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10탄

2007. 5. 29. 23:55[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7월 1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6일차 / Camp1-->Base Camp 등반)
6월도 다 지나고 7월의 첫 날이다. 어느덧 출국한지 벌써 한 달 반 가까이 지났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베이스캠프로 내려가기 위하여 맛없는 알파미를 억지로 입에 털어 넣고 장비를 챙겼다. 눈이 녹기 전에 하산하기 위하여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크레바스 지역에 도착하니 점차 크레바스가 발달하여 그 규모가 자꾸 커지고 있고 세락(얼음으로 이루어진 큰 기둥)은 여기저기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크레바스 위험구간 시작 지점에서 올라오는 대원들을 만났다. 서로 격려하고 오전 9시 반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대장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점심때는 권순두대원이 비빔밥을 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대장과 권순두대원, 나 이렇게 세명이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정부연락관 친구들이 와서 자리를 비워주고 우리는 내일 캠프1으로 수송할 장비와 식량을 분류하여 배낭에 패킹하였다. 내일은 이용순대원과 정인규대원이 캠프1에서 캠프2를 건설하러 올라간다고 한다.

7월 2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7일차 --> Camp1 등반)
어젯밤은 베이스캠프에서 잔 덕분인지 기침이 좀 덜해서 편하게 잠을 잘수가 있었다. 새벽 5시에 식량과 장비를 챙겨서 미국팀 캠프로 가니 그들도 캠프1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다 일단 우리 먼저 출발하기로 하였다. 한참 후 세락지대에 도착하여 뒤돌아 보니 저만치 아래서 미국팀이 올라오고 있다. 그들은 정부 연락관까지 포함해서 모두 5명뿐인데 이틀전에야 겨우 캠프1을 건설했다고 한다. 히든 크레바스 지대를 통과한 후 망원경으로 캠프쪽을 올려다 보니 이용순대원과 정인규대원이 캠프2쪽으로 등반하고 있다. 캠프1에서 캠프2 구간은 급경사 빙설벽 지역으로 전구간 픽스로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쥬마링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 구간은 일명 바나나리지라고도 하는데 가셔브룸 2봉의 등반루트중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구간이라고 한다.


캠프1을 향해 등반하던중 미국팀 대원들과 함께 한 컷

한참 올라가는데 스페인 여성대원 1명이 내려온다. 캠프3에 머물다 날씨도 좋지 않고 식량도 떨어져서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정말 좋겠다. 좀 더 올라가다가 성대팀의 김창선씨를 만났는데 그들은 캠프4를 건설한 후 전대원이 캠프4에 하루 머물다가 베이스캠프로 귀환하는 중이라고 한다. 현재 캠프4에는 폭풍설이 몰아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베이스캠프에서 2~3일 휴식을 취한 후 정상공격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가다가 성대팀의 YB대원 2명을 만났고 잠시 후 또 다른 스페인 여성대원을 1명 만났다. 그는 조금 전에 우리가 만났던 스페인 여성대원과 한 팀인데 서로 의견이 잘 안 맞는지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여차하면 솔로로 등반하겠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머나먼 히말라야까지 같이 등반하러 와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 참 오르다 보니 캠프1이 보인다. 오전 11시쯤 캠프1에 도착하니 장상기대원과 박을규대원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용순대원과 정인규대원은 지금 캠프2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권순두대원과 조제철대원이 캠프1에 도착했고 캠프2를 건설한 정인규, 이용순대원은 성대팀의 한상국대장님과 함께 캠프1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모두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 성대팀의 한상국대장님은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오후 3시쯤 미국팀의 정부연락관과 대원 2명이 캠프1에 도착했는데 나머지 2명의 대원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몇 일만에 캠프1에 7명의 우리대원들이 모였다. 저녁 6시 무전 교신에서 권순두, 정인규대원은 내일 아침 베이스캠프로 귀환하고 나머지 5명의 대원은 캠프2를 보강하러 올라가기로 했다.

