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7탄

2007. 5. 29. 23:54[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6월 12일
오늘은 드디어 오메불망 그리던 산으로 카라반을 떠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출발하기 위하여 3시 30분에 기상했다.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가 녹아서 계곡의 수량이 불어나 지프 운행이 어렵다고 한다. 04시 10분 우리는 4대의 지프에 나누어 타고 카라반 출발지인 후세를 향해 출발한다.


지프 카라반 준비 모습

1시간쯤 운행하다가 Gol이라는 곳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비록 기존의 노멀 카라반 루트는 안 가보았자민 새로운 루트로 카라반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을 설레이게 하며, 더구나 대규모 원정대로는 우리가 처음 도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카라반 루트가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길이 점차 험해지기 시작한다. 경사도가 거의 35~40도나 되는 비탈길을 4륜 구동 지프는 잘도 올라간다. 중간에 스카르두에서 잠시 만났던 독일인 트레커 2명을 만나 지프에 태워 주었다. 그들은 연인 사이인데 스카르두에서 버스를 타고 카풀루에 내려서 후세까지 걸어 가는 중이라고 한다. 중간에 여러 마을을 거쳐 가는데 이건 집이 아니라 흙담에 겨우 문만 단 소 마굿간 같은 집 뿐이었다. 오후 12시 15분 드디어 후세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도보 카라반 출발지인 후세마을

스카르두에서 후세까지 지프로 8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 지프로드는 비가 오면 운행이 불가능할 것 같은 코스이다. 후세마을 사람들은 정말 문명과는 거리가 먼 거의 원시인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충격적인 모습들이었다. 아이들은 왕방울만한 눈만 둥그러니 보이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고 있고 집이래야 무슨 영화에서나 봄직한 인디안 촌락 뺨치는 모습들이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는 그들을 보노라니 한편으로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경외롭기까지 하다. 장시간 험로에서 지프에 시달린 대원들이 피곤해 보인다. 포터 선발은 내일 아침에 하기로 하고 우리는 타프린만 바닥에 깔고 해발 4천미터대의 히말라야 산골마을에서 짚시처럼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6월 13일(카라반 1일차 - Shahichoo Camp)
높은 고도 탓인지 어젯밤에는 기온이 제법 쌀쌀했다. 다운파카를 입고 침낭속에서 잤는데도 별로 덥다는 생각이 안들었으니..아침 일찍 포터를 선발하기 위하여 마을 광장으로 가니 벌써 어떻게 소문을 듣고 찿아왔는지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우선 체력이 튼튼해 보이는 장정을 92명 선발하여 포터용 지급장비인 신발, 양말, 선그라스, 비닐을 지급한 후 그들이 운반할 25~26kg씩 패킹한 짐을 한 개씩 배분하였다. 오전 9시 20분 우리는 92명이라는 대인원의 포터를 이끌고 본격적인 카라반을 시작한다. 후세에서 출발하는 이 카라반 루트는 중간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많아 카라반 1일차에는 식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원래 캠프에 도착해서 중식을 먹기로 계획하였지만 출발이 조금 늦어져서 중간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루트가 좋다. 카라반 중간에 포터들의 노래와 춤을 지켜보면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1시 50분에 카라반 1일차 캠프에 도착했다.


Shahichoo Camp Site

이곳은 주위에 나무도 있고 맑은 물이 흐르며 오른쪽 절벽에는 폭포가 있고 앞에는 흰눈을 뒤집어 쓴 K7이라는 봉우리가 보이는 정말 아름다운 캠프사이트이다. 포터들은 짜파티를 구워 짜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우리대원들은 밥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이 캠프 사이트는 고도가 4,000미터를 훨씬 넘어서는 것 같은데 아직까지 특이한 고소증세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정말 등반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오늘밤은 기온이 제법 내려가 추울것 같다.

6월 14일(카라반 2일차 - Gando Ghoro Camp)
아침 5시경 기상했다. 이른 아침 캠프의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아침을 먹고 6시 30분에 2일차 카라반을 출발한다. 아랫 마을에서 포터지급용 소를 한마리 구입하여 포터들이 몰고 간다. 그런데 4시간 걸린다던 캠프지가 겨우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다. 반신반의하며 여러 포터들에게 물어봐도 여기가 캠프사이트가 확실하단다. 막 도착하는 사다(포터 통솔자)에게 물어봐도 그 역시 이곳이 카라반 2일차 캠프사이트가 맞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늘 3일차 캠프까지 갈려고 하니 시간이 모자라고 조금 더 가서 캠프를 건설하려고 해도 식수가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짐을 정리하고 사다에게 지시하여 몰고 온 소를 잡아서 포터들에게 지급하였다. 카라반 출발전에 루트에 대한 확실한 정보와 고용인 임금 등을 알아서 정부연락관에게 이야기해서 사다에게 분명한 다짐을 받아 두었어야 하는 것인데...카라반 일정이 8일이라고 했다가 또 9일 이라고 했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카라반 2일차 캠프지는 고도가 4,500m정도 된다. 캠프지에 머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날수록 서서히 두통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등반을 하고 싶다.

