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6탄

2007. 5. 29. 23:54[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6월 7일(이슬라마바드 --> 스카르두)
오늘은 스카르두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4시에 기상했다. 1대당 130루피를 주고 택시 2대를 불러서 공항으로 갔다. 5시에 여행사의 무하맛알리가 스카르두행 티켓을 가지고 왔다. 자신도 우리와 같이 스카르두로 간다고 한다. 스카르두행 비행기는 여권검사도 하지 않았다. 아침 6시 10분에 드디어 스카르두행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 비행기의 좌석은 120석 정도 되고 이슬라마바드-스카르두 편은 1일 1회, 이슬라마바드-길기트 편은 1일 3회 운항한다고 한다. 스카르두까지의 항공운임은 외국인은 570루피이고, 내국인은 300루피 정도 한다. 기내에서 간단한 아침식사가 제공되고 약 20분 후 부터 만년설이 하얗게 덮인 산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는 낭가파르밧이, 왼쪽으로는 K2, G2, G1 등의 8천미터급 봉우리들이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며 도도하게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었다. 스카르두 공항은 조그만 시골 공항이었다. 수하물 핸드캐리 중량은 1인 25kg까지는 무난하다고 한다. 우리는 공항 왼쪽에 있는 외국인 입국신고소에 가서 입국 신고를 마치고 먼저 보낸 화물을 찾아서 3대의 지프에 나누어 싣고 세헤르모텔로 갔다. 방이 5개 정도 되는 조그만 모텔이었는데 1실 1박에 400루피라고 한다. 스카르두는 조그만 시골 도시인데 해발 고도가 2,200m 라고 하니 우리나라 한라산 꼭대기보다 훨씬 높은 곳에 도시가 있다는 말이다. 말이 도시지 정말 우리나라 시골장터 보다도 더 초라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대원 모두 모텔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한 후 이내 잠에 곯아 떨어진다.

6월 8일
그 동안 피곤했는지 오늘은 대원들이 모두 늦게 일어난다. 모텔에서 지프 운전사인 마북알리와 가이드 샤비르후세인을 만났다. 그들은 86년 한국 K2 원정대를 도와서 일을 했었고 그 원정대의 초청으로 한국을 2번씩이나 방문했었다고 한다. 아침에 무하마드알리로 부터 새로운 카라반루트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 루트는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1주일 정도면 갈 수 있고 포터 식량도 1일분만 지급하면 된다고 하니 정말 귀가 솔깃해 진다. 1주일전에 미국팀의 고소포터 2명이 새 루트로 갔고 또 다른 가이드 2명이 G2 베이스캠프에서 이 루트로 스카르두로 복귀했다고 한다. 이틀 정도의 구간이 조금 힘드는 곳이 있지만 픽스로프만 있으면 무난하다고 한다. 대장이 오면 적극 추천 해야겠다. 무하마드 알리가 10일 대장이 타고 올 이슬라마바드-스카르두편 티켓팅이 안된다고 한다. 안그래도 등반 일정이 1주일 이상이나 연기되었는데 큰일이다. 오후에는 마북알리와 대원들 모두 사파리 호수로 관광을 갔다. 호수는 별로 신통치 않았지만 모텔앞 인더스강의 진흙탕물에 비하면 정말 맑고 깨끗했다. 이곳 세헤르모텔 주변의 산들은 정상부위가 모두 만년설로 뒤덮여 있어 경치가 좋다. 인더스강 물은 정말 흙탕물 그 자체이며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모래 먼지로 인해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을 지경이다. 설마 오늘에는 대장이 한국에서 비행기로 출발 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내일은 카라반 할 짐을 다시 정리하여 불필요한 장비는 과감히 빼고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겠다. 이곳 스카르두의 날씨는 아침 저녁은 조금 쌀쌀하고 한 낮은 조금 더운 편이다.

6월 9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이른 아침의 스카르두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지독하게 불어대던 인더스강의 모래바람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오늘은 아직 잠잠하다. 샌드위치와 달캴 후라이로 아침을 대신하고 포터 수를 줄이는 만큼 식량 수송량을 줄였다. 이유인즉 경비부족 때문이다. 벌써부터 원정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짐 패킹을 되풀이하면서 과연 이번 원정등반이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한 낮의 스카르두 햇빛은 아주 강하게 내리 쬔다. 피부를 드러내고 1시간쯤 쬐고 나면 온몸이 벌겋게 그을린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풀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오로지 신 루트로 카라반을 감행하여 경비와 일정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후 1시쯤 송대장이 전화로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서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고 현재 원사범님댁에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인가? 아울러 10일 스카르두행 비행기 예약도 잘 될 것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오후에는 마북 알리와 가이드 샤비르후세인과 함께 등반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샤비르라는 친구는 현재 관광성의 행정분야에 근무하고 있는데 2개월의 휴가를 얻어 스카르두에 와 있으며 한국의 여러 원정대들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로는 우리가 만약 우리가 새로운 카라반 루트로 갈 경우 후세라는 곳에서 포터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또 86년 한국 K2 원정대와 협력했으며 그 원정대의 초청으로 한국에도 한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저녁에 대장과 티켓팅 확인 전화를 하는 중에 샤비르를 잠깐 바꾸어 주니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내일 대장이 이곳에 도착하면 6월 11일쯤 카라반을 출발할 수 있어야 할텐데...

