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8탄

2007. 5. 29. 23:54[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6월 18일(카라반 6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 날씨 악화로 대기)
밤새도록 날씨가 신경쓰여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또 눈이 내린다. 그렇지 않아도 등반 일정이 늦어졌는데 날씨 때문에 카라반 일정까지 늦어지니 이러다가 영영 등반 시즌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오전 10시쯤 눈이 그쳤으나 포터들은 눈사태 위험때문에 운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새벽 일찍 운행해야 눈이 크러스트 되어서 눈사태 위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탓 할 수도 없다. 4명의 건장한 포터를 선발하여 나와 장상기대원, 박을규대원 이렇게 7명이 못다 설치한 구간에 픽스로프를 설치하러 갔으나 설벽아래에 도착할 때 쯤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서 장비만 데포시키고 캠프로 돌아왔다. 날씨가 계속 눈이 오락가락 한다. 어쩌면 이미 몬순기가 닥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용순대원과 정인규대원이 고소적응이 잘 안되어서 그런지 영 맥을 못춘다. 내일은 기상만 좋으면 무조건 출발하기로 하고 정부연락관과 3명의 포터가 설벽 아래에서 막영하기로 하고 출발한다. 정부연락관이 먼저 가야만 포터들이 순순히 따라갈 것이라고 한다. 저녁이 되니 또 눈발이 날린다. 원래 일정대로 카라반을 출발했다면 벌써 베이스캠프에서 캠프1, 캠프2를 설치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을텐데...날씨마저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가?

6월 19일(카라반 7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 날씨 악화로 대기)
설마 오늘은 날씨가 좋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어제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린다. 대장과 대원들 모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연락관이 함께 막영하러 데리고 갔던 포터들과 함께 눈사태 위험이 커져서 되돌아 왔다. 점심을 먹고 대장과 정부연락관, 사다가 회의한 결과 현재 기상이 몬순기라서 4~5일 간격으로 날씨가 맑고 흐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대원 몇 명과 포터들을 낮은 캠프지로 내려 보내기로 했다. 포터는 간도고로캠프로 내려가고 대장과 4명의 대원들은 간도고로 베이스캠프로 하산 하기로 했다. 휴식일 하루의 포터 임금은 1인 75루피로 결정하고 포터 식량비로 8,000~10,000루피를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래 저래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정부연락관의 쿡인 무하맛 알리를 해고하고 새로이 함자 알리란 친구를 정부연락관 쿡으로 고용했다. 이전의 정부연락관 쿡은 대원들과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오히려 잘 된 셈이다. 함자 알리는 등반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종일 캠프에 머무르고 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멋진 설경도 종일 쳐다보고 있으니 실증이 난다. 저녁이 가까워지니 날씨가 좀 개이는 것 같다. 히말라야의 날씨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지겠지...

