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마나슬루 라운딩 트래킹

2011. 7. 4. 17:31[사람과 산]/▒ 해외트레킹 ▒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여행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또 언제나 외로웠다.
떠돌이 별처럼 많은 길을 흘러다녔다.
그러나 항상 따뜻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 당기는 별자리 들처럼
나를 우주의 끝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류시화의 “지구별여행자” 중에서

사람 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산을 오를 때, 특히 히말라야 같은 큰 산을 오를 때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슬기롭게 그 고난을 넘어설 때 닥친 시련보다 훨씬 커다란 환히도 함께 안겨 준다.
3월8일부터 23일의 일정으로 네팔에서도 제한된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고 1991년에야 개방된 가장 숨겨져 있는 트레킹 루트 중의 하나로

아직도 입산허가를 1년에 1천명으로 제한하는 – 과다한 입산료와 마오이스트들의 문제 등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인원만이 들어가는-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을 작년 10월에 이어 다시 다녀왔다.
한국인에게 비극의 산으로 잘 알려진 마나슬루(8,156m)는 네팔 제일의 휴양도시이자 제2의 도시인 포카라에서 북동쪽으로 60km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북봉(7,371m)과 서봉(7,540m), 히말출리(7,893m)등을 위성봉으로 거느리고 있는 세계 10위의 고봉이다.


마나슬루는 산스크리트어로 “마음”이나 “영혼”을 뜻하는 마나사(manasa)와 토지를 의미하는 룽(Lung)의 합성어로 영혼의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근 부족들의 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1952년부터 3회에 걸친 정찰 및 등반 시도 끝에 1956년 일본대(대장 : 마끼)의 이마니시와 셀파 갈첸 노르부가 처음으로 정상의 빗장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1년 최초 원정에서 김기섭대장이 추락사하였고 그 후 72년 김정섭대장이 이끈 원정대에서 6,950m 지점에서 눈사태를 만나 히말라야 역사상 2번째로 많은 15명(한국대원 4명, 일본대원 1명, 셀파 10명)이 죽은 비운의 산이나 1980년 동국산악회(대장 : 이인정)에 의해서 세계 8번째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안나푸르나나 에베레스트와는 달리 등반을 전문으로 하는 트레킹 회사를 통해서만 퍼밋을 받을 수 있는 마나슬루는 트레킹 퍼밋을 받을 때 이민국 관리가 정말로 이 사람들과 함께 라르케패스를 넘어 마나슬루 라운드를 할거냐는 의아스러운 질문을 할 정도로 최저 50세에서 70세에 가까운 연배의 10명의 트레킹 동호인들과 함께한 산행이었다. 또한 지원팀인 가이드, 쿡, 키친보이, 텐트맨, 포터사다와 포터 등  현지 스탭 20명을 포함, 총 30명이나 되는 대장정이었다..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은 롯지나 민가 등이 거의 없어 현지에서 식량이나 연료의 조달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막영 도구를 위시한 각종 장비와 운행 중 필요한 식량 및 연료를 출발 전에 준비해야 한다.  입산 규정도 성수기를 기준으로 볼 때 대원 1인당  1주일에 90불의 트레킹 퍼밋 비용과(라운드 트레킹일 경우 최소 10일 이상 걸어야 되어 180불을 지불해야함) 이와는 별도로 마나슬루 공원 입장료 – 2,000루피(약 30불)를 지불해야 하고. 라르케 패스를 넘어서게 되면 안나푸르나 산군으로 접어들게 되어 안나푸르나 트레킹 퍼밋 비용(2,000루피)까지 지불해야 되는 다른 트레킹에 비해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트레킹 루트이다.


더욱이 2002년 6월 까지만 하더라도 트레킹 팀에게도 등반대와 마찬가지로  정부연락관 동행이 의무 규정이었지만, 그 후 마오이스트들의 문제로 정부연락관의 동행 규정이 폐지되어 그나마 종전보다는 비용을 조금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는 산간지역에서 발생하는 마오이스트들의 위협적인 행동으로 연락관으로 지원하는 관료가 전무하여 폐지되었다고 한다.


산행의 난이도에 있어서는 근 20일 가까이 250km가 넘는 산행을 하여야 되며 운행 일정의 말미에 5,220m 높이의 라르케패스를 넘어야 된다. 만일 고소적응이나 기상 상태로 인해 패스를 넘지 못하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게 된다면 1달 가까이 걸어야 되는 고된 산행 루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까다로운 제약조건으로 그 동안 아주 소수의 인원만이 입산하여 오염되지 않은 네팔 산중의 참 모습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마나슬루 히말라야의 비경을 체험할 수 있는 네팔에서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트레킹 루트 중 하나이다.


