프를 고정시키고 그 다음 50m는 센다가 로프를 고정시켰다. 하지만 왼팔을 당기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어쩔 수 없이 센다, 켄모치 대원과 상의한 후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능력으로 최선 다했고, 결과에 만족
이후 한국팀은
로체 남벽에서 철수했고 일본팀은 다시 2차 정상공격을 시도하여 로체 정상(8,516m)을 100여m 남기고 8,
407m 지점까지 도달해 로체 남벽의 끝부분까지 ‘완등’했다.
로체 남벽은 신들의 땅에 헝그리 정신으
로 발을 들여놓은 우리들에게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여 실패라 생
각하지 않으며, 우리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에 겸손하며 ‘성공적인’ 등반이라 평가했다.
한편
으론 8,200m 고소에서 팔에 낙석을 맞았는데도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하고, 김형일 부대장, 최준열 대원, 성낙
종 대원, 강기석 대원 모두들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등반을 끝마치게 되어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대
원들을 잘 이끌어준 이충직 대장에게 감사드린다.
글 안치영 대원 / 사진 로체 남벽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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