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5. 14:03ㆍ[사람과 산]/▒ 스 키 등 반 ▒
등산에는 고전적인 의미와 현대적인 의미가 있다. 전자에는 모험과 도전의 의미가 있고 후자에는 탈출 수단의 의미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시대적인 배경이 깔려 있으며 이러한 배경은 등산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등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처음에 등산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과정을 밟아, 지금 어디까지 왓는가 하는 이른바 등산의 역사를 대충이라도 이해해야만 한다.
글/유한규(Outward Bound Korea 교장, 대한산악연맹 산악 스키위원장)
사진/이지호(Outward Bound Korea 인스트럭터, 운영팀장)
(man & mountain 2004.01)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나온 등산백과사전은 알피니즘(Alpinism)을 ‘눈과 얼음이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이라고 사전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잠시 등산 운동의 시대적인 배경과 내면적인 세계를 들여다 보자. 알피니즘의 발전 배경에는 대자연에 대한 탐험과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불확실성이야말로 알피니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이라는 조건을 갖추는 것은 알피니즘의 초기에는 전혀 어려운 점이 아니었다. 문명의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등반지는 수도 없이 많았고, 현대적인 발전 단계에 이르지 못한 등반 장비와 기술 역시 불확실성 투성이의 등산활동을 그야말로 확실하게 보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미지의 세계는 더 이상 비밀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불확실한 것은 점차 사라지고 이에 따라 등반이 가지는 불안도 공포도 줄어들고 있으니 모험을 즐기는 알피니스트가 대자연 속에서의 알피니즘의 의미를 찾기는 점차 어려워지게 되었다. 밀레니엄 시대에 이른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초등이 이루어진 1950년대와 같은 물리적인 높이를 가지고 있으나, 등반가의 마음속에 비추어진 높이는 낮아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장비의 개량과 경량화, 그리고 과학 문명의 발달로 불확실성이 사라져버린 에베레스트는 도전과 탐험의 대상에서 점점 떨어져 나와, 일반인들의 등반 대상지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알피니즘에 있어서도 새로운 출발, 뉴스타트 운동을 촉발시키고 있다. 알피니스트들은 새로운 알피니즘의 방식을 통한 새로운 개념의 도전을 찾아 나섰고, 그들은 스포츠 클라이밍과 산악자전거, 그리고 산악 스키와 패러글라이딩을 통하여 새로운 도전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등반 양식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동일한 등반 대상지 속에서도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등산 활동이 시도되고 있다.
이렇게 변모하고 있는 세계적인 조류 속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산악 스키(Ski Mountaineering) 운동이다. 이 활동을 보다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스키 등반이라 해야하겠지만, 산악 스키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있고 또한 쉽게 이해될 수 있기에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UIAA(국제산악연맹)에서는 그동안 스포츠 클라이밍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정 받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는 불투명하게 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산악 스키 활동을 주목하게 되었고, 이제 산악 스키가 도예올림픽의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인의 제전인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산악 스키야말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알피니즘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활도이라 생각한다.
산악스키는 인공적인 스키장에서와는 달리 다양한 설질을 경험하게된다. 이른 봄의 습설, 강한 추위로 표면이 크러스트된 설질, 건조한 신설은 다양한 스키와 등반의 기술을 요구한다.
눈덮인 산악지역의 가장 효율적인 교통 수단
스키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기원 전부터 설상교통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또한 우리 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각지에서도 눈이라는 환경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이러한 것이 19세기 중반부터는 노르웨이의 크리스차이나(지금의 오슬로) 지방을 중심으로 근대 스포츠로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했다.
스키의 발상지인 북유럽은 비교적 지세가 완만하기 때문에 평탄한 곳이나 구릉 지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와 텔레마크 스키가 발전했고, 이러한 스키가 알프스 산악 지역으로 넘어 오면서 점차 산악 스키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산악 스키는 근대적인 등산활동이 보급되기 시작한 19세기말부터 눈 덮인 알프스 산악 지역의 가장 효울적인 등반 수단이었다. 몽블랑 등반 초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기록 사진을 살펴보면 스키를 이용하는 등산가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초기의 스키는 오늘날의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유사한 형태로, 적설량이 많은 알프스 산악의 한 형태다. 즉 오늘날의 소위 알파인 스키 장비가 내려오는 기능만을 강조하고 발전되어 있는데 비하여 초기의 스키는 다운힐 활강의 기능만큼이나 오르는 기능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다.
산악스키는 정확히 자신의 힘으로 올라간 만큼 내려오는 즐거움을 주는 정직한 스포츠다. 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스키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산 정상에 올라 활강의 쾌락만을 즐기는, 반칙을 하는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인류역사에 있어서의 스키를 살펴보면, 오히려 산악 스키라는 말이 얼마나 모순된 표현인가를 쉽게 깨닫게 된다. 스키는 곧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산악 스키인것이다.
