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짓누른 죄책감…“날 두고 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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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 주검 찾
아 떠난 영국인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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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이언 우달과 캐시 오다우드 부부. 오른쪽은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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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8m 세상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밑에 보라색 점퍼를 입은 미국인 산악인 프랜시스 아르센티
예프의 주검이 9년째 외롭게 누워 있다.
1998년 5월 영국 출신 산악인 이언 우달과 캐시 오다우드 부부는 에베레스트 정상으로부터 240m 내려온 지점
에서 프랜시스를 만났다. 프랜시스는 추위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부부는 그와 한 시간쯤 얘기를 나누며 의
식을 잃지 않게 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결국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그를 남겨두고 와야 했다.
영하 30℃가 넘는 끔찍한 추위 속에,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에베레스트 북로의 깎아지른 절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프랜시스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들 부부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우달 부부는 9년 전 버려두고 온 프랜시스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주기 위해 1일 에베레스트로 떠났다고 영국 <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오다우드는 “프랜시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외로움이 느껴졌다. 너무 쓸쓸히 죽어
갔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두 번 올랐던 우달은 영국 <데일리메일>에 “이번이 마지막
에베레스트 등반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그를 데려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살아 있는 프랜시스를 버려두고 온 그들의 결정에 비난이 쏟아졌다. 오다우드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긴급구조전화를 걸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해발 8800m가 넘는 에베레
스트에 오르는 등반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간과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누군가에 대한 동정
은 ‘사형선고’가 되어버리는 곳이다.
혹한의 기온 때문에 프랜시스의 주검은 숨질 당시 그대로 로프에 의지한 채 등반로에 남았다. 만년설 속에 선
명히 드러난 주검은 산악인들의 ‘오싹한 이정표’가 돼 왔다.
당시 마흔살이었던 프랜시스는 남편 세르게이와 함께 셰르파들의 도움 없이 무산소 등정에 나섰다. 그들은 에
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지만 내려오는 길에 세르게이가 먼저 추위 속에 숨졌다. 우달 부부가 죽어가는 프랜시스
를 만났을 때 그는 홀로 하룻밤을 견딘 뒤였다.
이들에게 또다른 아픈 기억이 있다. 두 사람은 19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에베레스트 등정대를 이끌고 에
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여기서 만나 결혼했다. 등반 도중 사진작가 브루스 헤러드가 일행에서 뒤처지자, 등반
대장이던 우달은 브루스를 산에 두고 내려왔다. 헤러드는 혼자 정상에 오른 뒤 목숨을 잃었다. 이번 등정을 떠
나면서 우달은 웹사이트에 “헤러드가 그토록 사랑했던 산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우달
부부는 이번에 이름 모를 인도인 한 명과 영국인 데이비드 샤프의 주검도 수습할 계획이다.
50여년 전 외국인의 에베레스트 등정이 허용된 이후 이 산에 도전했던 산악인 203명이 숨졌지만 대부분의 주
검은 산 위에 그대로 남겨졌다. 국내에서는 2005년 엄홍길씨가 이끄는 등반팀이 친구 박무택씨 등 계명대 산악
팀 3명의 주검을 찾기 위해 나섰다. 박씨의 주검을 찾아 돌무덤에 묻었으나 다른 2명은 찾지 못했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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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ggu@hani.co.kr
출처 : 울산산울림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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