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photo tour ...Jindo..!

2008. 6. 2. 16:39[사람과 향기]/▒ 문학의향기 ▒


♤ special photo tour ...Jindo..!


♤ special photo tour ...Jindo


회색빛 빗망울이 안개비 되어 오월의 신록에서 피어나는 밤꽃향기와 우우빛 바래가는
주렁주렁 매달렸던 아카시아 향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아침의 공기가 상큼함으로
특별한 진도 사진촬영회 여행 설레임 틈을 비집고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하며
살갖의 모공의 통해 스며든다.





살갑게 내린 영롱한 이슬망울 보석처럼 열린 길따라 찾은 보배로운 섬
진도에 도착하니 진도군 사진협회 회원 여러분께서 쌍수 감싸 안으며 반겨주셨다.
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눌겨를도 없이 향토문화회관 에서
국가지정 무형 문화재 72호인 진도 싯김굿 과 만가가 어우러진 공연이 시작된 터였다.





싯김굿 거리중 망자의 혼을 돗자리에 말았다는 뜻의 영돗말이는
모든 액과 삶을 씻어내는 굿판의 한거리로 진도 싯김굿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부분이라고 한다.





곽씨 부인을 잃은 봉사의 슬픔 그리고 허탈한 표정연기 가 관객 가슴에
무언과 침묵으로 다가왔다.





어린아이를 두고 이세상과 작별을 한장면은 관객들의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들때 바다에서 힘든 작업과 숨비소리를 창작 민속무용화한 싯김굿이 진행되니
배우의 표정이 더욱 애절하다.





원시종교인 샤머니즘(무격신앙)과도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킨 싯김굿이 절정으로 치닫을때의 배우표정이
또한번 관객을 울리고...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관객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진도씻김굿의 순서는
먼저 조왕반에서 시작해서 혼맞이-안당-초가망석-처올리기-손님굿-제석굿-고풀이-영돈말이
이슬털기-왕풀이-넋풀이-동갑풀리-약풀이-넋올리기
손대잡이-희설-길닦음-종천으로 막을 내린다고한다.





진도의 싯김굿이 끝나면
진도의 만가가 껄죽한 사투리로 이어지며 관중을 다시한번 사로 잡는다.





만가 즉 상여소리는 상여를 메고 나갈 때... 나눠 소복을 한 호상꾼들이 상여를 인도하면서
상여에 매여 놓은 줄에 관객들이 서로 어울리며 만냥 짜리를 매달면서
만가의 무대속으로 사라져간다.





진도군립 예술단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나절로의 그림들이 있는 미술관으로
향하는길에 진도의 역사를 꼼꼼 하게 가이드 해주시는 박병하 님은 왕고개  버스가 미끄러져 나가자
진지한 부연설명을 해주셨다.








글.그림. 글씨를 모두 잘하여 삼절(三絶)로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특히 묵죽(墨竹)을 잘 그렸다는
소치선생의 이야기 와 삼별초가 주 군으로 섬긴 왕온은 소수의 삼별초 군사로
1만여명의 여몽연합군에 맞서 10여일 동안 격렬하게 항전하다
왕고개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간간이 펼쳐지는 바둑판 모양의 논두렁 사이로 피어있는 찔레꽃 향기가
차창으로 펄럭이는 하늘빛 커텐에 날리어 가슴 깊이 스며 들고 있을즈음 도착한곳이
폐교를 단장한 나절로의 그림들이 있는 미술관 에 도착 하였다.





쑥갓과 비슷하지만 목질이 있으므로 나무쑥갓이라고 부르는 마가렛 꽃이
어린 동학들이 뛰어놀았던 교정엔 가득했다.





불규칙적으로 널려 있는 시비(詩碑)가 미술관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마가렛 사이로 돌위에 새겨진 편지는 가을에다 받아볼수 있는 편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을... 가을엔 국화가...





그리고 배롱나무 가지에 매달린 김용택님의 서시 한편이 매달려
마가렛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마당 한곁을 산책 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서시

            김용택

세월이 가면
길가에 피어나는 꽃 따라
나도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릴라요
세월이 가면
길가에 지는 꽃 따라
나도 질라요
강물은 흐르고
물처럼 가버린
그 흔한 세월
내 지나 온 자리
뒤돌아다보면
고운 바람결에
꽃 피고 지는
아름다운 강 길에서
많이도 살았다 많이도 살았어
바람에 흔들리며
강물이 모르게 가만히
강물에 떨어져
나는 갈라요





하늘 거리는 마가렛이 다칠세라 낮은 울로 만들어 놓은 작은 꽃길따라 가는길끝
진도 아리랑이 아롱진 노랫가락이 들려 온다.

♪♬ 문경 새재는 웬 고개인고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 만경 창파에 두둥실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어라 노를 저어라

♪아리랑 고개다 집을 짓고
우리 님 오시기만 기다린 다네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저 달이 떳다지도록 놀다나 가세

♬왜 왔 던고  왜 왔 던고
울고나 갈길을  내가 왜 왔 던가 ♬♪

♬♪






모퉁이 돌아가니 작은 공간으로 깜찍하게 어설프게 꾸며진 낮은 통나무 의자와 유리 테이블이
잠시 휴식를 취하라 손짖했다.
약간 습한듯 했지만 촉촉한 습기가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이슬을 식혀주었다.