몸과 마음의 편리에 길들여진 우리 현대인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쉽게 산 정상에 올라 인공 제설 장비와 압설차로 잘 다듬어진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스키장에서 즐기는 스키만이 스키인 것으로 착각하는 모순된 인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스키장에서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 다시 같은 장소로, 같은 스키 동작을 반복하며 내려오는 스키어를 보면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듯 하다는 생각과 함께 안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산악인들의 대표적인 겨울철 아웃도어 스포츠
한국인든 유럽이든 스키를 보급하고 발전시킨 이들은 산악인들이었다. 우리 나라에 알피니즘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키 역시 서서히 현대적인 태동을 하기에 이른다. 해방 전후 백두산과 금강산, 한라산 등지에서 진보적인 등반을 펼쳤던 백령회의 활동에는 언제나 스키가 같이 있었다. 우리 나라 스키 보급 역사서의 첫 장은 우리 산악인들이 몸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스키 리조트의 건설은 산악운동으로서의 스키에서 멀어져 인공적인 환경에서의 다운힐 만을 발전시켰다. 이후 이러한 대세는 점차로 강화되었다. 산악 스키는 우리 산악인들로부터 잊혀지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일반 스키 동호인뿐만 아니라 산악인조차도 산악 스키를 스키와 동떨어진, 또한 등산 문화와도 멀어진 상당히 유별난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었으니 이는 분명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어느날 갑자기 스키가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산악’이란 두 음절이 사라진채, 산을 깍아 속살을 드러내고 그 위에 온갖 문명의 이기를 온통 갖다 부어서는 말초신경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무례한 스포츠로 전락했으며, 거기에 산악 스키는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산악스키는 순수하게 사람의 힘만으로 대자연에 들어가는 수단이며, 눈 덮인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완전한 형태의 전인격적인 스포츠이다. 스키를 통한 등반은 솔직함과 대자연에 대한 경의를 갖춘 정공법으로서, 거대하며 순수한 대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진지한 과정이다.
유럽과 북미에서 산악 스키는 자연과 도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산악인들의 활동에 의해, 대표적인 겨울철 아웃도어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흰산을 추구하는 등산가라면 당연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초적인 활동인 것이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궁지에 몰린 알피니즘 발전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 나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00년 10월 슬로베니아의 산악인 다보 카르니카(davo Karnicar)가 감행하여 성공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부터 베이스캠프까지의 스키 활강은 전세계 산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그의 성공을 통해, 알피니스트의 모험과 도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현재 알피즘의 발상지인 유럽 알프스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등반만을 고집하는 산악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산악 스키는 알피니스트가 추구해야 마땅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오르는 등반가 내려오는 스키의 하모니, 그리고 인공적인 요소가 배제된 대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 스스로의 숨소리와 흘러내리는 땀 속에서 충만함과 성숙함을 경험한다. 또 흰 산이 제공하는 거친 자연 속에 투쟁하는 격렬한 스포츠이며, 이를 통해 산악인은 새로운 경지의 자연을 맛본다.
다른 측면에서의 산악 스키는 대중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산악 스키 대회는 한 사람씩 활강하며 속도를 측정하는 알파인 스키의 기계적인 대회와는 다르게, 멋있는 경치를 배경으로 험준한 지형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경쟁한다. 이러한 대회 구성은 더욱 역동적이고 박진감이 넘치는 대회를 가능하게 하여 오늘날 유럽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무동력 아웃도어 스포츠의 발전과 아울러, 누구나 쉽게 접하여 배울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는 활동으로서 산악 스키의 동호 인구는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얼음과 바위로 된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 역시 산악 스키어의 몫이다. 산악 스키는 땀을 흘려 오르는 만큼의 활강을 맛볼 수 있는 솔직함이 묘미로, 심설과 눈사태, 얼음, 바위 등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산악인의 스포츠다.
우리 나라의 산악 스키 운동
이제 우리 나라도 (사)대한산악연맹에서 산악스키위원회를 만들어, 해외 훈련과 강습회를 해마다 개최하며 산악 스키를 일반 대중에게 보급하고 있는 중이다.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그 시작은 아직 미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연이든 인간이든 모든 본질의 구현이 그렇듯이 그 나중은 분명이 대중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악 지형과 적설량과 설질이 산악 스키 활동에 부적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눈부신 활강에 부적합하다는 뜻일 뿐, 스키와 함께 눈 덮인 산을 오르고 내리며 대자연과 호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대산국립공원의 황병산 일대와 대관령, 한라산은 풍부한 적설과 부드러운 지형으로 산악 스키에 대단히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전국의 산지 어느 곳에나 조성된 임도는 부드러운 투어링에 좋은 환경으로, 발굴하기에 따라 적합한 트레일이 아주 많이 개발될 수 있다.
최근의 추세를 보면 북미 최고봉 매킨리 원정대들은 대개 산악 스키 장비를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나 원정 후 듣게 되는 이들의 반응은 이러한 산악 스키 장비가 짐만 될 뿐, 무용지물이었다는 게 대부분인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환경에서의 실전 훈련과 적용이 매우 부족한 상태인 대원들에게 고산에서 이루어지는 원정 등반에서 산악 싀를 바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에서의 체계적인 스키교육과 훈련의 보급을 통해 쉽게 수정, 향상이 가능 한 부분이다. 우리 나라 산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산악계의 이러한 노력은 시급하다.
산악 스키는 오늘날 알피니즘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는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등산 활동의 하나로 재조명 받고 있다.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 스포츠 분야에서의 발전, 선진적인 등반 기술로서의 활용, 대중적인 등산 활동으로서의 자리 매김 등 산악 스키가 우리 산악계에서 의미하는 바는 대단히 크고 다양하다. 이제 우리 나라의 많은 산악인들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산악 스키 운동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대자연의 참 맛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며, 세계 무대에서 우리 산악인들의 진취적인 등반 활동으로 그 우수성을 발휘할 수 잇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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