로니플라넷을 위시한 거의 모든 트레킹 가이드 북이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의 시발점을 아루가트부터 시작하라고 되어있어 작년 10월 마나슬루 라운드를 할 때에는  다딩베시를 거쳐 아루가트부터 시작하는 루트를 선택했었다. 그러나 다딩베시에서 아루가트 까지의 비포장길은 아주 좁을 뿐 아니라, 도로 개설 후 한번도 보수공사를 하지 않은 상태의 장난이 아닐 정도로 험한 길로 소문나 있다. 당시에 험로를 주행하기 위해 특별히 개조한 벤츠 중형 버스를 임차했었지만 수 차례 차량이 전복될 정도의 위기를 맞았고 물이 고인 진구렁 지역을 통과 할 때 마다 바퀴 밑에다 볏집이나 돌을 쌓는 둥 우여곡절 끝에 아주 늦은 밤에 앙쿠콜라(콜라 ; 강이라는 의미임) 와 붙어있는 카르크하이티가온에 간신히 도착했었다. 당시 도도히 흐르는 앙쿠콜라에는 다리의 흔적도 없고 수동식 케이블카에 매달려 강을 건넌 후 아루가트까지 약 4시간 가까이 트레킹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작년 가을과 같은 경험을 다시 격고 싶지 않아 마나슬루 라운딩의 전통적 출발지인 고르카를 기점으로 하는 일정으로 스케쥴을 잡았다.

트레킹 첫날(3월 11일)
카트만두-칸촉(1,340m)
오전 7시 전세버스를 이용 카트만두를 출발하여 오후 2시경  고르카에 도착 후 약간의 야채와 과일을 조달한 후 트레킹을 시작하려고 할 때 아루가트까지의 중간 마을인 칸촉까지 로칼 버스가 운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서둘러 고르카 마을 외곽의 버스터미날로 발걸음을 옮긴 후  이미 꽉 차버린 로칼 버스를 헤집고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아 출발하게 되었다. 막차여서 그런지 이미 버스의 지붕에는 온갖 짐 보따리가 쌓여있다. 네팔 현지인을 포함 총 30명이나 되는 대부대에서 사용할 장비와 식량을 수송하기 위해 별도의 트럭을 임차하여 버스를 따라 오기로 했다. 더욱이 아직도 남아있는 마오이스트들의 문제로 인해 일몰 후에는 차량의 운행이 금지된다고 하여 모두들 서둘러 출발하게 되었다. 칸촉까지의 도로상태는 다딩베시를 거점으로 하는 도로보다는 조금 낫긴 했지만 개통 된지 얼마되지 않아 그런지 도로 곳곳이 보수공사를 하고 있고 험난하기는 별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5시간 여 주행 끝에 저녁 어스름이 짙어갈 무렵 칸촉에 도착한 후 군부대의 도움을 얻어 언덕 위에 위치하여 전망이 그럴듯하고 파란 잔디까지 깔려있는 학교 운동장 한쪽에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에 들어간다.

트레킹 2일째 (3월12일)
칸촉-아루가트(570m)
텐트 플라이를 헤집고 아침 햇살이 비칠 무렵 수많은 네팔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지역을 통해 트레킹에 나서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 동네 주민들이 무슨 큰 구경이나 난 것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든다. 그나마 한 대원이 아기를 업고있는 한 소녀에게 볼펜과 캔디를 주자 조용하던 아침캠프장이 그만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 쌓여 아침식사를 하고 아루가트(570m)를 향해 출발한다. 고르카지방 일대는 비교적 넓은 비옥한 평야로 인해 네팔의 여느 지방보다 풍요로워 네팔 농촌 풍경 중 압권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4시간 남짓 산허리를 뚫고 나있는 한적한 길을 따라 걸어 앙쿠콜라을 내려다보며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아루가트로 들어 선다. 아루가트는 쿰부산군의 남체바잘처럼 마나슬루 인근 지역의 모든 물자를 공급해주는 비교적 커다란 마을이다.
작년에는 마오이스트들의 영향으로 마을 어느 곳에서도 맥주를 팔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비교적 안정이 되어 그런지 가게마다 각종 맥주와 여러 야채류를 팔고있어 마을 전체가 훨씬 활기 차있다.
부리간다키 계곡으로 접어드는 마을 외곽에 자리잡은 유일한 캠프장에 도착하니 이미 스위스부부가 네팔의 스탭들과 함께 캠핑을 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여러 동의 텐트를 함께 설치하고 식탁까지 펼치니  풍치가 아주 그럴듯하다. 오후 들어 나빠지는 히말라야 특유의 날씨가 여지없이 찾아 들더니 한술 더 떠 아주 굵은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트레킹 3일째 (3월13일)
아루가트-아말라(780m)
시련의 전주곡은 이날 새벽부터 시작 되었다. 새벽녁에 누군가 큰소리를 외쳐 일어나보니 캠프장에 도둑이 들어 비에 젖은 신발을 말리고져 텐트와 플라이 속에 넣어둔 필자의 트레킹 신발과 다른 대원의 샌달 3켤레를 훔쳐간 것 이였다.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 하기도 전에 신발을 잃어버렸지만, 네팔애들은 조리신고 다니며 산행을 하는데 내 발은 무슨 금테 둘렀다고 잠발란 트레킹화냐 하며 그나마 이 산골짝에서 만원 짜리 가짜 트레킹화라도(그것도 무지하게 큰) 살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트레킹에 나서게 되었다. 어제 내린 비로 봄 색깔이 더욱 완연해지고 맑은 공기 속에 새벽녁의 신발도둑 사건을 날려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걷다보니 산티바자르와 아르케바자르를 거쳐 부리간다키계곡의 지류인 소티콜라를 지나 오후 3시경 건너능선에서 폭포가 떨어지고있는 아말라 마을 캠프장에 텐트를 설치한다.