6월 15일(카라반 3일차 - Dal Sang Pa Camp)
어제는 대원 모두 고소증세가 조금 있는 것 같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무려 10시간 가까이나 잠을 잤다. 오전 7시 30분에 3일차 카라반을 출발한다. 사다가 이 캠프지 이후로 물 사정이 별로 좋지않다고 했는데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식수로 충분한 물이 있었다. 그 곳부터 길이 차츰 험해지기 시작하며 사태가 난 모레인 지역을 가로질러 1시간 정도 더 지나면 급경사 지역을 약 7~80미터 통과해야 한다. 그 이후로는 다시 루트가 좋아진다. 고도를 서서히 높아감에 따라 고소증으로 인한 두통도 차츰 심해지는 것 같다. 오전 10시 20분 조그만 호수가 있고 마셔브룸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카라반 3일차 캠프지에 도착했다. 그 곳은 사방이 흰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식수도 풍부한 편이나 한 가지 단점은 캠프사이트가 협소하다는 것이다. 어제는 2시간 30분 운행하고 오늘은 겨우 3시간 운행한 것이 전부다. 물론 고소적응을 위해 고도를 서서히 높여가야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이정도 구간은 하루만에 운행해도 충분할 것 같다. 오늘은 도보 카라반을 출발한 후 4일만에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였다. 어제부터 발생했던 두통이 오늘은 조금 덜 한 것 같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다행이 두통이 깨끗이 사라졌다. 약간의 고소적응이 된 모양이다. 내일 운행 구간은 6~7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이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제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오후에는 캠프지에 도착하는 영국인 부부 트레커를 만났는데 그들은 포터도 없이 달랑 두 사람만 온 것인데 자신들은 간도고로 라를 등반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저녁에 정부연락관과 상의를 하여 포터 휴식일을 빼고 운행을 하기로 협의하였다. 이 캠프지는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꽤 춥다. 포터들은 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Dal Sang Pa Camp

6월 16일(카라반 4일차 - Gando Ghoro Base Camp)
어젯밤에도 잠을 많이 잤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고소증 탓인지 잠이 많이 온다. 오전 6시 20분 4일차 카라반을 출발한다. 루트가 하루가 다르게 험난해 진다. 오늘은 시작부터 모레인 지대로 접어든다. 곳곳에 크레바스(눈이 갈라진 틈새)도 눈에 띈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처음 보는 크레바스는 섬뜩하기만 하다. 이제부터 루트의 대부분이 눈과 얼음이 뒤섞인 모레인 지역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크게 어려운 구간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설사면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가끔 히든 크레바스도 건너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간다. 고도를 더욱 더 높여감에 따라 다시 고소증세가 나타난다. 모두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걷고 있다. 주변 산군들은 모두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이 구간은 기온이 올라가면 눈과 얼음이 녹아서 물이 많이 흐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운행하는 것이 좋다. 캠프지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에서 모레인 설사면을 트레버스하다 다리에 낙석을 맞았다. 제법 세게 맞았는지 통증이 심하다. 오전 9시에 캠프지에 도착하여 제놀스틱을 발라도 별 효과가 없다. 나중에 도착한 정인규 대원은 숨은 크레바스에 허리깊이까지 빠졌으나 다행이 규모가 작은 것이어서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곳 간도고로 베이스캠프(Ghando Ghoro Base Camp)는 고도가 4,800미터 정도 된다. 대원들의 마음은 벌써 가셔브룸 정상에 가 있는데 오늘도 겨우 2시간 40분 운행했다. 어제 사다가 오늘 구간이 6~7시간 걸린다고 했지만 역시 내 짐작대로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후에 포터 식량과 담배, 타프린, 성냥등을 지급하고, 내일은 새벽 3시에 사다와 몇 명의 포터가 설벽 루트에 픽스로프를 설치하러 간다고 해서 픽스로프, 피켈, 스노우바, 슬링, 카라비너 등을 지급하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두통이 심해진다.

6월 17일(카라반 5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오늘은 오래만에 아침 늦게 8시 50분에 출발한다. 오전 10시에 간도고로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이번 카라반 루트의 최대 난코스인 5,800m 고개를 넘어야 하는 곳이다. 아침 일찍 사다와 포터들이 픽스로프를 설치하고 11시쯤 캠프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포터들이 카라반 루트가 위험하기 때문에 1인당 21kg씩만 지고 가겠다고 한다. 규정이 25kg지만 지금와서 어쩔 도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포터들의 짐을 다시 패킹하여 21kg씩 맞추고 난 후 오후에는 포터들에게 석유버너와 연료도 지급하고, 우리 대원들도 설벽 등반을 하기 위한 개인장비를 카고백에서 꺼냈다. 그런데 오후부터 눈발이 조금씩 날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이 제법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 카라반 루트는 험난해서 눈이 오면 운행을 할 수가 없다. 포터들은 무조건 인샬라(신의 뜻대로)라고 한다. 5일차 캠프지는 고도가 5,000m 이다. 두통이 오락가락한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Gando Ghoro High Camp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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