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1일
텐트밖에서 수런거리는 대원들의 목소리에 잠을 깼다. 어젯밤에는 한결 편안하게 잠을 잘수 있어 좋았다.
시지푸스의 시계처럼 억겁의 세월이 흘러 해가 바뀌는 첫날이다. 사람들은 조망좋은 바닷가나 산위에서 새
해 일출을 보려고 지금 이순간 추위를 무릅쓰고 동녘을 주시하고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내가 이곳 일본 북
알프스에서 새해을 맞이한 횟수가 벌써 세번째이다. 절반의 삶을 지나오면서 난 지끔껏 무엇을 하면서 살아
왔는가? 먼 훗날 인생의 뒤안길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하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이러한 감상에 젖을 상황이 아니다. 오늘 아침 메뉴는 대장이 3일간 무겁게 메고 온 떡꾹을 먹는 날
이다. 비록 조금 무게가 나가지만 낯선 이국에서 맞는 새해 첫날이니 만큼 떡꾹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겨울등반시 눈위에서 먹는 떡꾹은 언제 먹어도 별미이다. 상표녀석이 제일 좋아하는것 같다.^^ 넉넉한 양을
먹어야 만족하는 녀석이지만 등반기간 내내 주먹만한 알파미 한봉지로 한끼를 떼우려니 죽을 맛일 것이다.
아침식사후 텐트밖으로 나가니 하늘이 아주 맑다. 오늘은 반드시 호타카산장까지 가리라 다짐하면서 대원들
의 컨디션을 물어본다. 우리가 캠프를 철수하는 사이 2인조 일본 산악인팀은 벌써 출발 준비를 마치고 막 출
발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문제도 있겠지만 예전에 이곳을
등반하면서 만났던 다른 일본 산악인들도 우리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대체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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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바위지대를 등반중인 대원1 |
급경사 바위지대를 등반중인 대원2 |
뒤돌아 본 니시호타카 리지 |
오늘은 다소 루트가 긴 만큼 서둘러 캠프를 철수하고 출발해야 한다. 오늘 등반해야 할 루트가 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아침 7시 40분 준비를 끝내고 오늘 목적지인 오쿠호타카다케와 호타카산장을 향하여 출발했다.
나는 대원들을 먼저 보내고 맨 마지막 라스트로 출발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다행이다. 원래 일기예보는
오늘까지 그런대로 날씨가 좋고 내일부터 기상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런대로 기상예보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딱딱하게 크러스트된 설벽을 사이트 스텝으로 한 피치정도 올라가니 암설 혼합벽이 나
타난다. 나는 당연히 선등하는 대원이 확보지점에 도착하여 로프를 설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원
들이 모두 확보없이 프리 클라이밍으로 올라간다. 나도 별 생각없이 뒤따라 오르는데 아니 이건 난이도가 장
난이 아니다. 거의 직벽인데다 밋밋한 바위이고 눈도 별로 없어 스탠스가 마땅치 않는 곳이 많다. 자칫 미끄
러지거나 실족하는 날엔 몇백미터 아래로 추락할 위험이 많다.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선두를 불렀다.
그리곤 쌍욕지거리를 내 뱉었다. 로프는 관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느냐고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꼭 로프를 설
치해야 하는 곳임에도 하지않고 가느냐고 등등 하기야 자신들도 무거운 로프를 가지고 다소 어려운 구간을
등반하다 보니 미처 로프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었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말이
통한다고 보는가? 대장인 나로서는 등반보다도 대원들의 안전이 더 염려된다. 비록 등반에 실패하더라도 사
고 없는 팀은 후일을 기약할 수 있지만 등정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상자가 발생한 팀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시 팀을 구성하려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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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능선을 등반중인 대원들 |
폭풍설에 잠겨 가는 오쿠호정상 |
리지에서 확보를 보고 있는 대원들 |
대장의 고함소리에 놀란 태곤이가 황급
히 스노우바를 설치하고 로프를 밑으로 내려 보낸다. 대원들도 그제서야 내심 안도하는 표정이다. 우리는
다다미이와노가시라에 로프를 설치하여 왼쪽으로 트레버스 하여 건넜다. 이 트레버스 구간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반하기에는 다소 위험한 구간이다. 선등자가 먼저 트레버스 하여 로프를 픽스하고 건너가는 것이 좋
다. 다다미이와 노가시라를 지나 계속 믹스 클라이밍지대를 등반해 우리는 고부오네 노가시라에 도착했다.