트레킹 4일째 (3월14일)
아말라-마차콜라(930m)
아침부터 푹푹 찌는 것이 오늘 더위가 보통이 아닐 것 같다. 작은 폭포가 나타나자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모두들 홀딱 벗고 폭포수로 뛰어든다. 지나가는 이 아무도 없고 단지 흘러가는 구름과 물소리에 취해 멍하니 폭포수에 잠겨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를 흐르는 폭포수에 떨궈버리고 다시 일정을 재촉한다. 급경사의 절벽을 가로질러 조그맣게 난 길을 오르고 내리며 수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와 몇 개의 지류를 따라 가다 보니 부리간다키강 의 바닥으로 내려간다. 수석 천지인 강을 따라 물가 언저리에 뻗쳐있는 모래톱을 따라 걸으니 예쁘장하게 생긴 네팔처녀 둘이서 우리를 따라온다. 말을 걸면 수줍게 웃기만 할 뿐 조심스레 따라오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시골 아낙처럼 생각되어 여느 곳의 네팔인 들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마나슬루 트레킹 도중 만난 현지 여자들의 모습에서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색도 우리와 같이 하얗고 뽀얀 얼굴을 볼 수 있어  모두들 하는 얘기가 이곳의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제대로 옷을 갖춰 입으면 굉장한 미인 일 것이라는 얘기들을 한다. 공연한 헛 침을 삼키고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과 숲길을 따라 걸으니 2시가 조금 넘어 물고기의 강이라는 마차콜라에 도착한다
강 이름이 그래서인지 올라오는 도중 그물을 든 몇 명의 늙은 어부를 만날 수 있었는데 마치 강태공처럼 고기가 잡히든 안 잡히든 계속해서 강물로 그물을 던지는 모습에서 히말라야 성자와 같이 느낌이 든다. 강쪽에 위치한 캠프사이트에 야영준비를 하고 제일 통통하고 커보이는 닭  3마리를 사서 압력밥솥에 넣고 서울에서 가져온 황기와 대추까지 넣고 백숙과 닭죽을 끓여 푸짐한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그새 산중으로 조금 들어왔다고 저녁 강바람도 불며 어제 저녁보다는 온도도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지내기가 훨씬 수월하다.

트레킹 5일째 (3월15일)
마차콜라-쟈가트(1,370m)
오늘 우리의 계획은  쟈가트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어차피 체력이 있을 때 조금 많아 올라가자고 했고 동행한 분들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몹시 익숙하여  포터들이 조금 힘들어 하지만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산행 일정을 네파맵스에서 인쇄한 마나슬루라운드 지도와 로니플라넷의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책을 주로 참고 삼아 계획하였는데 지도는 간혹 틀리게 표기된 곳이 있다. 통나무다리로 마차콜라를 건너니 산 위쪽으로 지금까지 본 폭포 중 가장 크고 수량이 많은 폭포가 걸려있다. 마나슬루 산행 도중에는 섬머 트레일과 윈터 트레일로 명시된 이정표와 두 갈래 길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섬머트레일은 산 허리를 감아 돌아 길이 나있으며 윈터 트레일은 강 바닥 쪽으로 길이 나 있다. 섬머트레일은 계곡물이 불어나 강바닥으로 걸어가지 못할 때에 주로 사용하는 길이다. 마나슬루 트레킹은 10월에서부터 이듬해 4월까지 트레킹이 가능하여 주로 윈터트레일 쪽으로 산행을 하면 된다. 숲속 깊숙히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따뜻한 물이라는 뜻의 따또파니에 도착한다. 조그만 상점 앞에 벽을 따라 온천 물이 흘러 내리는데 그물이 아주 따뜻하고 수량도 많이 흘러 모두들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는 등 한적한 시간을 보낸다. 따또파니를 지나 넓게 펼쳐진 부리간다키 계곡을 건너 계곡의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도반까지 올라간다. 산 깊숙히 들어 왔는데 계곡은 오히려 아래쪽보다 훨씬 넓어졌고 계곡 위쪽으로 솟아있는 절벽은 훨씬 높아져 있다. 몇 차례 신발을 벗고 작은 지류를 건너고 통나무다리를 넘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언저리를 따라 걷다 보니 4시가 다 되어서 오늘의 목적지인 쟈가트 바로 아래 펼쳐진 강변마을에 여장을 푼다. 이제 저녁에는 조금 쌀쌀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온이 떨어져 있다. 4가구가 모여 살고있는 이곳은 마을주변이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여인들의 모습도 얼굴이 하얗고 깨끗해보여 모두들 예뻐 보인다. 우리는 트레킹 도중 간식으로 날 계란을 자주 사먹었는데 이곳의 닭이 낳은 계란은 자연산 유정란 그 자체로 작지만 비린내도 나지 않고 신선하여 그 맛이 아주 그만이다.

