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12탄

2007. 5. 29. 23:56[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7월 16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21일차 Camp1 --> Camp2)
오늘은 어제까지 내린 눈이 다소 녹았다가 다시 얼어 설사면이 좀 크러스트 되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우리는 캠프2를 향해서 출발했다. 눈이 내린 바로 다음 날은 눈사태의 위험은 물론 눈이 다져지지 않아서 발이 깊게 빠지기 때문에 운행하기가 아주 힘이 든다. 성대팀의 한상국대장님과 함께 우리대원 4명은 캠프2를 향해 출발한다. 이용순대원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캠프1에 머물고 있고 정인규대원은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가지고 베이스캠프에서 캠프1으로 떠났다고 한다. 캠프2로 가는 바나나리지 루트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고 픽스로프는 눈속에 깊숙히 묻혀버렸다. 조제철대원이 선두에서 러셀을 하는데 덩치는 작아도 무서운 기세로 눈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제까지 너무 많은 눈이 와서 전진속도는 아주 느리다. 캠프2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2시가 가까워진다. 캠프1에서 캠프2까지 오늘은 8시간이 걸렸다. 보통 소요시간의 두 배가 걸린 셈이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눈으로 뒤덮힌 캠프를 복구하고, 저녁을 먹고 내일 캠프3을 건설하러 올라가기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캠프2에는 2번째 등반이라서 그런지 고소증세는 전혀 없었는데 이것은 이미 캠프2까지 고소적응이 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장으로부터 내일 무조건 캠프3을 구축하고 캠프2로 귀환하라는 무전 교신이 날라온다.

7월 17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22일차 Camp2 --> Camp3 --> Camp2)
맛없는 알파미로 아침을 먹고 캠프3 건설을 위하여 캠프2를 출발한다. 캠프2 위로는 더욱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어 무릅까지 눈에 빠진다. 해발 6천미터 이상에서 무릅까지 빠지는 눈을 러셀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고산 지대에서의 등반은 공기중의 희박한 산소 분포로 인해서 쉴새없이 심호흡을 하지만 심장이 터지고 폐가 멈춰버릴 것만 같다. 여러분이 100미터 달리기를 한 직후의 호흡상태보다 더 심하다고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많이 움직여야 두 세발짝 걷고 약 2~3분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작을 하루 종일 반복해야한다고 생각해 보라.


캠프3을 향하여 등반하고 있는 대원들

우리는 캠프3과 캠프4에 각각 설치할 텐트 한 동씩과 취사장비, 그리고 약간의 식량을 배낭에 넣고 올라가고 있다. 캠프3 지역으로 올라가는 중간에는 픽스로프가 없는 아주 위험한 구간이 있었다. 급경사의 설벽을 픽스로프없이 등반 하려니 불안하다. 이 루트에는 눈사태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어서 장비를 설치하느니 최대한 신속하게 통과하는 것이 오히려 안전한 루트였다. 캠프3을 절반 정도 올라가다 뒤를 돌아 보니 캠프1의 이용순대원이 캠프2로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캠프3까지는 적설량이 많아서 예상 소요시간보다 1.5배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고도가 점차 높아지니 고소적응도 새롭게 해야 한다. 약간의 현기증이 있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눈사면을 깎아내고 3인용 텐트 1동을 설치했다. 성대팀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팀의 텐트를 각각 한 동씩 인수 받아서 캠프3에 설치해 두었는데 그 중 1동은 강풍에 날려가고 흔적도 없었다. 캠프3 사이트 10여미터 아래에는 언제 사망했는지 알수 없는 한 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는데 우리처럼 하얀산을 갈망하다 이 먼곳 히말라야까지 와서 돌아가지도 못하고 영원히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주검을 대하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성대팀의 한대장님은 오늘 캠프3에서 자고 내일 캠프3으로 올라오는 대원과 합류해서 캠프4로 진출하여 19일 정상공격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캠프3(6,900m)을 구축하기 위하여 눈을 파내고 있는 대원들(맨 왼쪽이 피츠로이)

우리는 캠프3 구축을 마치고 다시 캠프2로 귀환했다. 캠프2에 내려오니 정인규, 이용순대원과 성대팀이 합동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반찬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이틀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캠프1에서 캠프3까지 우리 대원들이 러셀을 해서 루트를 개척해 놓았다. 오늘은 캠프2에 가장 많은 6명의 우리 대원들이 모였다. 저녁 무렵 무전 교신에서 대장으로부터 우리팀은 정상공격 D-day 를 7월 20일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 겨우 이틀 남았다.