6월 20일(카라반 8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 날씨 악화로 대기)
오늘로써 벌써 카라반을 떠난지 8일째 되는 날이다. 원래 계획대로 운행했으면 오늘쯤 가셔브룸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직 간도고로 하이캠프에 머물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벌써 4일째 눈이 내리고 있다. 매일 내리는 눈이 비록 적설량은 크게 많지 않아도 급경사 설벽의 눈사태 위험때문에 등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연락관이 지금 카라코람 전지역이 몬순기에 접어들어서 현재 등반중인 다른 팀도 베이스캠프에 묶여 있을 것이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포터들은 간도고로 캠프에 내려가 있고, 대장과 4명의 대원, 쿡 1명, 포터 1명은 간도고로 베이스캠프에 내려가 있고, 나와 2명의 대원, 정부연락관, 정부연락관 쿡, 포터 2명이 간도고로 하이캠프에 머물고 있다. 날씨가 아침에는 눈이 내리다가 낮에는 잠깐 햇볕이 났다가 또 저녁이 되면 눈이 내리곤 한다. 온 종일 빈둥거리고 있으려니 지루해서 미칠지경이다. 점심시간쯤 간도고로 베이스캠프에서 포터 1명이 대원들의 식량을 가지러 올라왔다. 주문한 식량을 찾아 보내고 몇 일만에 세면을 하였다. 조제철대원이 입술이 많이 부어서 항생제를 찾아 먹였다. 정부연락관도 등반 일정이 자꾸 늦어지니 답답한 모양이다. 그는 날씨만 좋아지면 간도고로 하이캠프에서 샤그린을 거쳐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2일만에 가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카라반 루트는 날씨만 좋다면 6일만에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도달이 가능한 아주 매력적인 루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정부연락관은 다음 원정대부터는 이 카라반 루트로 등반하는 팀들은 10일치의 포터임금을 지급하도록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한다. 이건 좀 억지를 부린다고 해야 하나...발티스탄 카라반 루트도 14일분의 임금지급과 12일간의 카라반이면 가셔브룸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는데 고작 6일도 채 안 걸리는 루트를 10일간의 포터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니..내가 판단했을때 8일분의 포터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고소 지역에서의 활동은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곤란해서 아주 힘이 든다. 조금 심하게 움직이면 한 동안 가쁜 숨을 조절해야 한다. 저녁 무렵 쌀 가마니 3개정도 크기의 낙석이 캠프지 전방 50m쯤에 떨어졌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늘도 이렇게 악천후로 해서 하루를 낭비하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6월 21일(카라반 9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 날씨 악화로 대기)
날씨는 오늘도 여전히 좋지 않다. 조금 무리해서 운행을 해도 될 것 같지만 이미 포터들은 간도고로 캠프에 내려가 있고, 대장과 몇명의 대원들은 간도고로 베이스캠프에 내려가 있으니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다. 대장은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제 대원들도 모두 고소적응이 완전히 되어서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장상기대원과 함께 캠프옆에 있는 설사면을 약 150미터 가량 올라갔다. 5천미터대의 고소지대라서 채 10미터도 못가고 쉬곤 했다. 8,000미터 등반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다. 캠프 오른쪽에 있는 촐라초피크에서는 쉴새없이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후에는 또 눈이 내린다. 이러다가 가셔브룸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도 전에 연료와 식량이 바닦이 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녁에 일기예보를 들었는데 내일도 여전히 날씨가 나쁘다고 한다. 정말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다 미쳐버릴 것만 같다. 저녁 9시쯤 정부연락관 쿡인 함자 알리 텐트로 놀러갔다. 함자 알리는 나이가 34살인데 40살이 넘어 보인다. 그의 말로는 후세마을에서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4~5일이면 충분히 충분히 갈수가 있다고 한다. 내 생각과 똑 같은 이야기다. 나는 대규모 원정대로는 우리팀이 최초로 이 루트로 카라반을 시도하는 만큼 포터들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어야 다른 원정대들도 이 루트로 많이 올 것이라고 하니 그도 수긍을 한다. 내일은 설마 기상이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하면서 오늘도 히말라야의 품속으로 잠을 청하러 간다.

6월 22일(카라반 10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 날씨 악화로 대기)
다행이 오늘 아침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짐을 수송해야 할 포터들은 이 자리에 없다. 오전 10시쯤 이용순대원과 박을규대원이 올라왔다. 간도고로 베이스캠프에 식량이 떨어져서 가지러 올라왔단다. 등반을 가지 않고 여기에 눌러 앉아 있을 셈인가? 점심때쯤 정부연락관이 간도고로 캠프에 있는 포터를 불러오도록 무하맛 핫산 포터를 간도고로 캠프로 내려보냈다. 내일부터 3일동안 무슬림 축제기간이라서 모든 포터가 다 올라오기는 힘들지만 25명 정도의 포터라도 꼭 데리고 올라 오라고 명령했다. 정부연라관은 포터가 25명이라도 올라오면 우리대원 4명과 함께 먼저 가셔브룸 베이스캠프로 보내겠다고 한다. 오후에 이용순대원을 여기에 있도록 하고 박을규대원과 조제철대원을 아래 캠프로 내려보냈다. 오후 3시쯤 간도고로 베이스캠프의 대장에게서 스위스 트레커 9명과 포터 40명이 가셔브룸 베이스캠프로 가기위해 왔다고 한다. 이슬라마바드 히말라야트레킹사의 무하맛 알리와 같이 왔다고 한다. 우리가 이 루트를 선택하게 된 것도 그 사람의 조언이 컷던 것인데 악천후로 인해 이렇게 발이 묶여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저녁 7시쯤 간도고로 캠프로 내려간 핫산 포터에게서 중간 캠프를 경유하여 연락이 왔는데 현재 40명의 포터가 달상 파 캠프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내일 전 대원과 포터가 간도고로 하이캠프로 올라온다고 한다. 또한 내일 아침 정부연락관과 함자 알리 쿡과 5~6명의 포터들이 설벽 아래서 막영하고 아침 일찍 픽스로프를 설치하면서 올라가면 우리 전대원과 포터들도 뒤이어 간도고로 고개를 넘어 가기로 했다.