트레킹 6일째 (3월16일)
쟈가트-춤제(1,670m)
어제 저녁 비가 내렸지만 강 건너 물 안개가 뽀얗게 피어 오르고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것이 오늘 날씨가 아주 그만일 것 같다. 7시에 출발하여 5분 남짓 올라가니 쟈가트 마을의 작은 광장에 도착한다. 원래 이곳은 체크포스트와 공원 안내소가 있는 곳이나 마오이스트의 영향으로 모두 굳게 닫혀져 있고 동네 전체가 텅하니 비어있는 것 같아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연히 비싼 돈 들여 퍼밋을 받았구나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갈 길을 계속 재촉한다. 살레리마을에 들어서니 이젠 티벳의 문화 영향권에 접어들었는지 마을 입구에는 우리의 천하대장군처럼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돌들을 층층이 쌓아 올린 초르텐이 세워져 있다. 또한 쟈가트마을 부터는 지역의 어머니회와 마나슬루 보호지역이 함께 공사비를 대고 지역의 주민들이 힘을 모아 편마암을 잘 다듬어 만든 돌길이 깔려 있다. 이제 짙은 숲 너머 산과 하늘이 마주 닿은 곳에서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곡 양쪽으로 절벽은 더욱 깊어지고 그 절벽으로 이름 모를 거대한 폭포가 계속 이어진다. 제법 넓게 펼쳐진 가테콜라를 건너고 필름에 도착하니 넓직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할 때 산 위쪽에서 서양트레커들과 여러명의 포터들이 내려온다. 아니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을 꺼꾸로하는 사람도 있나 하며 라르케패스의 상태를 물어보니 눈이 많이 내려 패스를 넘어가지 못하고 사마가온에서 몇일 기다리다가 그냥 빽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꽤죄죄한 몰골의 영국팀 리더는 너희가 올라갈 즈음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하며 성공을 빌어준다. 지금까지는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몹시 더웠는데 오늘 구간은 계속 폭포가 이어져 습하며 숲이 울창한 지역이라 그런지 아주 선선하다. 능선 중턱에 자리잡은 에클레바티에 도착하니 좋은 전망의 야영터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계획이 춤제(1,670m)까지 가기로 되어 있어 계속해서 발길을 재촉한다. 네파맵스의 지도상에는 계곡 건너에 위치한 춤제에는 여러 호수의 마을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계곡을 건너기 전 가파른 능선 길에 덩그라니 작은 가옥이 한 채가 있어 지명을 물으니 춤제라고 하고 민가 옆으로 파란 잔디밭이 펼쳐진 캠프그라운드가 있다.

