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30. 14:23ㆍ[사람과 향기]/▒ 삶 의 향 기 ▒
“한국 경제 고목숲, 불나면 타버린다”
[Cover Story]새 기업가정신을 찾아서/안철수 교수 인터뷰
지난해 5월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창간호에서 경제전문가 70명(경제학계 40명, 연구기관·시장 이코노미스트 3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 있다. ‘창조·혁신·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재계 인물(복수 응답)’ 항목에서 1위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총 42명)이었고, 안철수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21명)가 2위였다. 이어 이병철 전 삼성그룹 창업주(19명)가 3위로 꼽혔다.
안철수 교수가 국내 언론과 처음 인터뷰한 건 1988년이다. 지난 23년간 안 교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자 ‘기업가정신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렸다. 안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MBA 과정을 공부한 후 카이스트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의해왔다. 안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새싹이 자라지 않고 고목만 있는 경제는 한번 불이 나면 숲 전체가 다 타버린다”며 “새싹을 키우려면 개인이 가진 위험도를 사회적으로 덜어 분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최고경영자(CEO) 풀’이 부족하다. 오너들이 투자 결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카이스트 사태와 관련해 안 교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카이스트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불거져나온 것”이라며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하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4월12일 안철수연구소에서 했다.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 한국 경제 제1세대 창업주들이 ‘할 수 있다’는 정신 아래 기업가 신화를 이뤄냈다면, 2세대에서는 선택과 집중, 벤처 정신이 강조됐다. 이제 한국 기업가들이 추구해야 할 ‘신기업가정신’이 있다면?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 기업가정신을 경영자 마인드로 잘못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업이란 말이 본래 ‘일으킬 기’(起)에 ‘업 업’(業)자다. 어려운 위험이 많음에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겨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가치나 일자리를 만드는 일련의 행동이 기업가정신이다. 우리는 지금껏 남들이 안 한 일을 해서 발전했다기보다는 남들이 이미 해온 일을 좀더 빠른 속도로 효율적으로 쫓아가서 성공했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이 된 것은 ‘빠른 추격’(Fast Follower)에서 잘해왔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잘못 시도해 실패하면 그나마 가진 것도 잃을 수 있으니, 남들이 한 것 중에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가장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그 일들을 해온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실패하면 안 되고, 실패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기업과 경제의 성공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지난 5년간 계속 머물고 있는 건 과거의 ‘빠른 추격’ 방식이 이미 최고점에 도달했음을 말해준다. 과거의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100개 중 하나만 성공하기 마련이다. 실패를 경제·사회적으로 용인하지 않고, 실패하면 당장 처벌하는 문화에서는 아무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선도자가 될 수 없다. 한국 경제가 빠져 있는 딜레마가 이것이다. 사회·문화적 측면이나 기업·제도적 측면에서 과거의 성공 신화 틀을 깨고, 이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제도를 정립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도전이고, 기업가정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기업가정신을 쇠퇴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낮은 성공 확률, 그리고 한 번 실패했을 때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해야 한다. 설령 실패했더라도, 성실하게 도덕적으로 기업을 운영했는데 실패했다면 다시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즉각 인사 책임을 물어 해당 임원을 해고하는 일이 많다. 이런 문화에서는 새로운 시도나 선도자가 생겨날 수 없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기업가정신의 쇠퇴를 초래한다. 한 번 실패하면 패가망신하고, 금융사범이 되고, 평생 재기할 수 없는 환경 아래서는 아무도 창업 같은 위험도 높은 시도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 구조에서는 고용과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초단기 목표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구조가 결국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자멸을 가져올 것이다.
그동안 공적자금 등을 투입해 실패한 대기업을 구제해준 일도 많았는데….