나는 선두로 나서 설벽을 약 10m 트레버스하여 앞에 보이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섰다. 오늘 등반의 최난구간
인 장다름이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반원형의 장다름은 시커먼 바위덩어리로 우리를 압도하
고 있었다. 나는 출발전에 신호타카 온천에서 노운석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커니스 지형을 주의 깊게 살펴본
후 선두를 내려보내 쇠사슬이 설치된 마지막 볼트에 확보한후 밴드 트레버스를 하도록 했다. 다행이 앞서간
일본인들의 발자국이 나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이곳은 암벽 밴드에 렛지가 있는데 눈이 쌓여
있어 조심스럽게 트레버스해야 하면 자칫 설벽이 붕괴되는 날에는 천길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때문에 쌓인
눈을 발로 2중 3중 조심스럽게 다지면서 스텝을 이동해야 하는데 중간 부분에 마땅한 홀더와 스탠스가 없어
조금 애매하다. 밴드 트레버스가 끝나는 지점은 나이프리지 시작 직전으로 많은 눈이 쌓여 있지만 장소가 좁
아 여러명이 서 있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나는 먼저 도착한 선두그룹을 출발 시키는 한편 후미대원들에게
로프를 회수하게 하였다. 이 장다름을 밴드 트레버스 할때는 먼저 선등자가 배낭을 벗고 조심스럽게 트레버
스 하여 건너간후 스노우바나 피켈등을 이용하여 반대편에 확보지점을 만들어 확보한 후 다시 트레버스해
돌아와 배낭을 메고 건너가는 방법으로 통과하였는데 마지막 라스트는 볼트에 카라비너를 한 개 걸고 로프
를 통과 시켜 한쪽 끝을 자신의 벨트에 묶고 건너가야 한다. 물론 로프가 짧으면 선등자의 확보에 의존할수
밖에 없겠지만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으로 50미터 로프 한동이면 더블 로프 테크닉이 가능할 것이다.
이 장다름 지역 통과는 장다름을 클라이밍하여 넘어서도 되지만 동계등반시에는 아주 위험하므로 가급적이
면 트레버스 등반하는 편이 안전하다. 장다름을 넘어서 반대쪽에서 보면 그 위용에 오금이 저릴 정도로 도
도하게 서있는 그 모습은 등반가들의 혼을 빼놓고도 남을 만큼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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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중 가장 어려운 장다름 암봉 |
고난도의 장다름을 등반하는 대원 |
장다름에 연결된 칼날 나이프리지 |
먼저 출발한 선두가 짧은 나이프 리지 건너편에 확보를 완료하였다는 신호가 온다. 나는 이곳에 설치한 스노
우바와 반대편 확보지점에 로프를 고정하고 대원들을 확보슬링으로 통과시켜 차례로 출발 시켰다. 라스트
는 스노우바를 회수하고 선두의 확보에 의지하며 건너오게 하였다. 다음 루트는 지도상의 로마노미미란 곳
인데 우리말로 "당나귀의 귀"를 일컫는다고 한다. 약 7~8미터의 설벽을 올라가면 왼쪽에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는데 쇠사슬을 지나 넘어서면 볼트에 하강지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대략 80미터를 하강해야 하는데
처음 40m 는 거의 수직벽이라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강할시 아주 조심해야 한다. 40m 한 피치 내려가면
약간 왼쪽으로 볼트를 설치한 두번재 하강지점이 있다 잘못해서 이 지점을 벗어나 내려가면 클라이밍이나
쥬마링을 하여 중간 하강지점으로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한다. 중간 하강지점에서 약간 왼쪽으로 대각선으로
하강하여 작은 안부로 약 5~6미터 올라서면 된다. 또한 첫 확보지점의 하강용 슬링을 바위면이나 암각등에
걸리지 않게 약간 길게 설치하고 카라비너를 한 개 걸어두고 내려가야 로프를 회수 할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
다. 이 지역은 로프 회수시 암각에 걸릴 위험이 많으므로 경험많고 숙련된 대원이 로프를 처리하는 것이 안
전하다. 어느순간 김원수 대원이 하강하다가 중간에 멈추어 서서 움직이지를 않고 있다. 황급히 망원경을
꺼내들고 상황을 살펴보니 하강용 뒷줄이 암각에 걸려 더 이상 로프가 당겨오지 않아 오도가도 못하는 꼴이
되어 버린것이다. 기온은 급강하하고 있고 폭풍설의 징조도 나타난다. 멀리 보이는 오쿠호타카는 이미 폭풍
설 영향에 들었는지 개스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나는 밑에서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지만 당황한 원수는 그
냥 계속 하강하면 안되냐며 고함을 지른다. 저런 xx놈 하면서 나는 고함을 지르며 등강기를 사용하여 로프가
걸린 지점까지 올라가라고 일러준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원수가 천천히 등강기를 사용하여 로프가 걸린
암각에 도착하여 로프를 빼내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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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오네노가시라 피크 |
추위와 허기와 피로에 지친 대원들 |
아무리 험난해도 우리는 간다. |
원수는 거의 사색이 되어 안부로 올라
온다. 우리는 하강용 로프로 100m 로프 2동을 더블로 사용했기 때문에 한번의 하강으로 바닥까지 하강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너무 길다 보니 툭하면 암각에 로프가 걸리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한사람이 밑에서 로프를 잡고 하강하는 대원의 로프가 암각에 걸리지 않도록 당겨주어야 했다. 긴 피치의 하