트레킹 7일째 (3월17일)
춤제-갶(2,380m)
능선을 가로질러 난 평탄한 길을 따라 화사한 봄 햇살을 맞아가며 한 낯의 트레킹을 즐기다 보니 부리간다키 계곡을 가로지른 철 다리를 건너 뎅으로 빠져든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 길을 돌고 돌아도 나타나는 울창한 숲을 따라 걸으니 부리간다키 계곡에 하늘 높게 걸려있는 구름다리가 한쪽 와이어가 늘어져 다리발판이 강 바닥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빗물에 젖어 더욱 미끄러울 것 같은  경사진 발판을 조심스레 딛어가며 하늘로 걸려있는 한쪽의 와이어를 잡고 마치 유격훈련 하듯이 다리를 건너 계속 발길을 옮기다 보니 페와(2,300m)에 도착한다.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작은 이정표가 박혀있는 페와는 계곡쪽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야영장이 있다. 계곡은 가스에 뒤덮여있고 온갖 새소리와 원숭이 소리에 손오공이 산다는 수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페와를 출발 1시간 여 올라가니 부리간다키 계곡과 산 위쪽의 쵸낙쿤드(호수)와 연결된 뎅 계곡이 마주 닿아 넓직하고 쾌적한 곳에 위치한 뎅에 도착한다. 덩그랗게 하나있는 오두막집 앞에 작은 좌판이 벌려져 있고 양은 냄비에 몇 개의 콜라와 스프라이트가 담겨있고 마나슬루 호텔이라고 이름까지 붙어있다.  꽤죄죄한 모습의 늙은 사우지에게  삶은 계란과 감자와 달밧을 주문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능선위로 뻗어오른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봄비치구는 제법 빗줄기가 굵어 서둘러 걸음을 옮기니 능선 언저리에 자리잡은 비히에 도착한다. 비히의 아래쪽에 넓은 캠핑장이 조성되어 있지만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데다 맞바람 지역이라 갶까지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히를 출발하여 티벳 쪽으로 뻗은 쉬링기콜라에 도착하니 조금 전 내리는 비가 그치고 파란하늘 모습이 보인 북동쪽으로 쉬링기히말(7.187m)과 파마히말(6,300m)이 그 자태를 나타낸다. 갶에 가까이 오니 지나왔던 곳과는 달리 제법 넓은 밭과 야크목장이 펼쳐져 있고 가구도 꽤 여러 채 되는 것 같으며 집집마다 굴뚝에서 맑은 하늘 위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는게 넉넉함이 느껴진다. 마을 입구에는 티벳 풍의 마니스톤 월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각종 불경과 부처님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타르초가 기다란 장대에 매달려 있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올라가니 갶이라는 이정표가 서있는 곳에 마나슬루 타쿠리호텔이라는 간판까지 붙어있는 작은 롯지가 하나 있는데 롯지 앞쪽으로 2단으로 아담하게 조성된 캠프싸이트가 있다. 이곳에서는 아루가트에서 만났던 스위스팀 이 캠핑을 하고 있다.
이제 저녁에는 날씨가 아주 쌀쌀하여 오리털 파카를 입는 등 보온에 신경을 쓰다 나무부스러기를 긁어모아 모닥불을 핀다. 부엌에서는 우리네 농촌에서 소죽을 삶는 것 같이 커다란 가마솥에 좁쌀과 풀 뿌리 빻은 것 같은 가루를 삶고 있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록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날씨가 쌀쌀해 부엌의 화로가에서 둘러 앉아 향후 산행 스케쥴을 의논 하며 록시를 주문하여 마셔보니 다른 곳에서 마셔본 것보다는 아주 독하고 맛이 아주 그럴듯하다.

트레킹 8일째 (3월18일)
갶-남룽(2,550m)
오늘은 어제와 달리 아주 짧은 일정으로 남룽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길 중간 중간에 부처님의 눈을 그려놓은 스투파(불탑의 한 종류)와  티벳 풍의 마니스톤 월이 늘어서 있고 넓직한 편마암으로 만든 마니석 하나하나에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탱화에서와 같이 불경과 부처님의 모습이 아주 섬세하게 부조 되어있다. 투명한 햇살을 받아 편마암의 작은 입자가 반짝이는 마니석을 바라보자니 종교에 대한 외경심이 절로 생긴다.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셀 수없이 많은 마니스톤을 길 중간 중간에 세워 놓은 불교에 대한 그들의 신념이 놀랍기만 하다. 밀밭이 넓게 조성된 프록과 남바체라고 불리는 마을을 지나 제법 큰 마을인 남룽에 도착하니 정오도 되지 않은 11시경이었는데 아주 멋지게 조성된 캠프싸이트와 주변의 풍광이 좋아 일찌감치 자리를 잡기로 했다. 특히 이 주변에는 우리의 얼가리 배추와 흡사한 야채를 아주 풍성하게 재배하고 있어 떨어져가는 김치를 담그고, 마치 새와 같이 날라 다니는 닭을 사서 백숙과 닭죽을 끓여 먹으며 오랜만에 한적한 일정을 보내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이제 해발고도가 2,500m를 넘어서니 아침 나절에는 기온이 아주 많이 떨어지며 대체적인 운행 일정이 그리 길지않아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기로 한다.

