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Because it is there?
2007. 5. 31. 13:00ㆍ[알피니즘]/▒ 알 피 니 즘 ▒
Because it is there?
되풀이되는 물음, 왜 산을 오르는가? 글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 소장 |
◇ Because it is there? |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등산이란 무엇인가? 등산의 역사가 시작된 지 250년이 지났지만 사람이 산에 가는 이유, 그 의미에 대한 물음은 끊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등산에 대한 의문과 해답의 역사적이고 대표적인 예가 있다. 영국이 에베레스트 제3차 원정을 준비하고 있던 1924년 당대 가장 뛰어난 등산가로 알려졌던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1886∼1924)가 미국에서 순회 강연 중 필라델피아에 들렸을 때 한 여기자가 다가와서 “당신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때 말로리는 “Because it is there”(거기 에베레스트가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말로리의 대답에 여기자의 의문이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말로리 역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말로리는 계획대로 제3차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했는데 북릉 8500m 고소 부근에서 같이 간 어빙과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말로리는 정상에 도달했을까? 내려오다 실종됐을까? 그들의 실종은 줄곧 20세기 등산계의 수수께끼로 되어오다가 1999년 마침내 말로리의 유해가 에베레스트 북릉 사면에서 발견됐다. 실로 7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이 일은 19세기 후반 서부 알프스의 바이스혼(4506m)을 혼자 오르다 자취를 감춘 게오르그 빈클러(Georg Winkler·1869∼1888)의 시신이 69년만에 빙하 말단에 나타났던 것과 같이 세계 등반사에 기록될 일이었다. 게오르그 빈클러는 독일 뮌헨 태생으로 1880년 동부 알프스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북부 칼크 알프스와 돌로미테 암봉을 혼자 누비다 약관 19세에 생을 마쳤지만, 솔로 클라이머로서의 그의 이름은 알프스 암탑 여기 저기에 지금도 남아 있다. 표고 4000m의 알피니즘의 무대가 일약 8000m 고소로 그 무대를 이행하게 된 것은 1895년 알버트 머메리(A.F.Mummery)의 낭가파르밧(8125m) 도전이 계기요 기점이었다. 그러나 그가 6100m 부근에서 실종되고 나서 사반세기 동안 히말라야는 다시금 태고의 정적 속에 묻혔다.그러다가 영국이 1921년 에베레스트에 원정대를 파견하면서 히말라야의 여명이 본격적으로 터오기 시작했다. 이 거사는 영국산악회가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1907년 제언됐는데 말로리는 그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히말라야 8000m급 14봉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는 터이나 20세기 초엽에는 히말라야 지도도 없었으며, 19세기말만 해도 캉첸중가(8586m)를 최고봉으로 알았다. 프레쉬필드의 <라운드 캉첸중가>가 나오자 크게 주목을 끌 정도였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영국의 에베레스트 도전이 시작됐는데 이것은 머메리 뒤를 따른 독·미 합동대의 낭가파르밧 재도전보다 10년 남짓 앞서 있었다. 이 두 거봉은 1953년에 가서야 모두 그 후진들이 역사적 초등을 이룩했는데 에베레스트는 첫 도전에서 무려 32년, 낭가파르밧도 재도전에서 23년이나 걸리는 가운데 두 차례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등산이란 무엇이며 사람은 왜 산에 가는가? 그토록 집요한 도전의 정신적 바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알피니즘은 “지식욕과 탐험욕 그리고 정복욕의 소산”이라고 프랑스 등산가 폴베씨에르가 말했지만 그 과정에는 곤란과 위험, 희생이 점철될 수밖에 없다. 세계 등반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말해주는데 이 모두가 등산가 스스로 택한 길이요 그것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야말로 무상의 행위(無償의 行爲)다. 리오넬 테레이가 남긴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1921∼1965)는 프랑스 그레노블 태생으로 라슈날과 짝이 되어 서부 알프스를 주무대로 큰 등반을 했다. 