7월 18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23일차 Camp2 --> Camp3)
아침 일찍 성대팀이 캠프3으로 출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을 먹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오니 정인규대원이 고소증세로 인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한다. 나는 정인규대원에게 오후까지 기다려 보고 증세가 호전되면 조제철대원과 캠프3으로 올라오고 그렇지 않으면 캠프1으로 하산하라고 지시하고 나와 장상기, 박을규, 이용순대원 4명은 캠프3을 향해서 출발한다. 어제 고생하며 루트를 개척해 둔 덕분에 오늘은 수월하게 캠프3에 도착한다. 베이스캠프의 대장과 무전 교신을 하니 정인규대원은 고소증세가 호전되지 않아서 캠프1으로 내려가고 조제철대원 혼자 캠프3으로 떠났으며, 성대팀은 4명 모두 캠프4에 도착했다고 한다. 얼마 후 조제철대원이 캠프3으로 올라왔다. 우리팀은 5명의 대원이 캠프3에 도착해 있다. 오후가 되자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금새 하늘이 온통 짙은 구름으로 뒤덮여 버린다. 몇 일 하늘이 맑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또 다시 날씨가 나빠질까봐 대단히 걱정이 된다. 베이스캠프의 대장으로부터 기상이 나빠져서 우리팀과 성대팀 모두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아직은 내일의 날씨를 확인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보자고 한다. 내일 날씨가 좋으면 우리팀은 캠프4로 진출하고 성대는 정상공격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제 성대팀에 우리팀의 캠프4 건설용 텐트를 1동 빌려주었는데 그들은 앞서 자신들이 캠프4에 건설한 텐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우리팀의 텐트를 1동 빌려서 설치한 후 자신들은 하루만 사용하고 우리에게 인도해 주기로 하였다. 또한 먼저 설치한 성대팀의 텐트 1동과 비치해 둔 4개의 침낭도 우리팀이 사용 후 회수해 주기로 하였는데 두 팀 서로 상부상조 하면서 등반을 하므로서 불필요한 체력의 낭비를 줄일수 있어 좋았다.

7월 19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24일차 Camp3 --> Camp4 / 7,350m)
천만 다행으로 오늘도 날씨는 맑게 개었다. 우리 5명의 대원은 아침 일찍 비장한 각오로 마지막 전진캠프인 캠프4를 향하여 출발한다. 캠프3~캠프4 구간은 눈이 크러스트되어 있어서 발이 눈속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높은 고도로 인한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정말 힘이 든다. 캠프4 사이트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이번에는 루트 왼쪽으로 불과 3~4미터 떨어진 곳에 또 한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까만 크램폰 발톱을 위로 향한채 바로 옆에 스러져 있는 주검을 보니 공포감보다는 우리들 자신의 안전이 더 걱정된다. 고도 6,000미터 이상에서는 사람의 시신을 발견해도 운반을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헬리콥터도 6,000미터 이상 비행하는 것은 아주 위험해서 잘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도를 점차 높일 수록 눈과 얼음과 암벽으로 뒤섞인 위험한 구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셔브룸2봉 정상부는 거의 매일 강력한 제트기류를 동반한 폭풍설이 불어대기 때문에 눈이 바람에 많이 날려가서 곳곳에 암벽이 노출되어 있어 그 구간을 통과할 때는 아주 조심하고 긴장해야 한다.


