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5탄

2007. 5. 29. 23:54[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6월 1일
벌써 어느 덧 6월로 접어 들었다. 오늘로써 선발대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지 2주째 되는 날이다. 순조롭게 등반계획이 추진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스카르두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4일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아침을 먹고 곧장 관광성으로 갔다. 정부연락관이 아침 일찍부터 와서 관광성 국장, 부국장과 함께 우리팀의 등반 스케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팀이 브리핑하기로 한 날인데 또 연기하자고 이야기 하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정부연락관에게 먼저 2명의 대원을 스카르두로 보내고 6월 5일 등반브리핑을 하고 6월 6일 전 대원이 스카르두로 출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한 가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조제철대원의 대원변경 요청에 대해 원칙적으로 등반허가 신청서에 기 등재된 대원외의 사람은 등반에 참여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정부연락관과 협의해 일단 조제철대원을 먼저 스카르두로 보내고 브리핑때 적당한 대처를 하기로 하였으나 내심 걱정이 된다. 숙소로 돌아와 정부연락관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졸려서 낮잠을 한 숨 잤다. 오후에는 이번에 또 다시 등반 일정이 연기되면 전대원은 등반을 보이콧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해서 팩스를 보냈다. 저녁에 라왈핀디에 중국인들의 장이 열린다고 해서 갔었지만 장은 이미 2~3일 전에 끝났다고 한다.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가 나는 동양화가 그려져 있는 햇빛 차단용 대나무 발을 2개 구입하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박을규대원이 낮에만 해도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았는데 원사범님에게 수지침 치료를 받고 많이 회복된것 같다. 오늘은 우리팀이 원사범님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로 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우리의 폭탄선언 팩스를 받고 다소 실망했다고 하면서 6월 5일경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스카르두까지는 버스 대여료가 항공운임보다 비싸서 우리는 항공기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대원들이 조촐하게 저녁을 준비하여 원사범님 가족을 초대하여 같이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변변찮은 음식이지만 우리가 직접 조리한 음식을 대접하니 그동안 신세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 같아 다소 위안이 된다.

6월 2일
오늘은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아침을 먹고 대원들과 족구시합을 하였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몸이 개운하다. 점심때 쯤 스카르두에 있는 샤비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짐을 트럭으로 수송한다고 하니 항공수송을 권한다. 비용도 항공편이나 육로수송이 비슷한데 항공수송의 한 가지 단점은 기상악화로 일정이 연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사범님에게 스카르두행 비행기 예약을 부탁하고 6월 4일 조재철대원과 이용순대원을 먼저 스카르두로 보내기로 하였다. 대장과 본대 대원들은 짐을 가지고 6월 6일 비행기로 스카르두에 가기로 하였다. 현지 체재기간이 길어지니 대원들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어제는 박을규대원이 오늘은 권순두대원이 석회질 식수 때문에 설사병에 걸렸다. 이 나라의 수돗물은 물은 컵에 받아 둔지 약 30분이 지나면 밑에 허옇게 석회가루가 침전될 정도로 수질이 안 좋으니 그럴수 밖에...물과 음료수만 하루에 1.5리터 병을 5병 이상씩 마셔대니 오죽 하겠는가? 내일부터는 날씨가 무더워도 운동을 조금씩 해야겠다. 오늘은 처음으로 정부연락관과 같이 우리 숙소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볼수록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정부연락관을 배정받아서 그나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6월 3일
오늘은 약간의 아침운동을 한 후 아메리카익스프레스 은행에 가서 T/C를 환전하러 갔다. T/C 환전은 제법 절차가 까다롭다. 반드시 수표에 서명한 본인이 가야하며 여권과 청구서를 작성해 가야 한다. 원사범님에게 부탁한 항공권 부킹이 잘 안되어서 오후에 라왈핀디에 있는 무하맛알리라는 여행사 직원에게 가기로 하고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사관에서 포항제철팀의 빠유피크원정대가 왔다고 한다. 숙소를 물어서 마침 우리팀이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방이 2개 있다고 하니 대사관에서 택시를 태워서 데리고 왔다. 빠유피크팀은 6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20십대 초반의 젊은 대원들이었다. 점심을 먹고 라왈핀디에 갔는데 불행하게 4일과 6일 비행기 티켓은 이미 매진되고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5일 2명, 7일 7명으로 예약을 하였다. 화물은 정부연락관이 군용기편을 수소문해 보겠다고 한다. 그것도 안될경우 내일 전 화물을 항공 수송하기로 결정하였다. 저녁에 정부연락관이 숙소로 와서 내일 새벽에 자신이 화물을 모두 가져가서 보내고 그래도 남으면 도로 가져오겠다고 한다. 우리팀을 위해 무지 애를 쓰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스카르두로 보낼 화물을 다시 점검한 후 대원들 모두 모여서 등반일정에 대한 토론과 함게 모든 일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하였다.

