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미성년자 불가 ㅋㅋ)

2007. 8. 9. 07:58[사람과 향기]/▒ 삶 의 향 기 ▒

“외도가 설레지만 죄의식에 시달려요, 어느 선까지 가야 하나요”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비용 치를 거면 맘대로 하셈
한겨레
»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애 셋 키우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10개월 전 20년 만에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았어요. 초등학교 때 좋아했고 간간이 떠올랐던 남학생. 그런데 그 친구에게 빠져버린 거예요. 유머에 재치에 다정함까지. 결혼 후 늘 남편에게 불만이었던 걸 그 친구가 갖고 있어서 그런 건지, 젊었을 때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 해 보고 결혼한 게 미련으로 남아 그런 건지, 정말 그 친구와 코드가 맞아서인지 … 처음 연락 때 왜 그리 가슴이 설렜던지. 한동안은 아침부터 밤까지 문자 주고받기도 했구요. 머리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마음은 그쪽으로 향하데요. 넉 달 전쯤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 육체적 사랑도 나눴지요. 예전의 도덕적인 나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서도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설렙니다. 하지만 아시죠? 짜릿함과 행복도 맛보지만 남편, 애들, 사회의 눈이 나를 지켜본다는 죄의식에 항상 시달리는 거. 우리 둘 다 가정은 지킬 거예요. 어느 선에서 그만둬야 할까요? 시간이 좀더 흐르면 식어갈까요? 그 친구랑 늙어서까지 좋은 동행자가 될 수는 없는 건가요? 애 셋 키우고 직장생활 하며 바쁜 가운데도 머릿속엔 늘 그 친구가 있어요. 어준씨, 객관적 입장에서 조언 부탁해요.

A 0. 오. 드디어 왔어 왔어. 이 질문! 관습·법률·윤리의 전방위 보호를 받는 유일한 공식 커플시스템-결혼, 그 이후의 사랑. 어찌하오리까. 이 거 참, 어려운 문제다. 존재하는 모든 사회규범이 이 행위, 규탄한다. 사회 제 규범이 일심이란 건 그로 인한 ‘질서’의 붕괴를 모두들, 그만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 위반의 대가, HUGE, 할 수밖에. 한편으론 그렇게 모든 규범이 죄다 동원되어 금기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다반사라는 방증이기도 하고. 금기만큼 충동 역시 파워풀하단 소리다. 이런 사안, 구체적 정황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런 경운 되고 저런 경운 안 된다 풀어보려는 시도, 소용, 안 닿는다. 사연, 안 중요하다고. 따져야 하는 건, 사회규범과 개인욕망의 정면충돌 시 선택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거 다. 그게 본질이다.

» 김어준 / 박미향 기자
1. 우선 이것부터. 당신은 누구냐. 당신은 당신 선택이다. 뭔 소리냐.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난 이런저런 사람이라 단정적으로 말들 한다. 착각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건 자신의 선택이다. 더 정확하게는, 자신이 했던 무수한 선택들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 자신이 누군지 결정하는 거다. 당신은 정숙한 부인 대신 바람난 아내, 윤리적 엄마 대신 불륜한 부모, 소녀적 가슴앓이 대신 욕정의 관계를 택했다. 그럼, 당신, 그런 사람이다. 사연, 필요 없다. 그 선택의 누적분이 곧 당신이다. 그 선택 자체가 옳다 그르다는 게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만큼의 사람이란 거다. 더도 덜도 말고.

2. 자기 선택이 곧 자신이란 거, 이거, 사실, 곧이곧대로, 수용키 어렵다. 누구나 야비하고 몰염치하고 이기적이며 부도덕한 선택, 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 뒤 대다수는 사연부터 구한다. 그 선택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그리고 그 속에 숨는다. 그리고 공감해줄 사람 찾는다. 피치 못 할 사연 있었단 거지. 자긴 원래 그런 사람 아니란 거지. 그런데. 아름답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객관화의 임계점이란 게 있다. 그랬으면 하는 자기가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의 자신을, 덤덤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순간 있다. 자신이 멋지지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서 멋질 수는 결코 없는 법이란 걸 깨닫는. 이거 절로 안 온다. 도달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단한 분량의 용기가 지성과 함께 요구된다.


3.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거다. 사람들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다. 당신은 그 관계로써 이젠 정숙한 아내, 윤리적 엄마가 아니다, 란 사실 감당하기 싫다. 그로 인한 죄의식, 불안 비용도 싫다. 반대 선택도 마찬가지다. 설레는 가슴, 정서적 충만, 격정적 사랑 잃고 건조한 결혼,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싫다. 둘 다 갖고 싶다. 선택하기 싫은 거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우주 원리다. 뉴턴은 이걸 작용, 반작용이라 했다. 근데. 이 말 가만 뒤집어 보면, 비용 지불한 건, 온전히, 자기 거란 소리다. 이 대목이, 포인트다. 공짜가 아니었잖아.

4. 내 결론은 그렇다. 자기 선택과 그 결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비용 감당하겠다면, 그렇다면, 그 지점부터, 세상 누구 말도 들을 필요 없다. 다 조까라 그래. 타인 규범이 당신 삶에 우선할 수 없다. 당신, 생겨 먹은 대로 사시라. 그래도 된다.

PS-당신 근데 이런 질문 왜 하나. 두려우니 내 편 되어달라는 건가. 나쁜 ‘년’ 아니라 말해 달라는 건가. 그건 못한다. 동의 구걸하지 마시라. 나쁜 ‘년’ 되는 결정, 혼자 하는 거다. 그거 못하면 자격도 없다. 감당도 못한다. 그냥 ‘착한’ 년으로, 안전하게, 사는 게 옳다. 이도 저도 못하겠거든. 그냥, 들키지나 마시고. 내가 그러더란 말은 절대 퍼뜨리지 말고. 건투를 빈다. 난 그럼 이만 바빠서. 후다닥.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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