트레킹 9일째 (3월19일)
남룽-시얄라(3,330m)
남룽을 출발하여 밀밭이 넓게 펼쳐져 있지만 텅 비어 있는 바르캄 마을을 지나 리히(2,900m)에 도착하니 장대처럼 높이 솟은 사과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망태에 담긴 사과는 자두보다 조금 크고 볼품없지만 아주 신선하고 달작치근 한 것이 먹을만하다. 강가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인 히난과 소를 지나며 넓게 펼쳐진 감자와 밀밭 풍광에 도취되어 올라가다 길 중앙에 길고 아주 높게 축성된 마니스톤 월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히말라야의 고봉에 둘러 쌓여 풍광이 아주 그럴싸한 언덕에 위치한 로에 도착한다. 로를 지나니 오르막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고도가 3,200m가 넘어서 인지 모두들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계곡 중간에 펼쳐져 있는 야크 사육장과 현대식으로 벽돌건물로 지어놓은 수력발전소를 지나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 언덕바지 위에 마나슬루 영봉들이 펼쳐져 있는 제법 큰 마을인 시얄라에 들어선다. 이곳은 마나슬루 지역에 널려있는 커다란 나무를 벌목하여 각종 판재류와 목기 등을 생산하는 일종의 제재소 단지이다. 마을의 남쪽으로는 마나슬루의 주봉을 비롯한 히말추리(7,893m) 연봉들과 북쪽으로는 팡푸치(6,335m)와 사울라히말(6,238m)이 장벽을 이루며 쓰러질 듯이 솟아있고 해발 3,330m의 높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만년설에 뒤덮여 번쩍이는 산들과 숲이 어우러져 마나슬루들어 최고의 풍광을 보여준다. 해발고도가 3000m 가 넘어서인지 흰눈이 가득 덮여있고 고개마루 올라올때부터 흩날리는 빗방울이 찬바람과 함께 눈이 퍼붓기 시작한다.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고 지천에 널려있는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운다.

트레킹 10일째 (3월20일)
시얄라 –사마가온(3,390m)
사마가온으로 발길을 옮긴다. 능선을 빙돌아 내려가니 아주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고 수백마라의 야크떼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다. 그간 일주일여 동안 하늘높이 솟아있는 협곡지대를 따라 올라와서 인지 이 깊은 산중에 나타난 초원지대가 더욱 넓게 느껴진다. 넓은 평원을 가로 질러 나있는 길 중앙에 커다란 스투파와 마니스톤월이 서 있고 초원 지대 끝자락에 자리잡은 마나슬루 등반의 전초기지인 사마가온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트레킹 구간 중 가장 크고 깨끗한 롯지가 있고 석유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전날 내린 눈이 녹아 롯지의 2층 헛간을 정리하여  텐트를 설치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 능선 위쪽에 자리잡은 사마승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개울을 가로질러 올라가니 능선 위에는 비교적 큰 절과 여러 호수의 집이 서 있었지만 라마승들과 주민 모두는 산 아래쪽으로 피한을 떠나 마을은 텅 비어 있고 아주 늙은 할머니 한 분이 허물어져 가는 폐가에 기대어 외롭게 앉아 있다.    

트레킹 11일째 (3월21일)
사마가온 –올드베이스캠프-사마가온  
사마가온에서 휴식을 하다 마나슬루 BC까지 올라갔다 오기로 한다. 능선 위쪽에 자리잡은 곰파를 지나 가파른 능선 위에 올라서니 바로 앞에 마나슬루가 번쩍이며 서있다. 우리를 반기는 듯이 빙하를 따라 눈사태가 크르렁거리며 퍼부어 내린다. 능선에 덮여있는 설사면을 가로 질러 눈보라를 날리며 비렌다달이라 불리는 호수가로 내려간다.. 번쩍이는 흰산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고 그 앞에 펼쳐진 에머랄드빛 빙하호수가 류시화시인의 명상집 제목인 하늘호수처럼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 이것이 천상인가하며 . 베이스캠프쪽을 따라 올라가다 하산길을 서둘러 사마가온으로 돌아온다.

트레킹 12일째(3월22일)
사마가온-삼도(3,780m)
삼도까지 올라가는 비교적 짧은 일정이다 약 4시간 여 천천히 올라가면 티벳티안 피난캠프가 있는 삼도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바로 지척인 북쪽고개 건너에 위치한 티벳에서 피난나와 정착촌을 이루고 이 척박한 땅에서 야크와 감자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미 이곳은 4,000m가 훨씬 넘고 바람도 몹시 세게 불어 농가 헛간을 빌려 텐트 4동을  설치하고 곰파의 스님의 양해를 얻어 헛간 의 바로 위에 있는 커다란 프레이어휠이 설치되어있는 법당 안에 나머지 텐트 2동을 설치했다.

트레킹 13일째 (3월23일)
삼도-다람살라(4,460m)
라르케 패스를 넘기 전 베이스캠프라 불리는 다람살라까지가 오늘의 일정이다. 4,500m가 넘는 고도에 접어드니 흰 눈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중간 중간 아슬아슬한 비탈길을 건너 바람이 몹시 부는 다람살라까지 올라간다. 이곳에는 돌집이 하나 있어 가이드를 위시한 포터 등은 돌집 안에서 식당텐트등을 이용해 막영을 한다. 돌집 앞쪽으로 가지러니 텐트를 설치하고 포터들이 피워 논 모닥불가에 둘러서서 추위를 달랜다. 바람이 몹시 불지만 그런대로 내일 날씨는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트레킹 14일째 (3월24일)
다람살라-라르케패스(5,220m)-빔탕(3,630m)