중견 이상 대기업은 국가가 많이 구제해주고 있는데, 사실 중견기업 이상의 기업들은 국가의 ‘품’ 또는 국가라는 ‘요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을 구제해주는 건 기업가정신을 북돋운다는 면에서도 옳지 않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면이 강해야 한다. 이것이 ‘정의’다. 요즘 세상에서 경제·사회적 강자는 국가도 필요 없지 않은가? 기존 대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험적인 기업가에게 재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실리콘밸리가 그런 곳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실리콘밸리에 취재 가서 성공한 기업들만 보고 그 성공 요소만 뽑아 기사화해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라고 말해왔는데, 핵심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00개 벤처기업 중 1개만 성공하고 99개는 실패한다. 실패한 기업을 그 뒤 어떻게 취급했는지가 핵심이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며, 이들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 사람은 대체로 한 번은 실수하지만, 다시 기회를 잡으면 예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면 중소·벤처기업의 성공 확률이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다. 실패의 경험이 오히려 ‘사회적 자산’이 된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성공의 본질이다. 기업가정신을 살리려면 실패의 요람에서 배워야 한다. 한 번 실패하면 전부 금융사범이 되는 환경에서는, 제정신인 사람은 도전적인 창업에 뛰어들 리 없다.
2007년 3월 안철수연구소에서 젊은이들과 대화 중인 안철수 교수.
슘페터적 의미의 전통적 기업가정신에는 빠져 있는,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 경영’이란 측면에서 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
‘창조적 파괴’가 기업가정신의 원조 격 콘셉트이긴 한데, 내가 즐겨 쓰는 용어는 아니다. ‘파괴’하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만들 수 있고, 기존 가치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도전과 혁신 외에 기업가정신의 본질로 몇 가지 보탠다면 △사회적 책임 의식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 읽는 통찰력과 비전이다. 사회적 책임 의식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기업가’가 존재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기업가들이 자사의 수익만 추구했다면, 사회적 기업가는 기업 자체뿐 아니라 그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 그리고 지구 환경과의 조화까지 고려한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가는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업을 하면 국가에서 인건비 보조를 받을 수 있고, 창업이 쉽다고 여겨 뛰어드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난이도가 높아서 도전하기에 힘들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벤처기업 제1호가 안철수연구소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벤처기업을 하다 보니 난이도가 높았고, 고생도 많이 했다. 당시에 이른바 ‘어음깡’을 하러 은행에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존경받는 기업이다.
기업가정신을 기업가 한 개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점진적이고 오래 누적되는 ‘프로세스’(과정)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느리고 지루하고 점진적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탄생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초창기에 한 번일 뿐이다. 그다음부터는 현실에서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것인데, 그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사용자에게는 좋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실패에서 배우고, 사용자와 시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영하면서 자신을 능동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9999번 실패하고도 계속 전구를 만드려는 용기를 가졌느냐?’는 질문에 에디슨은 “전구라는 게 원래 1만 번의 실패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들이 실패하는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창업하는 한 개인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은행과 국가 등 우리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도 그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물론 창업에 돌입한 사람의 실패 확률이 높은 원인은, 남 탓할 필요 없이 창업자 스스로 경영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팀을 이뤄 같이 나가면 좋은데, 혼자 하는 경우 많이 실패한다. 인프라 구조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창업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부실하다.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벤처캐피털 △자금대출 금융권 △정부 정책 등 모두 부실하다. 기업 혼자 하기에는 부담이 많다. 이 부담을 사회에서 덜어줘야 한다. 정부 쪽의 연구·개발 지원이 없다 보니 기업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기업가적 도전 정신은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높다. 그런데 그것을 사회구조적 모순이 더 큰 힘으로 억누르고 있다. 장기적으로 새싹이 나오지 않게 해 국가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구조적 모순에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도 포함히는가?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개인들이 창업에 나서지 않으면 경제적 활력이 일어날 수 없다. 새싹이 자라지 않고 고목만 있는 환경에서는 한 번 불이 나면 숲 전체가 다 타버린다. 새싹도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새싹을 키우려면 개인이 가진 위험도를 사회적으로 덜어 분산해줘야 한다. 꼭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대기업이 일자리를 200만 개도 못 창출하고, 그 일자리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절대로(!) 더 늘리지 못할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이는 우리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청년실업, 중산층 붕괴, 빈부 격차 심화 등 모든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창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로잡고, 기존 벤처·중소기업의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대기업에 유리하게 환율을 계속 고정하는 정책을 펴는 ‘대기업 친화적 정책’은 중단해야 한다.