6월 4일
새벽 4시에 정부연락관이 트럭을 가지고 와서 화물을 모두 실어서 보냈다. 11시쯤 정부연락관이 돌아왔는데 군용기편으로 700kg 정도 보내고 나머지 800kg는 도로 가지고 왔다. 얼마 후 무하마드 알리가 왔다. 그의 말로는 가셔브룸 카라반 루트는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일반적인 발토르빙하 코스이고 다른 또 하나는 간도고로패스를 넘어가는 루트인데 일정을 약 1주일 당길수 있지만 5,000m 고개를 넘어야 하고 등반난이도가 좀 있다고 한다. 또 본대의 스카르두행 티켓팅이 6월 6일로 당겨졌다고 한다. 내일 낮 12시에 조재철대원과 이용순대원만 빼고 5명의 대원은 정부연락관과 관광성에 가서 등반브리핑을 하기로 하였다. 등반규정상 대원을 변경하는 일은 아주 어렵지만 우리팀은 유능한 정부연락관의 도움으로 무난히 해결하였으며 대장과 정부연락관은 나중에 별도로 브리핑을 하기로 하였다. 오후에는 포스코 빠유피크팀과 원사범과 우리팀, 현지교민팀들이 모여 배구 시합을 하였는데 현지 교민들은 배구경기 규칙도 잘 모를 정도였다. 저녁에는 포스코팀과 원사범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 후 대원들과 앞으로의 등반계획을 의논한 후 송대장에게 전화로 연락하여 대원들 먼저 스카르두로 출발해도 좋다는 승락을 받았다. 이제 정말로 히말라야로 떠나는 것이다. 내일은 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다. 이슬라마바드의 모든 행정업무를 마무리하고 6일 아침 드디어 스카르두로 출발할 수 있게 되는구나...이곳에서 쓸데없이 허비한 날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6월 5일
아침부터 대원 모두가 분주히 움직인다. 이용순대원과 조재철대원은 짐을 부치러 공항으로 보내고 우리는 등반 브리핑을 하기 위하여 원사범님, 정부연락관과 함께 관광성으로 갔다. 나는 한 두가지 문제가 걱정이 되었는데 의외로 손쉽게 등반 브리핑을 끝낼 수가 있어 아주 기뻤다. 모두 정부연락관이 힘을 써준 덕택이다. 숙소로 돌아와 파키스탄 차인 짜이를 한 잔씩 마시고 있으니 용순이와 재철이가 짐을 보내고 왔다. 그런데 6일로 티켓팅 되었던 표가 다시 7일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원사범님댁에 빠유팀과 함께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서 갔다. 점심 식사 후 대장에게 팩스를 보내려고 여러차례 시도해도 팩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팩스 트러블이 많이 발생한다. 오늘 저녁은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원사범님 가족과 함께 송별 만찬을 하기 위하여 홀리데이호텔에 있는 차이나레스토랑으로 갔다. 파키스탄 음식보다는 중국음식이 훨씬 우리 입맛에 맞았다. 부페는 1인당 약 150루피 하며 중국식은 1인당 약 120루피면 된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다시 팩스연결을 시도했으나 결국 오늘은 팩스 연결에 실패하고 말았다.

6월 6일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정말 스카르두로 떠나게 된다. 아침에 무하마드알리가 왔다. 내일 티켓팅이 되었냐고 물으니 인샬라! 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걸핏하면 인샬라! 라고 한다. 얼마후 원사범님이 오셔서 국내에 팩스를 보내다 연결이 잘 안되던차에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지금까지 우리팀의 업무 추진 내역을 모두 전달했다고 한다. 오늘은 간단하게 짜파티로 점심을 먹고 오후 4시쯤 정부연락관과 함께 스카르두행 비행기 표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직 1장이 티켓팅이 되지 않아서 오늘 저녁까지 구해서 연락을 준다고 한다. 저녁에 빠유팀으로 부터 저녁을 초대받아서 함께 먹고 있는데 두 사람이 쿡으로 고용해 달라고 왔다. 무하맛알리가 추천해 주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다. 두 사람의 이야기로는 자기들은 한국 전주 낭가파르밧팀의 쿡을 했다고 하지만 알수 없는 일이다. 정부연락관은 그들이 마음에 드는지 은근히 고용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스카르두의 가이드 샤비르에게 쿡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처지라서 승낙할 수가 없어서 돌려 보냈는데 그 때문에 정부연락관이 몹시 서운한 눈치였다. 자신은 우리팀을 위해 정말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는데 사소한 부탁 하나 들어 줄수 없어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여행사에서 아침 5시에 스카르두행 티켓을 가지고 공항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정말로 히말라야로 간다. 불필요한 화물을 원사범님댁에 맡기고 우리는 내일 떠날 채비를 마무리하고 이슬라마바드에서의 상행 마지막 잠을 청한다.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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