본격적인 시련은 패스를 넘어가는 날 다가왔다.
라르케 패스는 높이도 5,220m에 달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파른 능선을 트래버스 해야 되는 악명 높은 루트이다. 그런 연유로 4,640m 높이의 다람살라 베이스캠프를 새벽에 출발하여 패스에 도달한 후 계속되는 내리막 산행을 하게 된다.
새벽 2시에 우리 팀은 운행 속도가 느린 최해숙(52세, 여)씨를 가이드 뱀바와 함께 출발시키고 나머지 사람들은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모두들 비교적 고소적응에 문제가 없고 컨디션도 괜찮은 것 같다. 단지 어제까지는 바람이 불긴 했지만 비교적 나쁘지 않은 날씨 였건만 전날 밤부터 흩뿌리기 시작한 눈이 새벽에도 계속 이어진다. 다행히 눈발은 그리 굵지 않아 헤드랜턴 불빛 아래 정상을 향해 산행을 하게 되었다. 패스 정상에 오전 9시에 도착한 후로 30분 여 간격을 두고 일진이 도착하여 약간의 기념 촬영을 한 후 하산길을 재촉하였다.
시련은 지금부터 시작했다.
정상을 넘어 하산 길에 접어들 무렵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가스까지 차 올라오며 히말라야 특유의 오후가 되면 나빠지는 기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화이트아웃 초기 현상이 나타나며 가뜩이나 가파른 사면에서 길을 찾기가 아주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선두에 서서 어제 저녁부터 내린 눈을 럿셀하며 내려가야 하는 나는 몹시 힘이 들고 지쳤지만 눈에 보이고 소리를 질러 대답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몰아쳐서 서둘러 하산 길을 재촉했다.
급경사의 설사면을 내려와 어느 정도 안전지대에 도착한 사람은 전체 대원 10명 중 6명 뿐으로 나머지 4명은 눈보라 몰아치는 저 산속을 헤메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지만 중간중간에 베터랑이 끼여있어 애써 위안을 삼고 하산 길을 재촉했다.
빔탕(3,760m)이라 불리는 캠핑지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 되었고 지친 사람들을 위해 차를 끓여 가스가 가득찬 저 산속으로 1차 지원팀을 보냈다. 오후 3시 경 : 지원조의 따뜻한 음료를 얻어마신 1진 중 총 5명이 빔탕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나머지 내려오지 않은 4명을 위해 1차 구조대를 선발하여 뜨거운 음료와 행동식을 지참하여 정상부로 출발시켰다.
다행히도 구조대의 출발과 함께 4시가 조금 넘어 눈속을 헤메이다 후미 3명이 빔탕으로 안전하게 내려 왔다.
4시10분 저 산속에는 가이드 뱀바와 1명의 완전히 고소적응이 되지않은 대원이 남아 있어 계속해서 1차 구조대에게 나머지 2사람을 만날 때까지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마지막 후미인 최해숙씨의 걸음을 생각해 볼때 대충 밤 10시에서 11시경 내려와야 되는데 밤은 깊어지고 내려와야 될 시간은 점점 지나갔다.
자정이 가까워 올 때까지 내려오지 않아 등대지기가 등대불울 밝혀 배를 유도하듯 캠프 싸이트 끝에 콜맨등을 켜놓고 등대지기의 심정으로 밤새 앉아 있었다.

트레킹 15일째 (3월25일)
빔탕-다라파니(1,860m)
새벽 2시 30분 헤드랜턴 불빛이 저 위쪽 능선에서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올라가 보니 1차 구조대 2명만 내려오고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도저히 정상까지 접근을 못하고 돌아 왔고 나머지 2사람과는 무전교신을 했는데 정상에 도달 후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날이 어두워져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대피소에서 밤을 지샌 후 날이 밝으면 다시 내려오겠다고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니 대피소라 해 봤자 지붕도, 창문이나 문도 없는 간신히 바람만 가려줄까 말까 한 5,000m가 넘는 짓다만 돌집에서 침낭도, 텐트도, 아무런 연료와 물도 없이 비박이라니.... 그것도 눈이 퍼붓는 밤에, 고소 적응이 덜된 여자가..아무리 .8,000m를 수차례 등반한 경험이 있는 가이드 뱀바와 함께 있다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전 대원과 스탶들을 깨운다.
새벽 3시 30분 전날 힘든 산행으로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체력이 남아있는 대원들을 선발하고 다구쳐서 2차구조대를 올려 보냈다.
너무도 위험하여 올라갈 수 없다는 선발된 멤버들에게 1 인당 100$의 구조수당과 함께 만일 그녀를 살려서 돌아온다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회유도 함께하면서...
또한 정상에 7시 이전에 도착해야 된다는 말도 함께...
새벽5시30분 그녀가 만일 살아서 돌아 온다면 삶의 끈이 남아있을 때 카트만두의 병원으로 후송을 하고져 3차 헬리콥터 구조 요청팀을 통신이 가능한 다라파니로 떠나 보냈다. 보통 걸음이라면 8시간 가까이 내려가야 되는 산행 길이지만 4시간 내에 도착해 달라고 몰아 세웠다.
새벽 6시 30분 2차 구조대와 정상에서 밤을 지새운 조난 팀과 정상안부에서 해후하고 하산 길을 재촉했다(산이 가로 막혀 무전 교신이 되지 않아 조우 상황을 빔탕에서는 파악하지 못함)
오전 9시 30분 정상에서 머물렀던 가이드 뱀바가 그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빔탕에 도착했다 - 산행 처음 시작에는 허여멀건한 얼굴에 덩치가 당당한 셀파였는데 그동안 이렇게 마르고 새까매 지다니...그녀도 무사하게(?) 구조대의 부축을 받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30시간이 넘도록 자지 못하고 고소에서의 산행 피로와 함께 그 동안의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눈밭에 쓰러져 눈물을 쏟아낸다. 우리팀의 컨디션으로는 10시간도 더 걸어야 되는 하산길을 고려해 나머지 대원과 포터들을 다음 목적지인 다라파니로 서둘러 내려보낸다.

