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2탄
2007. 5. 29. 23:53ㆍ[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히말라야 가셔브룸 2봉(8,035m) 등반기 1991년 히말라야 가셔브룸 2봉 해외 원정등반을 다녀온 지가 어느 덧 15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 원정을 다녀온 그 달에 대학노트 약 60페이지 분량의 등반기를 작성하였지만 우리팀은 비용문제 때문에 등반 보고서도 발간하지 못하였다. 우리 울산연맹팀은 그 원정등반으로 여러가지 국내 기록을 경신하였다. 히말라야등반 초행인 대원들이 고소포터 한 명 쓰지 않고 무산소로 최단 시간내에 5명이나 8천미터급 정상등정에 성공하였으며, 또한 8천미터 정상 파노라마를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온 팀은 우리팀이 처음이었다. 이 비디오 촬영화면은 그 당시 KBS 텔레비젼 일요일 저녁 톱 뉴스로 뉴스 시작과 동시에 가장 먼저 방송되었다. 지금 이렇게 등반기를 연재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독자들이 있으니까...또 등반기를 십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타이핑을 완료했기 때문에...ㅋㅋㅋ 1991년 5월 18일 무려 1년 6개월여의 준비 기간과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대망의 히말라야로 출발하는 순간이다. 9시 40분 김포발 노스웨스트 비행기에 올라 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준비과정과 원정훈련들을 생각하며 잠시 상념에 잠겨본다. 오전 11시 36분 비행기는 토오쿄오 나리타공항에 도착한다. 나리타공항에서 파키스탄에어라인 탑승구를 찾지 못해 한참 동안 헤매인다. 물어 물어 겨우 PIA 탑승구를 찾아서 오후 16시 30분 파키스탄에어라인을 탑승하여 나리타공항을 출발하였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비행기는 저녁 20시 25분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도착했다. 마닐라공항내에서 잠시 휴식한 후 21시 45분 비행기는 다시 이륙을 하여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5월 19일 비행기는 3시간 정도 비행하여 0시 30분 태국의 방콕공항에 도착했다. 방콕공항에서 잠시 휴식한 후 02시 20분 다시 방콕공항을 이륙하여 07시 드디어 파키스탄의 옛 수도이기도 한 카라치 공항에 안착하였다. (이하 현지 시간) 03시 공항에 내리는 순간 무덥고 습한 기온이 전신을 감싸안으면서 확 덮쳐왔다. 카라치공항 입궇에는 많은 무리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누워있거나 앉아있었다. 우리팀의 수하물은 모두 8개였는데 카라치-이슬라마바드 간 수송시 오버차지를 70kg(2,180Rs) 이나 물었다. 공항내에는 전통적인 아랍인 복장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이슬람 의식을 행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우리팀은 공항에서 성균관대학교팀의 한상국선배님을 만났는데 성균관대 선발대는 10일쯤 전에 입국했고 선배는 혼자 오시는 길이라 한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다는 감회 또한 각별하였다. 07시 비행기는 카라치공항을 이륙하여 2시간정도 비행하여 09시 파키스탄의 현재 수도인 이슬라마바드공항에 도착하였다. 성대팀의 김창선대원과 울산 낭가파르밧팀의 정봉화대장과 강동중대원이 마중을 나왔다. 짐을 택시에 나누어 싣고 성대팀이 묵고 있는 다운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택시 요금은 120Rs를 요구했고 게스트하우스의 1실 숙박료는 450Rs를 요구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나서 낭가팀의 숙소를 방문했다. 낭가팀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용순대원에게 전화국에 가서 울산에 도착신고를 하게 하였다. 얼마후 낭가팀의 정봉화대장이 자신들의 항공화물을 찾아서 왔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항공화물 통관절차가 아주 간소화 되었다고 한다. 낭가팀에게 파키스탄 관광성 및 경찰서 신고 방법, 한국 대사관 위치 등을 물어서 우리는 대사관에 입국 신고를 하러 갔다. 열대지방의 무덥고 건조한 기후 탓인지 물을 입에 달고 있어도 양이 차지 않는다. 입술은 바싹 바싹 타들어가는데 한 마디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는데 영 신통치가 않다. 5월 20일 지난 밤 항공화물 패킹리스트를 작성하느라 12시가 넘도록 잠을 못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 아침 9시쯤 가까이 살고 있는 현지 교민인 원사범이란 분의 집으로 가서 팩스 사용 허락을 받았다. 두 번이나 한국으로 팩스를 시도했으나 에러가 나서 돈만 낭비했다. 팩스가 연결되지 않아도 사용료는 내야 한다나...이용순대원과 정인규대원은 항공화물을 찾으러 가고 나와 장상기대원은 경찰서 외국인 신고 및 관광성 입국 신고를 하러 갔다. 물어 물어 찾아간 찾아간 경찰서였지만 짧은 영어 실력때문에 서류만 받고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성대팀은 오늘 화물을 항공편으로 부치고 내일 스카르두로 출발한다고 하는데 우리팀은 아직 행정처리를 제대로 한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무 서두르는 것인지 헤매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날씨는 찜통처럼 덥고 말은 잘 통하지도 않고 정말 인샬라라는 말이 실감난다. 저녁에는 원 사범댁에 우리팀과 성대팀, 낭가팀이 같이 저녁 초대를 받았다. 머나먼 이국에서 이렇게 많은 원정대원(16명)이 모이니 왁자지껄하다. 덕분에 몇 일만에 제대로 된 밥과 고기를 실컷 먹었다.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송대장과 팩스 연결이 되었다. 지시 사항을 팩스로 받아 숙소로 돌아와서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울산지부 이사님들과 지부 가맹 산악단체 회장님들에게 보내는 엽서를 썼다. 내일은 반드시 최소한 2가지 이상은 행정처리를 해야 할텐데... 5월 21일 오늘은 아침을 먹고 제일 먼저 외국인 입국 신고를 하러 갔다. 이슬라마바드 경찰서에 가서 드디어 외국인 입국 신고를 마쳤다. 신고 서류는 여권과 사진 2매, 신고양식 1부가 있어야 한다. 외국인 입국 신고를 마치고 관광성에 들러 정부연락관 배정을 독촉하고, 멜로디라는 곳에 있는 국립은행에 청소비를 납부하러 갔다. 청소비 납부 양식은 문구점에도 있고 은행에도 있다. 은행에서 기다리는 동안 배가 너무 고파서 은행 근처에 있는 이슬라마바드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치킨 샌드위치를 사 먹었는데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다시 은행으로 가서 환전에 대해 물어보니 현재 다른 은행에는 달러당 최고 23.57루피를 주는데 자기 은행에서는 23.6~7 정도로 환전해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1달러당 23.6루피의 환율로 500달러를 환전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암달러상에게 가면 달러당 25루피도 받을수 있다고 하던데 좀 위험해도 경비 절감을 위해서는 한 번 고려해 볼 만 하다. 여행자 수표는 공식 환전은 유리할지 몰라도 비공식 환전에서는 불리하다. 청소비 납부는 200달러 또는 달러를 루피로 환산해서 납부해도 되며, 납부 후 영수증 2부를 받아서 1부는 관광성에 내고 1부는 직접 보관해야 한다. 오후에는 대사관에 가서 헬기예치금 4,000불과 공해방지 대책비 1,000불를 예치하였는데 등반 종료 후 반환해 준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정인규대원과 이용순대원이 항공화물을 찾아다 놓았는데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드디어 오늘 저녁부터는 오랜만에 밥 구경을 할수가 있게 되었다. 저녁을 푸짐하게 해서 모두들 실컷 먹었다. |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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