캠프4(7,350m)을 향하여 등반하고 있는 대원들

캠프4 사이트에 거의 도착할 무렵부터 강력한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만큼 바람의 강도가 세고 체감온도는 거의 영하 3~40도에 이르는 것 같다.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시도하니 오늘 아침 성대팀은 정상공격을 시도하여 김창선대원은 이미 등정 후 캠프4로 귀환해 있고 3명의 대원은 현재 정상부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캠프4에 도착하니 김창선대원은 우리팀이 빌려준 텐트안에 혼자 앉아서 나머지 대원들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성대팀의 고어텍스 텐트로 모두 들어 갔다. 바람은 여전히 아주 강하게 불어댄다. 텐트에 바늘만한 구멍만 있어도 사정없이 눈가루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는 텐트안에 비스듬히 누워서 피로에 지친 몸을 잠시 추스린다. 12시쯤 베이스캠프의 무전기에서 조금전에 성대팀 대원 3명이 모두 정상 등정에 성공하였다는 낭보가 날라 온다. 기쁜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나는 대장으로부터 우리팀도 내일 새벽 일찍 결연한 각오로 정상공격에 임할 것을 지시 받는다. 우리는 충분히 분명히 할 수 있다. 오후 3시쯤 성대팀의 한대장님과 대원 2명 모두 캠프4로 안전하게 귀환하였다. 한상국대장님은 더 없이 기쁘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4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에 성공하였으니 얼마나 감격이 벅차겠는가? 그들은 우리가 끓여준 차와 간단한 간식을 먹은 후 일부는 캠프3까지 일부는 캠프1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캠프4에는 하루 종일 폭풍설이 몰아친다. 또한 더 높은 고도로 인해 약간의 두통을 수반함과 동시에 정신도 몽롱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내일 새벽 일찍 정상 공격을 감행하기 위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캠프4에서의 최후의 밤을 위하여 비장한 각오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7월 20일(Gasherbrum Base Camp 도착 25일차 Camp4 --> G2 Top --> Camp4)
정확히 새벽 2시 30분에 눈을 떳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텐트를 두들기고 있다. 답답한 마음으로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시도하니 연결은 되지 않고 가슴은 터질 것만 같다. 몇 차례의 교신 시도 끝에 3시쯤 대장과 교신이 연결되었다. 나는 현재의 기상 상태로는 출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단 대원들을 모두 한 곳으로 불러서 알파미로 죽을 끓여서 먹고 출발 스탠바이 상태에서 오직 바람이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의 대장에게서 거의 20분 간격으로 캠프4의 기상 상태를 확인하는 무전 연락이 온다. 정상 공격일의 기상이 이렇게 나쁘니 대장은 물론 대원들 모두 가슴속이 다 타버릴 것 같이 애간장을 끓이고 있다. 새벽 5시가 가까워도 바람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5시 30분쯤 갑자기 바람 소리가 약해지는 것 같다. 나는 결연한 각오로 대원들에게 가셔브룸2봉 정상을 향하여 출발할 것을 지시하였다. 우리 5명의 전사들은 강풍으로 갈기 갈기 찢겨져 버린 캠프4의 텐트 잔해들을 뒤로 한 채 정상을 향하여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동안 정상 직하 설원을 트레버스 하다보니 베이스캠프와 교신하는 것 조차 까맣게 잊어먹고 말았다. 부랴 부랴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시도하니 대장이 아주 많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삼각 피라미드 지역 트레버스는 정말 힘이 든다.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오로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아이젠으로 설벽을 찍으며 한 손에는 피켈을 잡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차고 오르는 동작을 반복한다. 잠시 뒤를 돌아다 보지만 폭풍설로 인해 시야도 가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차이나리지 초입 안부에 도달하자 제트기류에 몸이 공중으로 날아 갈 것 같다. 초속의 강풍에 체온을 빼앗겨 손끝과 발끝이 떨어져 나갈것 같다. 거의 4시간에 걸친 트레버스가 끝날 때쯤 차이나리지 오른쪽에 작은 커니스(눈처마)가 하나 보인다. 재빨리 다가가서 배낭을 벗고 바람을 피한 후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맛사지 하면서 동시에 발가락도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무려 10여분 이상 맛사지 하고 나니 겨우 손과 발의 감각이 조금 돌아온다. 이러한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정상등정에 성공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다가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던 산악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참 후 장상기 대원이 올라 와서 우리는 함께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차이나리지 출발 지점은 경사가 완만하였지만 조금 더 올라가니 설벽의 경사도가 거의 60~70도에 달한다. 피켈로 피올레망쉬 테크닉을 사용하면서 아주 느린 속도로 한 스텝 한 스텝 침착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이용순, 조제철대원은 우리보다 약 100미터 정도 앞에서 올라가고 있다. 차이나리지 왼쪽 능선은 강풍에 노출되어 설사면이 단단히 크러스트 되어 있지만 슬립의 위험이 많고 오른쪽 능선은 다소 안전하지만 눈이 다져지지 않아서 힘이 많이 들었으며 가끔 돌풍이 불어와서 우리를 혼비백산하게 만들곤 한다. 약 100여미터 뒤에는 언제 올라왔는지 박을규대원이 비디오카메라를 배낭에 넣은채 우리를 따라 올라오고 있다. 고도 7,500미터 이상의 설벽 등반은 한 걸음 전진 후 숨이 막힐 것 같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또 한 걸음 더 전진 후 폐가 터질것 같이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동작을 끊임 없이 반복하며 극한의 자기 내면과 싸워야 하는 고행의 길이었다. 한 순간 뒤로 돌아서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하여도 성대팀의 마흔이 넘은 한상국대장님도 등정에 성공하셨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 용기를 내곤 하였다. 차이나리지를 절반 정도 올라서서 장상기, 박을규대원과 나는 서로 안자일렌으로 연결하고 확보를 보면서 올라가기로 하였다. 혼미한 정신으로 인해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추락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셔브룸의 정수리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오로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끝없이 끝없이 올라간다. 이 길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되돌아 오는 것까지 생각할 여유 조차 없다. 지금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 가셔브룸2봉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얼마의 시간이 경과되었는지 모르는 어느 순간 멀리 정상설원이 나타나고 그 중간에 2개의 까만 점이 올라 가는 것이 보인다. 이용순대원과 조제철대원이었다. 우리 3명의 대원들도 있는 힘을 다해 올라가고 있지만 바로 지척인것 같은 정상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가까스로 정상 직하 100여 미터 전에 설벽에 픽스로프가 설치된 곳에 도착했을 때 조제철대원과 이용순대원이 먼저 등정 후 하산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상에서 1시간 가량 뒤에 오는 대원들을 기다리다 고소장애의 위험때문에 먼저 하산 하겠다고 한다. 나는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당부를 하고 장상기, 박을규대원과 함께 정상 설벽의 픽스로프를 이용하여 몸의 중심을 잡으며 가셔브룸2봉의 마지막 설벽을 통과하여 조심스럽게 한 발 두 발 정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정상 설벽을 통과한 후 마지막 30미터 전에서 후배들인 장상기대원과 박을규대원을 먼저 올려 보내고 나도 이내 뒤따라 올라간다. 가셔브룸 2봉의 정점은 정상 설원의 커니스 지역을 피해서 왼쪽으로 약 30미터 정도 아슬아슬하게 트레버스 해야 했다. 1991년 7월 20일 오후 14시 마침내 우리는 고도 8,035m의 가셔브룸 2봉의 정수리에 도달했다. 배낭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드니 불현듯 목이 메인다. "여기는 G2 정상! 베이스캠프 감 잡아라 오버!" 그 순간 지금까지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던 감정이 폭팔한다. 지금까지 그 얼마나 갈망하고 애태우던 곳인가? 베이스캠프의 무전기에서는 끊임없이 환호성이 들려온다.