6월 23일(카라반 11일차 - Gando Ghoro High Camp / 날씨 악화로 대기)
아침에 쿡 함자 알리와 이용순대원에게 앞에 설치해둔 픽스로프 상태를 점검하러 보냈다. 얼마 후 갑자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쳐서 장상기대원에게 마중을 보냈다. 간도고로 베이스캠프의 대장과 대원들은 하이캠프로 올라오려는 찰라 기상이 악화되어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오전 10시쯤 히말라야트레킹사의 무하맛 알리와 스위스 트레커 5명이 40명의 포터를 이끌고 올라왔다. 그들은 콩고르디아 빙하지대를 통과하여 발토로 빙하쪽 루트로 나갈 것이라고 한다. 얼마후 정인규, 권순두대원만 빼고 전 대원이 하이캠프에 모였다. 권순두대원이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져서 헤매이고 있다고 해서 장상기대원과 조재철대원을 내려보냈다. 오전 11시쯤 모든 포터가 하이캠프로 올라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포터들의 행렬

내일은 날씨가 좋던 나쁘던간에 무조건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히말라야트레킹사의 무하맛 알리에게 미심쩍은 포터 임금에 대해 자문을 구했는데 그 친구는 이 루트로 여러번 트레킹팀을 이끌고 다녔으며 한국 원정팀에게 아주 우호적인 좋은 친구였다. 무하맛 알리에게 자문을 받고서야 정부연락관의 터무니 없는 포터임금 지급 요구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100만원 이라는 돈을 그냥 날릴뻔 했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포터들의 짐을 21kg으로 다시 패킹하고 내일부터 2일만에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6월 24일(카라반 12일차 - Ali Camp)
오늘은 새벽 3시 30분에 기상했다. 다행히 날씨는 아주 좋다. 05시 간도고로 하이캠프에 도착한지 꼭 1주일만에 드디어 간도고로 패스를 향해 힘차게 크램폰을 착용하고 출발했다. 얼마나 기다리던 등반이던가? 앞서 설벽에 설치해 놓았던 픽스로프와 오늘 나머지 루트에 픽스로프를 설치하면서 약 4시간동안 힘들게 등반하여 드디어 간도고로 패스에 올라섰다. 이 루트는 카라반 루트라기보다는 거의 등반루트에 가까울만큼 험난한 루트였다. 설릉위에 올라서니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룸1, 가셔브룸2, 가셔브룸4, 초코리사 등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이 눈앞에 펼쳐진다.


간도고로패스에서 바라본 장엄한 히말라야산맥의 위용

이러한 기쁨도 잠시 이제는 내려가는 루트가 더 힘든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고 설벽의 하산 경사도가 70~80도에 이르는 곳도 가끔 나타난다. 내려갈때도 역시 위험한 곳은 픽스로프를 설치하면서 내려갔다. 낮 12시경 힘들게 설원지역에 도착했다. 점심도 굶고 무려 7시간만에 간도고로 패스를 넘어선 것이다. 대원들도 포터들도 모두 지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샤그린캠프까지 가야 한다. 포터들을 독려하여 다시 출발한다. 한 두시간만 가면 도착할 것 같은 설원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설벽을 등반하고 있는 포터들

오후 2시 20분쯤 알리캠프라는 곳에 도착하니 포터들이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더 이상 운행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줄줄이 캠프지로 들어가 버린다. 하기야 오늘 장장 9시간 이상 운행을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우리는 알리캠프에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지어 먹었다. 적어도 오늘 샤그린캠프까지는 가야 내일까지 가셔브룸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가 있는데...내일도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하였지만 대원들의 체력이 걱정이다. 대장이 등반 일정을 정부연락관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 같아 염려가 된다. 우리가 간도고로 패스를 넘을 때 설치해둔 픽스로프는 히마라야 트레킹사의 무하맛 알리가 자신의 트레킹 고객들이 사용하고 난 후 철수하여 가셔브룸 베이스캠프로 갔다 주기로 하였다. 저녁 무렵이 되면 항상 다음날의 날씨가 걱정이 된다.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