리스크는 주주나 은행이 어느 정도 부담하지 않는가?
은행은 국가에서 영업 허가를 받아 독점적 혜택을 누리는 기관인데, 돈을 빌려줄 때 법인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측정해 관리하면서 거기에 맞게 적절한 이자율을 매겨야 한다. 그게 본연의 은행 역할이다. 그런데 은행이 리스크 측정 실력이 없으니까 그 부담을 전부 창업 기업에 전가한다. 또 간단히 연대보증을 세우는 식으로 리스크를 쉽게 해결하고 있다. 공짜로 돈장사할 수 있는 면허를 국가에서 받은 만큼 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실력은 키우지 않고 연대보증으로 해결하다 보니 사업에 한 번 실패하면 금융사범으로 전락해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기업가들의 위험 회피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기업가정신 약화는 벤처의 퇴조에 따른 것인가, 주주가치 경영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인가?
주주 중심 경영이 자본주의의 정답은 아니다. 주주 중심 경영은 미국식 자본주의일 뿐이고, 유럽은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이 대세다. 우리나라에 아무런 비판 없이 미국식 자본주의가 정답인 것처럼 들어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어떤 모델이 우리 현실에 맞는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공론화해야 한다. 그동안 압축성장을 향해 달려오면서 이를 고민하지 못했다. 이해관계자 경영을 중시하는 유럽 기업이 미국 기업보다 약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경제 유형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따라 방향을 잡아나간다.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없고 조정이 필요한데, 이제 논의할 때가 됐다. 기업은 장기 존속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주주 중심 경영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된다. 많은 수익을 내고 주주에게는 보탬이 되지만,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건강을 해치는 나쁜 존재, 즉 범죄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이해관계자를 생각하는 경영이 정착돼야 한다. 안철수연구소는 지금까지 이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주주가치 극대화를 표방했다면 일반인에게 백신을 무료로 배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적인 ‘인터넷 대란’이 발생했을 때 우리 연구소 직원들이 전부 공공기관에 파견돼 방어하는 데 투입됐는데, 인건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 사실은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예산 편성이 안 됐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에서 인건비를 안 주더라. 철저하게 주주 중심 경영을 했다면, 직원들은 안 보냈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한국 CEO들의 기업가정신을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전문경영인들을 보면 최고경영자(CEO)보다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가 많다. CEO는 기업의 큰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고 기업가정신을 갖고 투자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COO는 일단 커다란 분야에 투자 결정이 이뤄진 뒤 매일매일 기업을 잘 경영하고 효율을 높이고 인사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너경영인이 진짜 CEO이고, 전문경영인은 CEO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하고 싶어도 스스로 투자 결정을 못하고 지시만 받는 것으로, 한국 기업 구조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CEO 풀’이 부족하다. 진정한 전문경영인 풀을 넓히려면 오너가 투자 결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줘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가이드라인이 ‘지행33훈’(知行33訓)으로 정리돼 많은 기업인들이 지침으로 읽고 있다. 이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평가한다면.
이건희 회장님 (잠시 생각하더니) 기업가정신을 갖고 계시죠. (안 교수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재벌 해체를 주창하는 사람은 아니다. 전문경영인이 나은지 오너경영이 나은지 정답은 없다. 두 유형이 경쟁해서 실력 있는 쪽이 선일 뿐이다. 실력 있고 사리사욕만 채우지 않는 사람이 경영인이 돼야 한다. 출신 성분은 중요하지 않다. 재벌기업이 한국 경제에 나름대로 공헌한 것이 있고, 재벌 해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국가경제 리스크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포트폴리오 투자를 왜 하는가. 여러 주식에 분산 투자해 위험을 낮추는 것인데, 국가경제 운용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소기업·벤처 기업은 거의 다 죽어버리고 대기업만 남아 있는 형국이라서 위험이 매우 크다. 외환위기 때 국가경제가 한 방에 다 날아가버리지 않았는가. 대기업 중심의 커다란 구조가 한쪽에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되, 그 옆에 중소기업·벤처 기업이 거의 같은 규모로 튼튼하게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한쪽이 힘들 때 다른 쪽이 버텨줄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벤처 기업이라는 튼튼한 두 기둥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 구조를 없애야 한다.
