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4탄
2007. 5. 29. 23:54ㆍ[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5월 26일 아침을 먹고서 7시 30분경 정부연락관과 함께 공항으로 대원들 마중을 나갔다. 지난밤 과음한 탓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대원들을 만날수가 있었다. 15인승 미니버스에 짐을 싣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짐을 대강 정리한 후 나와 정인규대원, 정부연락관과 함께 관광성 방문하고 현지 포터 보험을 가입하기 위하여 나갔다. 보험회사는 차이나타운의 진하마켓 안에 있다. 상행 포터는 40명, 하행 포터는 10명의 보험을 들고 쿡과 정부연락관의 보험도 들었다. Kim Mun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관광성을 방문해서 등반일정이 좀 늦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정부연락관에게 지급할 장비를 점검하고 난 후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였다. 저녁에 정부연락관이 와서 지급장비를 건네주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우리나라 음식이 그런대로 입맛에 맞는지 무리없이 잘 먹는다. 정부연락관은 우리와 등반에 대하여 한 동안 토론을 하다가 돌아가고 다시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저녁 9시 쯤 원사범님과 현공OB 낭가파르밧팀이 왔다. 오늘은 기분이 아주 착찹하다. 무슨 일이든지 제대로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등반이 어떻게 되려는지 잘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5월 27일 아침에 눈을 떠니 여전히 날씨는 무덥고 머리는 무겁다. 이슬라마바드 경찰서에 어제 입국한 대원들의 입국신고를 한 후 포터 서약서를 복사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 저녁은 원사범님댁에서 만두파티를 한다고 우리대원들을 초대했다. 원사범님댁에 가 있는데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연맹 회장님을 만나서 최종 결과를 통보해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6월 1일경에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얼마후 정부연락관이 찾아와서 같이 만두를 먹었다. 번번히 원사범님택에 신세만 지는 것 같아 언제 자리를 만들어서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정부연락관에게 현재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내일 자신의 도시 체재비를 일부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낭가파르밧팀은 오늘 출발하였는데 계약한 버스가 예정보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아침 8시 정도에 떠났다고 한다. 5월 28일 오늘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오전부터 짐 정리 및 화물 재포장 작업에 들어갔다. 등반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제외시켰다. 그런데 하루가 다 지나가도 송대장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정말 맥이 빠진다. 저녁에는 원사범님 사모님 생일이라고 또 우리를 초대한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신세지는 김에 왕창 지자. 이렇게 머나먼 타국땅에 있어서 동포들이 그립다고 해도 이들 부부는 우리팀에게 정말 잘해 주신다. 이 신세를 뭘로 보답해야 할지... 정부연락관과 함께 가서 저녁을 대접받고 나서 자신의 침낭을 교체해 주었다. 그리고 도시 체재비로 우선 5,000루피를 지급하였다. 그 친구는 다른 외국팀들과 등반한 경험이 많아서 우리팀의 딱한 사정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 내일부터는 쓸데없이 자꾸 오지말고 우리가 부르거나 자신이 볼일이 있을 때만 오라고 했다. 등반대장이 언제쯤 입국할 거냐고 묻길래 6월 1일 쯤 올 거라고 이야기 하였으나 나 자신도 확신할 수가 없으니..정말 뭐라고 이 기분을 표현해야 할지... 5월 29일 오늘도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르지만 송대장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아침을 먹고 대원들과 라왈핀디로 관광을 갔다. 라왈핀디를 둘러보면 파키스탄이라는 국가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수은주를 거의 40도에 육박하게 만들어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덥다. 숙소에서 라왈핀디까지는 택시비는 50~60루피나 하지만 버스비는 고작 4루피로써 택시비의 1/10 도 되지 않으므로 경비를 절감하려면 택시를 이용하지 말고 버스를 이용할 일이다. 코카콜라는 작은 병이 4루피, 1.5리터는 24루피하며, 미네랄워터는 종류에 따라 15루피, 24루피짜리도 있었다. 대원들 숫자가 많다 보니 음료수가 엄청나게 많이 소요된다. 하루에 보통 1.5리터 음료수를 4~5병씩 비웠다. 저녁에 정부연락관이 자신의 친구를 두 명 데리고 와서 서로 등반계획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원사범님이 팩스를 가지고 오셨다. 하지만 정작 반가운 소식은 하나도 없고 별 내용도 없었다. 얼마후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팩스가 잘 들어갔는지 걱정되어서 전화를 한다고 했다. 