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돌풍’ 너머 그가 던진 ‘메시지’를 보라

2011. 9. 8. 18:11[사람과 향기]/▒ 삶 의 향 기 ▒

‘안철수 돌풍’ 너머 그가 던진 ‘메시지’를 보라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2011

희망공감 창원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시골의사’ 박경철(왼쪽) 원장, 안철수 원장과 대담하고 있다. 평화재단 제공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도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눌렀다. 안 원장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별일 아닌듯 말했지만, 8일 언론들은 일제히 “새로운 바람”의 등장을 주목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돌풍”이라고 표현되는 안 원장이 평소 던져온 메시지다. 서울시장 출마 검토 과정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가상대결에서 확인된 인기로 기존 정치권은 이제야 비로소 그의 정치적 파괴력을 눈치챘지만, 그 동안 그가 던져온 메시지에 이미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기반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진행중인 ‘청춘 콘서트’와 여러 언론 인터뷰 등에서 거듭해 지적하는 것은 “서민, 특히 젊은 세대를 옥죄는 기득권층(대기업)의 횡포”다.

 

삼성 동물원에 갖힌 한국 사회 

 한국의 1등 기업을 표방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노조 경영’으로 대표되는 위계적, 탈법적 경영의 대명사로도 이야기 되고 있는 삼성. 안 원장의 삼성에 대한 지적과 평가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을 잘 드러낸다.

 

 올 3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한홍구·서해성의 ‘직설’)에서 그는 “한국 경제가 ‘삼성 동물원’에 갇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이나 에스케이, 엘지는 자기들한테만 납품하도록 조건을 묶어버립니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세계에서 십몇 위 되는 시장을 가졌는데, 그중 일부인 삼성동물원에 갇혀 있으니까 너무 작아지는 겁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들로 대변되는 기득권층들이 휘두르는 횡포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인터뷰 당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중소기업 상생과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라며 작심 비판을 해 사회적인 이슈가 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 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건 과실다툼이지 않습니까? 그 전에 불법부터 정리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요”라고 인터뷰에서 반문했다.


 그는 이와 같은 불공정 행태가 삼성에게도 이롭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애니콜 때문에 뒤늦게 들어온 아이폰’ 사례와 관련해 “삼성한테 독이 됐죠. 기득권이 과보호되면 기득권에도 치명적인 독”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경남 창원에서 대학생·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열린 ‘청춘 콘서트’에서도 “(재벌들은) 욕심나면 가지려고 하는 갓난아이 같다”고 대기업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한편, 안 원장과 이 회장은 올 7월 한 취업누리집이 뽑은 ‘같이 일하고 싶은 CEO’를 묻는 설문에서 각각 1, 2위를 기록한 경영자이기도 하다. 응답 대학생의 41.2%가 안 원장을 꼽았고 이 회장은 16.5%의 응답을 얻었다.

 

말 잔치로 끝난 공정사회 

 재벌들이 시장의 규칙을 교란하고 있다면 이를 나서서 규제해야 하는 것은 마땅히 정부다. 안 원장이 보기에 현 정부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에도 역시 날선 비판을 이어왔다.

 

 지난해 8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시장이 불공정한데 정부가 감시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불공정거래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뒷짐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정사회’와 ‘공생발전’을 화두로 던져온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말에 그치고 있다”는 게 안 원장의 평소 주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차원에서 칼을 뽑았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회 AM아카데미’ 강연에서 그는 “대통령, 대기업 총수들이 나와서 말하는 거대 담론이 필요한 게 아니라 현행법 틀에서 현장에서 불법이 이뤄지는 것만 적발해도 불법 행위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행하는 횡포를 규제할 수 있는 ‘징벌적 배상제’와 같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안 원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백신’, 즉 지금 가장 시급한 처방으로 “정의”를 꼽았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평가에 걸맞게 보통 그가 언론 등과 나눈 이야기의 전반부는 정보통신기술(IT)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에 “공정”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상대적인 주목도가 적었지만 IT 벤처기업, 중소기업의 이야기로 진전되기 시작하면 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정부 역할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 아이티산업의 문제는 첫째 대기업 위주, 둘째 하드웨어 위주, 셋째 정부든 기업이든 초단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요.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수출액 비중이 너무 커서 그 회사가 기우뚱하면 한국 경제 자체가 충격파를 크게 받게 돼 있어요. 정부가 방조했죠.”

 

청년들의 분노 

 불공정 사회의 피해는 상부에서 하부로 부조리의 ‘트리클다운 효과’(고소득층의 부를 키우면 혜택이 저소득층까지 흐를 것이라는 경제학 용어)를 가져온다. 안 원장이 주목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분노”다.

 

 안 원장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분노한 20·30대가 투표장에 대거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들을 무관심하게 내버려둬서 고통을 당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많이 퍼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제가 접한 것은 전 국민의 조그만 샘플에 지나지 않지만 최소한 제가 접한 사람들은 다 그렇다. 전국 강의를 하면서 들어보면 그전에 별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하다.” 그는 20~30대가 가장 존경하는 멘토다.

 

 그는 ‘불우한 청춘’과 ‘재벌의 횡포’ 사이에 다음과 같이 다리를 놓는다. “대기업·공무원 일자리가 연간 최대 20만개이고 나머진 중소기업이나 창업인데, 대기업이 독점적 권리로 중소기업 이익을 빼앗고 창업의 새싹도 짓밟는 구조다. 결국 (젊은이) 200만명이 10 : 1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 스펙만 쌓는 구조가 됐다.” 지난달 12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함께한 ‘청춘 콘서트’에서 그가 한 말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선 “이 정부 초기에 대기업들에 많은 지원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들어달라고 기대했던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도 “대기업 일자리가 지금까지 200만개를 넘은 적이 없다”며 “(부족한 일자리 창출은) 중소기업이 해야 되는데, 대기업들이 불공정거래 관행으로 (중소기업이) 이익을 못 내게 하니까 고용을 더 확대할 여력이 없다”고 질타했다.

 

  결국 그가 한국 사회에 지금까지 던져온 메시지는 약육강식의 시장 질서를 만들어온 재벌과 대기업들,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염려로 풀이할 수 있다. 동시에 그의 발언에는 ‘규칙 없는 게임’에 대한 분노와 젊은 세대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자신에게 상담을 하러 온 젊은이들의 절반은 운다”는 그는 그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기득권층을 향해 던져왔다.

 

 그의 말은 또한 말뿐에 그치지 않고 소통이 뒷받침 되어 왔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의 말과 다른 힘이 있다. 박경철, 김제동, 김여진씨 등 그가 멘토라고 말하는 그의 지지자들은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SNS)로 대중과 수평적 소통을 계속 해온 이들이다.

 

 특히, ‘청춘 콘서트’의 지방 강연은 소통의 대표적 사례다. 안철수·박경철의 ‘지방 기 살리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이 콘서트에 대해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의원 원장은 “배려받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기성세대 중에 누군가는 당신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이라고 말했다.(<시사인> 2010.6) 둘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콘서트는 계속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왔다. 같은 젊은층 안에서도 ‘또 다른 하위 계급’인 지방의 학생들은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에 목말라 있었다. “분과 초 단위로 쪼개 활동”한다는 안 원장과 박 원장은 그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소통으로 진정성을 보이고자 한 셈이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관점은 지난 6일 박원순 변호사와 ‘후보 단일화’를 밝힌 기자회견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맺은 말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제가 아닌 사회를 먼저 생각해 살아가는 삶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아울러 경쟁에 시달려 지쳐가는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습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