어디선가 “삼성동물원에 한국 경제와 시장이 갇혀 있다”고 했는데, 재벌기업 삼성을 비판하는 이유는.
삼성뿐 아니라 전체 대기업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삼성동물원’만 말한 게 아니고 ‘LG동물원’ ‘SK동물원’도 말했다.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전반적인 착취 문제가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묶여 있는 현상을 동물원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새로 창업해 매출액 1조원이 넘은 회사는 웅진과 NHN밖에 없다. 이 둘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매출을 올리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고, B2B(기업 간 거래)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은 피가 마른 것이다. 정부가 대기업 위주로 정책을 펴오고, 중소기업은 깔아뭉개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 무법천지를 방조해왔다.
지난해 12월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2010' 행사에서
안철수 교수가 '벤처기업 성공의 조건'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기업들이 단기성과주의에 빠지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인내하는 자본’을 투자하게 하려면 제도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경영이 문제다. 이해관계자 관점의 경영으로 바꿔가야 한다. 정부조차 단기적 시야에 빠져 비정규 노동을 고용하고 있다. 정부 부처가 다양한 이유는 각 부처가 맡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다른 분야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식경제부 장관은 산업체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서로 열심히 싸워야 한다. 둘이 같은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동안 민간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만 자꾸 언급하는데, 공공기관도 불공정거래 주범 중 하나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을 외치는 와중에도 공기업들이 거래 중소기업에 대해 불공정거래를 일삼고 있다.
동반성장과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 대한 생각은.
초과이익 공유는 결과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선 순위가 바뀌었다. 결과보다 과정의 정당성 문제가 먼저 이야기돼야 한다. 이익을 나누는 문제는 현행법상 불법적 거래 관행을 먼저 엄하게 다스린 다음 논해야 한다. 새로 법이나 제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 현행법 아래서 불공정거래를 하면 가차 없이 처단하고 한 번 적발되면 불공정거래로 취한 이익의 10배, 100배를 과징금으로 매겨야 한다. 시혜성은 곤란하다. 나아가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핵심은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대기업 내부 관련 부서의 인사평가 기준에 있다. 그 팀에 속한 실제 담당자의 인사평가가 단기 성과에 맞춰져 있다면, 아무리 대통령이 대-중소기업 상생을 외치고 대기업 총수가 돈을 내놓아도 안 된다. 더 많은 실적을 못 내면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거래 중소기업을 더 쥐어짜지 그 누가 상생에 참여하겠는가. 동반성장 구호를 외치고 납품 결제만 빨리 해준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그건 단기 처방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안 교수에게 ‘공정’과 ‘정의’란 무엇인가?
이론적으로야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가진 사람도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는 것이 공정이다. 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 편에 기울어야 하는 게 ‘정의’다. 한쪽에 너무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에 전쟁이 나면 사회 지도층의 전사자가 더 많았다. 사회적 강자일수록 군대 가는 사람이 훨씬 적은 우리 현실은 정의롭지 못하다. 지도층이나 강자일수록 법의 심판을 더 혹독하게 받아야 한다. 불공정거래 같은 불법적 이익 약탈 행위는 기업가정신을 해치고, 사람들을 겁나게 하고 도전 정신을 가로막는 핵심 문제다. 이것만 해결되면 중산층 붕괴 등 많은 문제가 연쇄적으로 풀릴 수 있다.
‘시장’이란 무엇인가?