6월 10일
대장을 마중하기 위하여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마북알리가 운전하는 지프를 타고 스카르두 공항으로 나갔다. 오전 7시쯤 도착해야 할 비행기는 35분이나 늦게 도착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장을 만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세헤르모텔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나서 대원들이 모두 모여서 카라반루트를 결정하기 위해 토론회를 가졌다. 정부연락관이 잘 아는 가이드 한 사람이 몇 일전 간도고로패스 카라반 루트로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열띤 토론 끝에 우리는 간도고로패스라는 새로운 루트로 카라반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쿡도 2명 고용하기로 하였는데 그 중 한 명은 역시 86' 한국 K2 팀의 쿡을 맡았던 유솝이라는 친구이다. 새로운 카라반 루트는 많은 경비와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하는데 8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며 포터도 4일만 고용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도고로패스는 5천미터대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고소적응과 날씨가 관건이다. 다른 원정대들이 이 카라반 루트를 이용하지 않는데는 그 만한 어려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팀에게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루트는 지프로 4천미터대의 후세라는 산골마을까지 가서 본격적인 카라반을 시작한다고 한다. 오후에는 우리팀의 식량일부와 포터지급용 식량을 구입하였다. 저녁 무렵이 되니 스카르두 특유의 인더스강 모래폭풍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정말 문을 열고 밖에 나가기가 싫을 정도로 모래폭풍은 애를 먹인다. 저녁에는 부페식 만찬 초대가 있었는데, 이 모텔에 체류하는 독일인 의사가 베푸는 것이라 한다. 오늘 낮에 도착한 4인조 가셔브룸2봉 미국원정대원들과 환담하면서 식사를 하였다. 그들은 여성 한 명과 남성 3명으로 구성된 팀인데 연령이 모두 30대 이상인 것 같다. 카라반은 우리팀과 같은 날짜인 6월 12일쯤 노멀루트인 발토르루트로 출발할 것이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두 모여서 대장에게서 지금까지 국내에서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비 문제가 발생하여 등반 종료후 대원 한 사람당 약 백만원정도의 추가 경비를 분담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는 지나간 일은 모두 잊고 앞으로의 등반을 위하여 모두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하고 인더강의 모래바람 소리를 자장가 삼아 두 눈을 지긋이 감고 히말라야를 꿈꾸며 잠을 청해 본다.

6월 11일
일찍 기상해서 쿡과 포터에게 지급할 식량을 추가로 구입하러 갔다. 포터와 베이스캠프 고용인들의 식량이 예상외로 많이 늘어난다. 우리팀의 카고백이 62개이고 베이스캠프 고용인 식량 카고백이 30여개나 된다. 오후에는 최종적으로 장비와 식량을 패킹하고 스카르두에 데포시켜놓을 짐을 분리하였다. 어제부터 오후만 되면 모래폭풍이 더 심해져서 눈을 못 뜰 지경이다. 저녁에는 샤비르가 자신의 집으로 저녁식사를 초대해서 지프를 타고 갔다. 중산층 수준의 가정이라고 해도 우리가 보기에는 거의 원시적인 흙으로 지은 집이었다. 집 내부에는 벽지와 장판지도 없으며 가구는 물론이고 전기제품도 전혀 없으며 흙으로 된 방바닥에 오로지 허름한 대형 카페트 한 장이 전부였다. 우리는 쌀밥과 짜파티, 닭고기스프, 짜이차 등을 모처럼 실컷 먹었다. 위스키를 한 병 가지고 갔었는데 샤비르는 술을 조금 마실줄 알지만 집안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힌두교도들의 계율때문이리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텔로 돌아와 숙박료와 지프 대여료를 지불하였는데 스카르두-후세까지의 지프대여료는 1대당 2,200루피이고, 세헤르모텔의 숙박료는 1일 1실당 400루피였는데 20% 정도 디스카운트를 해 주었다. 지금까지 우리팀을 도와준 현지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내일 카라반 출발지인 후세로 이동하기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다.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