특히 그는 1950년 모리스 에르족을 따라 안나푸르나(8091m) 원정 참가, 1952년 안데스 피츠로이 초등정과 1962년에는 당시 공포의 봉으로 이름났던 쟌느 초등정 등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테레이는 한창 나이에 등반 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무상의 정복자·Conquistadors of the Useless>는 제목부터 돋보이는 고전적 산악 명저다. 오늘날 우리는 공명을 앞세우며 대가를 바라고 따지는 알피니스트를 많이 본다. 그러나 한편 리오넬 테레이의 등산 정신을 소중히 간직하고 행동하는 자 또한 적지 않으며 그 대표적인 예를 라인홀트 메스너에게서 본다. 즉 메스너는 1986년 등반 사상 첫 8000m급 14봉 완등 기록을 세웠는데 국제 올림픽위원회가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금메달을 주겠다고 했을 때 이를 거절했다. 메스너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그가 등산을 ‘무상의 행위’로 보고 있음을 두말이 필요 없다.사람이 산에 오르는 행위는 우선 야외 활동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일종의 스포츠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양자를 준별하는 조건이 심판과 규정, 관람과 경기 등 유무에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무상의 행위라는 데 있다. 그런데 등산을 인생과 직결시키는 말이 있다.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이다”고 한 게오르게 인겔 휜치의 말이다.게오르게 인겔 휜치(George Ingel Finch·1888∼미상)는 오스트리아 태생인데 어려서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1922년에는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 브루스 대장과 함께 8290m 지점까지 진출했다. 영국 원정대는 처음부터 등반에 인공적 산소 사용 문제를 놓고 찬반 논의가 벌어졌는데 프랭크 스마이스는 반대를 주장했고 휜치는 열렬히 찬성했다. 그가 등산을 단순한 모험적 행위로 보지 않고 언제나 그 중심에 생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등산을 스포츠가 아닌 삶의 방법이라고 했을 때 그는 등산을 의·식·주의 이동이라는 외부의 세계가 함축하는 인간 생활의 내면적 요소를 강조한 셈이다.등산은 삶의 방법이다 20세기 중엽은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에서도 획기적인 시기였다. 즉 1950년에서 1964년에 이르는 사이에 히말라야 자이언트 14봉이 차례로 등정되었다. 그 가운데 고도로 5위봉인 마칼루(8463m)를 1955년 프랑스 등반대의 대장 쟝 프랑코 이하 9명이 3일에 걸쳐 모두 올라갔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이룩된 이러한 장거는 히말라야 8000m급 등반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유명하다. 프랑코가 마칼루에서 돌아와서 그의 악전고투 상황을 묻는 취재진에게 “유감스럽게도 아무 일이 없었다. 크레바스에 빠지거나 눈사태 맞는 일도 없었으며 8000m 고소가 몽블랑 정상과 다르지 않다”고 말해 그들을 실망시켰다고 한다.그러나 이것으로 쟝 프랑코를 그저 운 좋은 사나이로 볼 수는 없다. 한때 프랑스 국립 스키등산학교의 교장을 맡았던 전문 등산가답게 등산에 대한 그의 사상과 신조 역시 비범했다. 그것은 ‘등산은 탈출이요 정열이며 일종의 종교’라고 한 그의 말 하나로도 충분하다. 등산의 의미와 개념을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즉 고전적 의미와 현대적 개념이 그것인데, 18세기 후엽 등산이 알프스에서 시작했을 무렵 그 뜻은 공포의 대상인 미지의 대자연에 도전하는 것이고 따라서 지식욕을 바탕으로 한 모험과 정복에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그 뒤 고도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점차 미지의 세계가 없어지고 자연히 탐험적 요소가 줄어들어 등산의 세계가 보편화되고 속화의 길을 갔다. 등산은 18세기 후엽 서구의 근대화와 출발을 같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활동 무대가 넓어지고 지구상 고산군에서 미답봉과 미답 루트가 거의 사라지자 이제 등산은 무료함을 달래는 레저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쟝 프랑코의 ‘탈출’은 일상성으로부터 탈출을 뜻한다. 그것은 바로 인조 문명이라는 규격화하고 조직화 된 세계에서 자연성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을 의미한다. 갈 때까지 간 느낌을 주는 현대문명사회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이 길밖에 없는데, 일찍이 등산을 ‘탈출’로 보고 끝내는 ‘종교’의 경지로 지향시킨 쟝 프랑코의 알피니즘에 대한 언급은 보기 드문 명언이다. |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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