한국적 환경에서는 시장에 ‘심판’이 있어야 한다. 시장에서 규제를 없애는 건 좋다. 대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여러 규제를 풀어놓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내버려두면 약육강식의 동물원과 정글이 된다. 축구 경기에서 룰이 복잡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룰을 줄이지만, 최소한의 규칙이 지켜지는지 잘 봐야 한다. 자유시장의 기능에는 찬성하지만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창업자를 2~4명으로 하기를 권한다. 혼자 창업하면 부족한 면이 많아 실패 확률이 높다. 1인 창업기업일수록 실패 확률이 높다. 2명 이상을 권한다. 한편 5명 이상이면 의견 일치가 어렵다. 민주주의를 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 가장 바람직한 건 만장일치다. 그래서 4명을 넘는 건 좋지 않다. 창업자 수는 그렇고, 내부에 있는 사람들도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전부 연구원 성향이거나 전부 내성적인 사람 일색은 좋지 않다. 성격, 전문 분야, 리스크 감수성이 서로 보완되도록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제품’이란 만들 수 있거나 만들고 싶은 제품이 아니다. 사용자와 시장이 원하는 제품이다. 창업자 대부분이 기술자고 기존 회사에서 거부당한 것을 가지고 나와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실패하는 일이 많다.
우리 시대 청년과 대학 이야기를 해보자. 카이스트 학생들이 최근 잇따라 자살하면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침묵하다가) 학생들이 불쌍하다. 어떻게 하면 자라나는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카이스트 내부 사정이야 내가 잘 알고 나름대로 생각도 있지만, 곧 학교를 옮기게 된 입장(안 교수는 조만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갈 예정이다)이라서 카이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카이스트 브랜드도 국가의 큰 자산인데, 이번 일로 브랜드가 망가지면 모두 손해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의 종속변수다. 여러 가지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카이스트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불거져나온 것이다. 그 속에 사회구조적 문제가 모두 잠재해 있다. 현상만 보여준 채 넘어가거나, 사람 몇 명을 바꾸고 지나가면 안 된다. 구조적 문제까지 들어가서 카이스트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몇 사람만 바꾼 채 끝나고 또 잊어버린다면 발전은 없다. 전 국민의 엔터테인먼트인 양 그렇게 지나가면 안 된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하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 강의와 청와대 모임이 겹칠 경우 강의를 더 중시한다고 들었다.
갑자기 청와대에서 ‘와서 조언을 해달라’고 간혹 요청하는데 학생들과의 강의 약속이 우선이다. 어차피 청와대에 가서 조언해봤자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다. 대학에서 교수들이 학생 교육에 관심을 더 많이 쏟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에서 교수들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다. 학생한테 수업을 잘해봤자 승진이나 정교수 되는 데 별 혜택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의만 잘하는 교수는 우리 대학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또 불쌍하다. 대학 경영자들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정부도 이를 고치는 쪽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한 명의 뛰어난 인재가 1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주창한다. 인재에 대한 생각은.
한 사람의 인재가 기업과 한국 경제를 먹여살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인재가 활약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처럼 창의성이 아닌 ‘스펙’으로 사람을 뽑는 환경에서는 그런 인재가 발붙일 수 없다. 그런 인재는 스펙에 관심 없고, 그래서 발탁 자체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인재가 1만 명의 먹을거리를 만든다 해도 1만 명 몫을 독식하는 인재는 우리 사회에 별로 필요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인재다. 이제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합해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뤄가는 시대다. 자신의 분야에만 정통해서는 전문가가 되기에 부족하다.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까지 있어야 한다. 즉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나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A형 인재상’을 얘기한다. 알파벳 A는 ‘사람 인’(人)자에 가교가 놓여 있는 모양으로,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나타낸다.
청년들의 스펙쌓기와 공무원 선호 등 안정 추구 경향에 대한 비판이 많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모두 독립적이고 도전 정신이 강한데, 정신이 사회적 구조에 짓눌려 있다. 나를 포함해 사회구조를 만든 사람들의 책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강하고 도전 정신이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문제가 더 큰 힘으로 젊은이들을 안전 지향적 선택을 하도록 몰아넣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디선가 “지금은 수평적 사고와 융합의 시대”라고 했는데, ‘융합의 시대’는 어떤 것인가?
융합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 애플의 아이폰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이 서로 융합된 것으로, 아이튠스로 대표되는 마켓플레이스를 보자. 이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나아가 상생하는 생태계 개념까지 포함된 작품이다. 옛날처럼 한 분야만, 전자공학만 고집하고 거기에 매달리면 이런 융합 제품은 만들어낼 수 없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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