7월 3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8일차 Camp1 대기)
새벽 4시쯤 눈을 떠니 텐트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오늘 캠프2에 텐트를 1동 더 설치하려고 했지만 짙은 가스와 눈으로 인해 등반이 곤란하다. 아침에 무전기로 아무리 베이스캠프를 호출해도 응답이 없다. 대장이 어제 오랜만에 성대팀을 만나 같이 한 잔한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정인규, 권순두대원과 미국팀 정부연락관은 베이스캠프로 내려가고 나머지 대원들은 하루 더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낮 12시에 대장과 교신하여 내일도 날씨가 많이 나쁘면 베이스캠프로 내려오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캠프2 건설을 완료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현재 캠프2~캠프3 구간에는 등반대원이 한 명도 없다. 아침에 국제팀 2명이 마지막으로 캠프2에서 캠프1으로 내려오고 위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오늘은 종일 눈이 내린다. 날씨라도 좋아야 빨리 등반을 마치고 돌아 갈텐데 걱정이다. 몇 일 날씨가 좋더니 또 날씨가 나빠지려는 것 같다. 미국팀 대장과 대원 1명이 ABC캠프에서 자고 아침에 캠프1으로 올라왔다. 그래서 미국팀은 현재 4명이 캠프1에 머물고 있었다. 하루종일 날씨가 나빠서 꼼짝도 못하고 텐트안에 갇혀서 종일 잠만 잔다. 괜히 나 혼자 잠이 오지 않아서 이팀 저팀 캠프에 기웃거리다가 텐트로 돌아오곤 한다. 저녁에 대장과 교신하여 내일도 날씨가 좋아지지 않으면 무조건 베이스캠프로 귀환하기로 한다.

7월 4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9일차 Camp1-->Base Camp 귀환)
눈을 떠니 눈발이 텐트를 두드리고 있다. 아직 아무도 기상하지 않아서 조금 더 눈을 붙이다가 일어나니 눈은 오지 않지만 온통 가스가 자욱하여 사방을 분간하기가 곤란하다. 국제팀의 여성대원인 세미양이 이른 아침 우리 캠프를 찾아와서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면 같이 동행하자고 한다. 눈도 많이 쌓였고 히든 크레바스도 더욱 발달하여 혼자 내려가기에는 아주 위험할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동행은 가능하나 시간은 맞추기가 어렵다고 하니 그 여성대원은 일단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 참 있어도 날씨는 더 이상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미양은 기다리다가 아침 7시쯤 혼자 먼저 하산하겠다고 한다. 오전 9시쯤 우리대원들도 대장으로부터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고 캠프1을 정리한 후 베이스캠프를 향하여 출발한다. ABC캠프지에 오니 미국팀 2명이 데포시켰던 장비와 식량을 수송하기 위해 배낭을 챙기고 있었다. 우리는 히든 크레바스 지역에 도착해서 서로 안자일렌으로 로프를 연결하였다. 크레바스가 시간이 지날수록 틈이 크게 벌어지고 특히 햇볕이 날때는 히든 크레바스의 공포는 무시무시했다. 11시 반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대장과 대원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점심을 먹고 대장과 성대팀 베이스캠프를 방문하여 한상국대장님과 등반에 대하여 여러가지 의견을 나누다가 캠프로 돌아왔다. 대장 전용 텐트를 1동 더 설치하고 캠프1에 수송할 장비를 파악해 보니 텐트 및 취사장비를 조금 더 위 캠프로 수송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다.