오후 12시30분 4,640m를 출발 5,000m가 넘는 고지에 36시간 20분 가까이 비박과 산행을 한 최해숙씨가 구조팀의 부축을 받으며 안개 속에서 나타난다.
얼굴에 선번 증세가 보이고 기침을 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고 5,000m에서 비박을 할 때 새벽녁 더 추워지면 네팔 루피나 여권까지 태우려고 하고 계속해서 옴마니밧메홈을 외웠다나..….
오후 2시30분 악천후를 뚫고 헬기가 빔탕에 도착했다.
나머지 대원과 함께 다시 하산 길을 재촉하여 밤 10시경 다라파니에 도착한다.

트레킹 16일째(3월26일)
다라파니-쟈가트(1,300m)

새벽3시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에 도착해야할 최해숙씨와 지원팀 이정섭단장이 다라파니에 도착했다
헬기 파이러트가 헬기의 탑승을 계속해서 권했지만 혼자서 카트만두 병원에 누워있기 싫고 남은 산행을 마저 끝마쳐야 되겠다는 신념으로 일부 구간 말을 이용하여 하산하며 다라파니에 새벽에 도착한 것이다
쟈가트에서 우리 팀보다 하루 먼저 라르케 패스를 넘은 스위스팀 대원과 가이드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맥주를 사준다.  그런 극한 상황 속에 아무런 사고없이 전 대원을 무사히 패스를 넘게 한 너의 팀의 용기와 정확한 판단에 찬사를 보내며 영웅이라고 치켜세운다. .

트레킹 17일째(3월27일)
쟈가트-쿠디(790m)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시작 마을이자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의 마지막 야영지인 쿠디에 도착해 리버사이드 롯지에 자리를 잡고 무사산행과 전대원의 노고를 축하하는 의미로 히말라야 염소를 잡아 스탭들과 함께 빅파티를 한다.

트레킹 18일째 (3월28일)
쿠디-베시사할(760m)-카트만두
작년에는 쿠디에서 약 4시간 여 걸어 트레킹의 종점인 베시사할에 도착했는데 요즈음은 베시사할 근처까지 로칼 버스가 1시간 단위로 운행하고 있어 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이번 산행을 끝냈다.

후기
천당과 지옥이 혼돈되어 섞인 가운데 마친 이번 히말라야 산행은 그간 의 어떤 히말라야 산행 보다도 힘들었지만 그만큼 벅찬 감동도 함께 느낀 산행이었다.
그 어려운 상황을 격은 최해숙씨는 구조대의 도움을 받으며 빔탕에 내려왔을 때 애타게 기다리는 다른 대원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넉넉한 그녀의 몸집과도 같은 배포를 보여주려는 듯 도착하자마자 다음과 같이 농담을 한다.
“그래 트레킹 하다 5,000m 넘는 곳에서 고소적응하며 비박한 X(여자)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 침낭과 텐트도 없이, 그것도 눈보라 몰아치는 밤에….”
,트레킹팀이지만 웬만한 등반대보다 더욱 끈끈한 유대감과 일치감을 함께 느낀, 시련과 환희가 가득 찼던 이번 여행은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동문 산악회가 주축이 되어 유동성대장, 이정섭단장을 위시로 김상복, 백승기, 정길용, 현성기씨와 여성으로 이번 여행의 주역이었던최해숙씨,  이경희씨 또 천안에서 열심히 산행활동을 하시는 한혜자씨가 함께했다.


글 사진 히말라야여행사 대표 최영국

출처 : 세계오지여행정보
글쓴이 : 지리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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