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홀로 서는 것에는 그것만의 고유한 기쁨이 있다.
2007. 5. 31. 12:04ㆍ[사람과 향기]/▒ 문학의향기 ▒
홀로 서는 것에는 그것만의 고유한 기쁨이 있다. 에베레스트산 처럼 홀로 우뚝서라.거기에 최고의 경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복사품들 사이에 있기를 원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홀로 있으면서도 정상을 유지하려면,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홀로 있음 안에서 또한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의 길은 궁극적으로 그대를 그대 자신으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창조의 순간 그대는 군중에서 떨어져나와, '홀로있음'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느 곳으로도 갈 필요가 없다. 깊은 침묵과 정적 속에 잠기기만 하면 그 뿐이다. 그러면, 그대는 수천마일을 헤메여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그대 안에서 발견할 것이다. 수많은 경전을 읽고, 종교의식을 수없이 행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을, 그대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좋은 음식을 갖는 데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커다란 차를 갖는데 더 큰 관심을 쏟는다. 좋은 음식은 쉽게 얻어지기 때문이다.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무엇에 관심을 갖는다. 거기에는 언제나 더 큰 집, 더 큰 차들이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더욱 더 커져간다. 그대는 결코 쉴 수가 없다. 그대가 진정으로 조화가 되면, 그대의 내면세계가 진정으로 부유하다면, 그대는 과시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받아온 교육에 의해 존재의 적이 되었다. 교육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심어 주었다. 그 가르침은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어서 우리의 살과 피와 골수에까지 파고 들었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삶을 증오한다. 소위 종교에서는 삶은 형벌이며 그대는 원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삶은 형벌이 아니라 오히려 보상이고 선물이다. 삶과 친구가 되어라. 삶과 친구가 되는 순간, 그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시적이고 음악적인지 놀라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빛이 그대를 비추기 시작하면 비밀의 문이 열린다. 그대 앞에서 삶이 그 신비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삶은 오직 자신의 친구에게만 신비를 드러낸다.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 대중들 앞에서는 결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대가 깊이 침잠해 있을 때만이 삶과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삶이 그대에게 가슴을 연다. 그리고 삶이 그대에게 가슴을 열어줄 때야 비로소, 그대는 진리와 사랑과 축복을, 신을 알게된다. 다른 종류의 삶을 찾으려 하지 말라. 지금의 이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바로 그곳에서 그대는 그대가 원하던 전혀 다른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해변에 또 하나의 다른 해변이 숨어 있다. 이 세계에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가 숨어 있다. 여기를 떠나서는 안된다. 이곳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방관자가 아니다. 존재계의 중요한 일부이다. 이곳은 우리의 집이다. 우리는 우연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필요에 의해서 이곳에 있게 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신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의 뜻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소외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지성적인 사람들은 불안과 혼란을 느끼며 당황해 한다. 왜 우리는 이곳에 존재하는가? 과학에 의하면 이것은 우연인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이다. 우리가 존재하든 않든 아무 차이도 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모든 의미를 잃게 된다. 결국 무의미가 세상을 삼키고 말 것이다. 신은 바로 '의미'를 의미한다. 삶은 의미가 있다. 이것이 신이라는 단어의 전적인 의미이다. 나에게 있어 신은 인격체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지닌 의미이다. 인격이라기보다 하나의 현존이다. 신은 딱딱한 틀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필요한 것은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대 내부에 텅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대가 텅비는 순간, 저 너머로부터 무엇인가가 그대를 꿰뚫어 가득 채울 것이다. 그대는 예전에는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로 넘쳐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황홀경이다. 바로 그 순간 그대는 탄생도 죽음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대는 영원하다. 이제 그대는 신성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에너지의 한 부분임을 깨닫는다. 신성은 광대무변한 태양이고, 우리는 단지 그 속에서 일어나는 파도일 뿐이다. 완전히 텅 비어야 한다. 오직 그때 신이 그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하잘것 없는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다. 신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싶어도 우리 내부에는 전혀 공간이 없다. 우리의 그릇은 가득 차 있어 더 이상 단 한 방울도 들어갈 수 없다. 그릇을 비워야 한다. 완전히 텅 비는 순간, 그대 내부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것이 빛이 된다. 그대 존재속에서 수천 송이의 꽃들이 일시에 피어난다. 그대는 향기와 음악으로 가득찬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으로,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향기로. 이제 그대는 자유롭다. 삶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시간 그 자체로부터, 그대는 해방되었고 존재의 영원한 흐름의 일부가 되었다. 신이 되기 위해서 인간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빌려온 지식들을 모두 던져버리지 않고서는 누구도 현명해질 수 없다. 지복에 찬 존재 속에서 지혜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죄악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려라. 누구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대는 지금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선하다. 그대는 신이 만든 그대로의 모습이다. 모든 책임은 신에게 있다.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기뻐하라. 그대가 이것을 이해하고,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다. 그대는 즉시 성장하기 시작한다. 죄책감이 사라지고 기쁨이 그대 존재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성장은 기쁨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웃음은 가장 종교적인 특성 중의 하나이다. 웃을 수 없는 사람은 비종교적인 사람이다. 그대가 지금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기쁨에 차서 노래하고 춤출 때, 지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대는 명쾌해진다. 확실한 명쾌함을 지니게 된다. 그대는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다. 그리하여 그대는 옳고 그른 것,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 라즈니쉬 '신들의 광기' 중에서 - |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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