식은땀을 훔치며 들러가곳에 나절로 님이 그려 놓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횃불을 치켜든 거대한 여인상인 자유의 여신상을 나절로님의 독특한 감각으로 그려낸
대형 작품이 벽 한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감히 작품에 대한 평은 할수 없지만 대단한 작품인듯 했다.
자유의 여신상 뿐만이 아닌 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관 마당에서
펼쳐지는 진도 군립 예술단의 도움을 얻어 진도 아리랑 가락에 셔터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세마치 장단의 진도 아리랑이 예술단원의 소리와 춤사위가 어울러져
한바탕 꽃길속에서 춤을 추니 더욱 요란해지는 셔터음이 미술관을 맴돌았다.





미술관 창밖 작은 연못위에 가지런히 쌓아 만들어낸 연초록 봄노래 쟁반위로 날아든 학세마리
더덩실 육자배기 연못에 스며들고 ...





잦은 중모리나3(8분의9)박자장단에
한줄기 가락 작은 폭포수는 고수를 자청했다.





특히나 후렴부의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의 "응응응"하고 부르는 부분은
자못 선정적인 콧 소리가 들어가는 것이  매혹적이고 감미롭다.





그렇게 한바탕 문화예술관에서 관람한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 주어서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과 만가로 이어진 공연과 나절로 미술관
출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오고 허기가 뱃살을 짖누룰때 섬으로 향했다
그섬에서 특별한 낙조도 보고 노을도 보았고 일출을 마셨다.





붉디 붉은 홍주에 희석된 또다른 진도의 풍경을 보았지만
카메라 앵글에 담을수 없는 그런 진도 사람들만이 가질수 있는
삼색주와 멋과 흥이 넘치는 문화와 삶을 노래했다.





진도의 맛깔스러운 풍경은 버스를 이용 하다보니 담을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새벽녘 옥구슬 맺힌 아침을 담았다.
푸른 안개 사이로 시원하게 굽이쳐 흐르는 신작로 위에 태양이 아침를 맞는다.





진도는
마치 여인의 나신처럼 아름다운 선이 있었다
봉긋한 여인의 가슴 처럼 솟아 오른 낮지도 높지도 않은 산들이 해안을 부둥켜 안고 있는듯한
여유가 있고 낭만이 흐르는 섬 인듯 하다.

조반을 들기전에 입맞춤한 하늘 매발톱엔 옥구슬이 영롱하게 하루 라는 문을 열고
빛속을 향유(享有) 하였다.





나풀거리는 아침의 향기에 매발톱이 고운 노랑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을 입고 문안인사를 했다
전복의 속살을 잘게 썰어 진도 흑미로 덧칠한 구수하고 담백한 전복죽으로
원기회복 시키고 남도석성으로 나섰다





남도석성은..?

사적 제127호로 면적 약 20,000㎡이며 고려 원종(元宗) 때 배중손(裵仲孫)이
진도에 와서 1270∼1273년에 걸쳐 몽골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다고한다
그러나 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여겨지며
현재 남아 있는 성은 남도포(南桃浦)에 만호부(萬戶府)가 처음 생긴 것이
조선 세종 20년 정월이므로, 1438년 이후에 축성하였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1214년부터 1259년에 걸쳐 왜구가 연해지방을 침범하여
1350년(충정왕 2)에는 진도의 관아를 내륙지방으로 옮기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다.
이 교치생활(僑置生活)은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어 오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진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남도포 석성(石城)은 동쪽에 있는 금갑보(金甲堡)와 더불어 오른쪽으로 가는 바닷길의 요지이며
동시에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올라오는 목줄기에 해당되는 요새지이다.





지형적인 특수성으로 인하여 1683년(숙종 9) 6월에는
수군진관(水軍鎭管)을 위도(蝟島)와 가리포(加里浦)에 둠으로써
남도진(南桃鎭)은 가리포진관에 부속된 수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석성은 본래의 규모가 둘레 1,233척(尺), 높이 8척이 되었으며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765년(영조 41)경에는 석축(石築) 둘레 1,040척, 높이 12척, 치첩(雉堞)이 43개소 있었다고 하며,
현재는 동문(東門) ·서문(西門) ·남문(南門)과 성터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석정 에서의 촬영을 마무리될 무렵 해는 새참을 들러 가고
석성에 걸터 앉은 빠알간 넝쿨 장미는 북소리에 춤을 춘다.




1자 남짖한 오동나무 북채는 힘차게 허공을 가로 저으며
마가렛 꽃잎에 노래자락을 뿌려대고
꾼의 하얀 버선발이 리듬을 타고 사랑을 노래 한다





춤사위는 마가렛 향기에 취한 호접지몽 [胡蝶之夢]이다





오월의 햇살도 나비의 꿈을 깨우지 못하는 마가렛 가득한 정원에서
셔터음은 더욱 여유로움 피어나고 있다.





한낮에 열기로  아지랑이 시샘하는 춤사위에 넋을 잃고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방울 아랑곳이 촬영에 임해주시는
진도군립 예술원 단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표현할 방법 마저 잊은채





촬영이 계속되었다
너무 힘들게 ...
어렵게 촬영에 임해주신 진도 군립예술단원 여러분과 진도 사진협회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지면으로 다시한번 드린다.










진도에서의 모든일정을 마칠때 까지 안전한 촬영과 푸짐하고 넉넉한 정성과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남을것이다.





10여년이 넘게 쌓아온 진도 사진협회와 양산 사진동우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사람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몇 명의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까?
불연 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인연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피천득 님의 인연이란 수필을 떠올려 보며
보배로운 섬
진도 뜻깊은 추억을 되새김질 할것이다.

2008 오월의 끝자락에서..

♤ 山海 /김 유 선




             ♤ 山 海 / 김. 유.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