히말라야 가셔브룸2봉(8,035m) 정상에 올라선 피츠로이

사방으로 둘러쌓인 히말라야의 인도와 파키스탄, 차이나 산군들이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저 아득한 발 아래 구름바다를 뚫고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룸 1봉, 초코리사등이 도도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우뚝 우뚝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지금까지 이 등반을 위하여 준비하고 고생했던 지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열을 바쳤던가?

우리는 서로 포옹하며 정상에 선 환희를 마음껏 누린다. 캠프4에서 정상까지 오르는데는 8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박을규대원이 비디오카메라로 정상 파노라마를 촬영한 후 나는 태극기와 울산연맹 깃발을 들고 비디오카메라와 사진기로 촬영을 하였다. 정상에서 중국령쪽 차이나산군은 지평선 끝까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것 같은 희고 검은 빙하지대와 겹겹으로 산맥이 펼쳐져 있다.


가셔브룸2봉 정상의 파노라마(구름속 오른쪽은 세계 2위봉 K2 / 왼쪽은 브로드피크)

정상 등정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캠프4까지 안전하게 하산해야 하는 더 위험한 등반이 남아있다. 차이나리지를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파키스탄쪽을 추락하고 왼쪽으로 떨어지면 중국쪽으로 추락하게 된다. 어느쪽으로든 추락하는 날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게 된다. 올라가면서 힘을 다 써버려서 내려오는 길은 더욱 힘이 들고 위험이 뒤 따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했다. 대원들이 서로 로프로 연결된 상태에서는 잘못해서 한 명이 추락하면 나머지 대원들도 같이 휩쓸려 추락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크램폰과 피켈에 의지하여 정확한 동작으로 한 스텝 한 스텝 설벽을 내려선다. 차이나리지를 완전히 내려선 후 우리는 서로 연결한 로프를 풀었다. 서로 로프를 묶고 등반하면 안전성은 있으나 서로 움직이는데 아주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위험지대를 지나자 말자 로프를 풀어버린 것이다. 하산하는 길은 오를 때보다 더 더욱 힘이 든다. 정말 이대로 영원히 제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수도 없이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머리속에는 아직 세속에 남겨둔 희미한 인연의 끈이 거부할 수 없게 조용히 나를 산 아래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캠프4를 향하여 설벽을 트레버스하여 비틀거리며 내려 간다.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 지 3시간만에 우리 대원들은 모두 무사히 캠프4로 귀환 하였다. 우리 대원들은 서로 말 할 힘도 없어서 무언으로 격려하고 물만 한 모금씩 마신 후 베이스캠프에 안전하게 캠프4로 귀환했다는 교신을 한 후 시체처럼 2개의 텐트속에서 곯아 떨어졌다. 오늘 가셔브룸 피크가 무너진다고 해도 지금 우리는 잠자는 것을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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