7월 5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10일차 Base Camp 대기)
텐트를 두드리는 눈소리가 나를 잠에서 깨운다. 연달아 3일째 날씨가 좋지 않다. 아침을 먹고 빈둥거리고 있는데 성대팀의 김창선씨가 놀러 왔다. 성대팀도 마지막 공격캠프인 캠프4까지 구축해놓고 악천후로 인해 계속 정상공격을 연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이용순대원이 치통이 있다고 한다. 고소에서는 치질과 치통이 아주 위험하다고 하던데 전문의가 없으니 진통제를 먹는 것 외엔 아무런 처치도 할 수 없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고, 성대팀의 김창선씨와 대장과 대원들은 고스톱을 치고 있으며, 또 어떤 대원은 편지를 쓰고 있다. 이곳 히말라야의 날씨는 한 번 악화되면 그 여파가 일주일씩 지속된다고 한다. 내일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편지라도 좀 써야 겠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부터 감기기운이 약간 있었는데 밤에 잠을 잘때 기침이 많이 나와서 고통스럽다. 고소지대에 장기간 체류하면 일반적으로 심한 기침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난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텐트 창 밖으로 하염없이 내리고 있는 눈을 바라보면서 이번 등반을 위하여 1년 넘게 훈련하던 때를 회상해 본다. 지금 이곳에는 눈이 오고 있어도 우리나라에는 서서히 여름이 가까워 오고 있겠지...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나의 기억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7월 6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11일차 Base Camp 대기)
4일째 눈이 내리고 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눈이 내리면 온 종일 텐트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지금까지 루트를 러셀하고, 픽스로프를 설치하고, 캠프를 건설하였지만 눈이 많이 와서 잘못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캠프1과 캠프2에 설치해 둔 텐트는 눈에 파묻히지는 않았는지.. 또 픽스로프도 모두 눈속에 파묻혀 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오늘도 이용순대원은 치통이 심하다고 통증을 호소한다. 등반을 떠나오기 한 참 전에 치과에서 치료 받았던 이빨이 고소에서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 모양이다. 이곳에서는 치료도 불가능하고 전문의가 있는 팀도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만약 계속해서 상태가 악화된다면 최소한 스카르두까지는 되돌아 가야 할 것이다. 오늘도 나쁜 날씨때문에 속절없이 하루를 낭비 한다.

7월 7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12일차 Base Camp 대기)
연속 5일째 눈이 내리고 있다. 이제는 눈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진다. 텐트 밖을 나서면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순백색의 하얀 눈 밖에 없는 상상을 한 번 해 보라. 그렇다고 또 눈이 하루 종일 오는 것도 아니다. 눈이 좀 오다가 하늘이 잠시 보이다가 다시 눈이 오다가 하는 기상이 반복되니 운행을 할수도 없다. 캠프1에서 내려온지 벌써 5일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국제팀 대원들이 우리 캠프를 방문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여성대원중에 간호사가 있어서 이용순대원 치통도 좀 보살펴 줄겸 겸사 겸사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전문의도 아니고 의약품도 마땅히 없어서 진통제 주사 한 대 처치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국제팀 대원들은 여러나라 사람들이 합동으로 등반대를 조직하여 한 팀을 이루었는데 내가 보기엔 등반능력이 별로 신통찮아 보인다. 점심때는 성대팀에서 핫 케익을 구워와서 우리팀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후내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무미건조한 시간을 죽이고 있다.

7월 8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13일차 Base Camp 대기)
거의 1주일만에 모처럼 기상이 호전될 기미가 보인다. 오전 9시쯤 등반을 나서려고 장비를 챙기고 있는데 성대팀의 김창선대원이 왔다. 그들은 2~3일 후에 등반을 시작할 것이라 한다. 지금 베이스캠프에서 캠프1까지 등반하려면 1주일 가까이 내린 눈 때문에 러셀하려면 굉장히 힘이 들 것이며 또한 히든 크레바스도 더 많이 발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처음 등반하는 팀은 아주 많이 힘이 들겠지만 누군가는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앞장서서 루트를 개척해야만 한다. 장비를 챙기고 나니 갑자기 또 날씨가 악화될 기미가 보인다. 대장이 오늘은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눈이 많이 녹아서 루트도 질퍽거리고 눈사태의 위험도 있고 하니 내일 새벽에 일찍 출발하자고 한다. 이용순대원도 어제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나더니 좀 살만한지 오늘은 표정이 조금 밝아 보인다. 빨리 회복되어야 등반을 할 수 있을텐데..오후가 되니 또 눈발이 날린다. 이놈의 날씨는 도무지 종 잡을수가 없다. 하지만 내일쯤은 분명히 날씨가 호전될 것 같은 현상이 여기 저기 나타난다. 내일 날씨가 좋아지면 우리팀은 이용순대원과 권순두대원만 베이스캠프에 남겨두고 전 대원이 캠프1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물론 다른 팀들도 많이 등반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저녁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보인다. 고도가 높아서 별의 크기가 평소 보던 것보다 거의 2~3배 이상 크게 보인다. 내일은 날씨가 아주 좋을 것 같으며 등반을 시작하면 한 동안 베이스캠프에 내려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가셔브룸2봉의 정상 공격루트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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