오늘은 밤이 늦도록 대원들과 등반에 대한 회의를 했다. 연맹에서 등반 비용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다. 대원들을 현지에 내 보내놓고 등반비용 때문에 대장이 출국을 못하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내가 언젠가 산악잡지에 본 기억이 있는 '남의 돈으로 히말라야 원정을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은 두 번 다시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 등반은 가지 않겠다' 라는 문구가 불현듯 뇌리를 스쳐간다. 바로 우리가 지금 그 꼴이 되었다. 회의결과 우리는 더 이상 연맹에서 지원이 없더라도 우리 대원들이 1인당 약 100만원정도씩 더 내서 울산합동대로 등반을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날짜는 하루하루 자꾸 지나가고 덩달아 마음은 초조해지고 무더운 기후로 인해 컨디션까지 점차 나빠지는 것 같다. 5월 30일 아침을 먹고 잠시 누워있다가 원사범님댁으로 가서 송대장에게 팩스를 보냈다. 원사범님이 따르빌라에 있는 현대건설 직원이 오늘 쌀 한 포대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하여 고기를 좀 사다가 바베큐 점심준비를 해놓고 오후 1시까지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서 우리끼리 점심을 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오후 5시쯤 현대건설 직원이 쌀을 한 포대 가지고 왔다. 우리는 그냥 받기가 미안해서 약간의 술과 담배를 한 보루 주었는데 자신이 궂이 꼭 저녁을 사겠다고 해서 산 중턱에 있는 도미니크라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그 부페에는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별로 없어서 유감이었다. 식사 후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헤어져서 원사범님댁으로 가니 팩스가 와 있다고 한다. 별 내용은 없었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항은 6월 1일은 분명히 출발한다고 한다. 아직 국내 사정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오니 박을규 대원이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팩스가 들어가다 뒷 부분이 잘려서 확인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얼마 후 정부연락관이 왔다. 이제는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한다. 그도 어서 빨리 등반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가 요청했던 대원변경에 대한 사항과 관광성 브리핑전에 2명의 대원을 먼저 스카르두로 출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이야기를 관광성 담당자를 만나지 못해서 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연락관과 여러날 동안 같이 이야기하고 지내면서 참 좋은 느낌을 받았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술도 잘 마시는 편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는 6월 2일 아침에 2명의 대원을 먼저 화물과 함께 트럭으로 보내고 오전 9시경에 대장을 만나서 오후 2시쯤 관광성에 등반 브리핑을 하고 3일 아침 일찍 정부연락관과 나머지 대원들은 버스로 스카르두로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만 실행 된다면 별 문제는 없지만 가장 큰 난제는 뭐니뭐니 해도 국내에서의 등반경비 조달 문제가 잘 해결되어야 할텐데... 5월 31일 오늘은 5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젠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던 한 가닥의 희망도 희미하게 멀어져 가고 있다. 오후에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 도착이 6월 5일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원래 5월 28일 등반 출발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벌써 9일 가량 등반일정이 늦어지는 셈이다. 현지 행정처리를 완료해 놓고 대장이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려도 오는 것은 반갑지 않은 전화나 팩스뿐이다. 카라반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원들의 사기를 너무 많이 저하시키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내일 또 정부연락관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지금 심정 같아서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려서라도 스카르두로 가고 싶다. 이제는 나 자신도 정말 지쳐가고 있다. 히말라야 등반이 내 산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나는 지금까지 하얀산에 대한 일념만으로 온 산천을 찾아다닌 것은 결코 아니다. 산과 바위, 나무들과 풀, 그리고 산꾼들의 의리 등 그 모든 것이 내 산의 일부였다. 나는 훗날 이 등반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나 자신의 산에 대한 철학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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