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산이 좋아 별이된 그대들 우리 앞길 밝혀주오”

2007. 5. 29. 19:30[알피니즘]/▒ 알 피 니 즘 ▒


“산이 좋아 별이된 그대들 우리 앞길 밝혀주오”

에베레스트 품에 잠든 산악인 오희준·이현조를 보내며




» 에베레스 트 남서벽 등정에서 제3캠프 구축 뒤 하산중인 고 오희준 부대장(왼쪽)과 이현조 대원

창창한 차세대 모험가들 잃어

‘낙엽 냄새 나던’ 순수한 모습

다시 만날 수 없다니…


‘눈의 여신’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의 네팔 고유 명칭)는 끝내 사람의 발길을 거부했다. 사 가르마타 여신은 아무도 오르지 않은 자신의 어깨를 한발 한발 힘겹게 딛고 올라오는 한국의 두 젊은 산악인을 깊은 침묵 속으로 데려갔다.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 등반 중이던 오희준 부대장(37·서귀포시 영천산악 회)과 이현조 대원(35·전남대산악부OB). 장래가 촉망받는 두 산악인은 5월16일 오전, 불의의 사고로 차디찬 벽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16일 오후, 비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누군가 잘 못 듣고 그런 거야.“ 하지만 심란한 마음으로 무심코 눈길을 던진 유리창에는 눈물 같은 장대 비가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난 3월말 원정대 발대식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두사람의 환한 웃음과 결의에 찬 눈빛이 자꾸만 빗물과 섞여 유리창에 어른거렸다.

두사람은 산악계 선후배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차세대 유망주 산악인이었다. 제주 출신 오희준은 1999년 초오유(8,201m) 등정을 비롯해 2000년 브로드피크(8,047m), 2001년 로체(8, 516m), K2(8611m), 2002년 안나푸르나(8,091m), 2006년 에베레스트(8,848m)마나슬루(8,156m) 등 8,000m 급 고산 10개봉 정상을 올랐으며, 북극점과 남극점 탐험도 했다. 전남 영광 출신 이 현조는 2000년 마칼루(8,463m) 브로드피크(8,047m) 등정을 비롯해 2005년 낭가파르바트(8,126 m) 루팔벽, 2006년
에베레스트 등 8,000m 급 고산 5개봉 정상을 올랐 » 산악인 오희준, 이현조
으며, 북극점과 남극점을 탐험했다. 두사람은 고산등반과 극점탐험을 아우르는 전천후 모험가 여서 둘의 때 이른 죽음은 우리 산악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침통한 분위기에 빠진 산악계가 두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살아 생전에 보여줬던 뛰어난 산악활동만은 아니다. 마치 낙엽 냄새를 맡는 것 같았던 그들의 겸손과 순수 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이런 그들을 산이 아니라 도 좋으니 속세의 술집이나 소음 넘치는 시장통에서라도 다시 만나 인자한 선배로 또 순수한 후배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이 깎아지른 벽에다 어렵게 설치한 텐트 안에서 마지막으로 나누었을 대화를 상상하면 밤 하늘의 별이 생각난다. 그들은 무슨 별을 보고 이리도 험난한 산을 오르려고 했던 것일까. 하 지만 이제 그들은 스스로 별이 되어 속세에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은 아닐까.

산이 좋아 별이 된 그대들을 보내며 루카치의 말을 떠올린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 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박성용 월간 편집부장
www.emountain.co.kr

출처 : 울산산울림산악회
글쓴이 : 피츠로이(한영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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