강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급강하한 기온으로 대원들이 모두 추워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바위옆
의 눈을 눈삽으로 파내고 바람을 의지할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가스 버너를 피워 뜨거운 물을 끓이라고 하였
다. 한 시간 이상 위에서 세찬 바람을 맞고 있는 종열이와 봉진이가 걱정이 된다. 종열이는 옛날 사고의 후유
증으로 왼쪽팔 혈액순환 장애가 있어 고생이 심한듯 했다. 마지막으로 봉진이가 하강하고 난 후 나는 로프를
회수하기 위하여 대원 두명을 설벽을 약 10미터 트레버스하여 로프를 회수하게 하려고 했으나 스탠스가 좋
지 않아 포기하고 내가 직접 로프를 회수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로프가 중간에 걸리거나 회수가 되지 않으
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프의 한쪽 끝을 쥬마에 걸고 살며시 잡아 당기니 로프가 스르륵하고 빠져 나
오는 느낌이 전달된다. 아주 기뻤다. 그래도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조심조심 천천히 로프를 당기기 시작했
다. 한쪽 끝이 거의 다 빠져 나올무렵 그 로프 끝이 떨어지면서 또 다른 암각에 걸릴까봐 긴장하며 천천히 로
프를 잡아 당겼다. 다행히 로프의 끝은 암각에 걸리지 않고 잘 빠져 나왔다. 우리는 꿀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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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서 출발하기 전에 한 컷 |
영화의 한 장면처럼... |
80m 하강전 로프 확보지점 |
이제 어려운 피치는 2피치 60여미터 정도 남았다. 선등대원에게 신속히 등반
하여 확보지점을 설치하게 하고 다른 대원들은 모두 쥬마링으로 등반하도록 했다. 눈으로 덮힌 좁은 봉우리
에 올라서자 이미 시간이 오후 4시를 넘어서고 오쿠호타카 정상은 개스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제는
마지막 위험구간인 나이프리지만 남았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나이프리지에 눈이 많이 쌓여 스텝만 다지면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벌써 어둠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전 대원들에게 헤
드랜턴을 착용하도록 지시하고 오늘밤 12시가 되더라도 무조건 호타카 산장까지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지시
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나이프리지를 안자일렌 등반하기로 하고 선두와 라스트만 벨트에 로프를 묶고
나어지 대원들은 확보용 슬링을 로프에 통과시켜 등반하도록 하였다. 이미 어둠은 나이프리지를 삼키고 오
직 랜턴 불빛만 100여 미터나 되는 로프를 따라 무슨 영화의 한장면처럼 장엄하게 일렬로 늘어서 가고 있다.
나이프리지 끝부분의 큰 봉우리를 왼쪽 중간으로 트레버스하여 올라 계속 전진했다. 대원들은 묵묵히 오직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선두가 오쿠호타카 정상에 도착했다
는 고함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서둘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눈보라는 폭풍설로 변해 있었고 오쿠호타
카 정상에 도착했을때는 얼굴을 제대로 들수 없을 정도로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 치고 있었다. 라스트 이봉진
대원을 마지막으로 전대원이 오쿠호타카 정상에 올라섰다. 기념촬영을 하기 위하여 대원들을 정렬시키고 디
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몇장 찍었지만 과연 사진이 제대로 나올지 의문스러웠다. 세찬 눈보라때문에 대원들
의 얼굴도 제대로 볼수 없을 정도였다.
정상도착의 환희도 잠시 이제 칠흑같이 어두운 설벽을 따라 호타카
산장까지 내려 가야한다. 호타카 산장에서 오쿠호타카 정상까지는 94년 겨울에 등반한적이 있지만 그 당시
또한 야간등반이라서 기억이 희미하다. 태곤이 녀석도 그때 같이 왔었지만 그녀석은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다고 한다. 나는 100m 로프를 선두와 후미를 벨트에 고정시키고 다른 대원들은 역시 로프에 통과시키는 방
법으로 안자일렌하고 서둘러 명환이와 함께 선두에 서서 출발하였다. 폭풍설에 지워져가는 희미한 러셀흔적
을 따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따금 러셀흔적이 끊기는 곳이 나타나면 이리저리 허둥대
며 러셀흔적이나 둥근 페인팅 표식을 찾느라 분주하다. 폭풍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사정없이 안면을 후
려 친다. 한참 전진하다 돌아서서 폭풍설을 피하고 그러한 동작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호타
카 산장을 향하여 내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러셀흔적도 완전히 사라지고 길 표식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
지가 않는다. 나는 당황하여 오른쪽 능선위로 올라가보니 그곳은 완전 절벽지대이다. 옛날 등반했던 기억을
애써 더듬어 보지만 그 당시 또한 야간 등반이었기에 도무지 종잡을수가 없다. 지금 이상황에서 루트를 잃어
버리면 대원들은 모두 사망내지는 심각한 동상에 걸릴것이 뻔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에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때 명환이가 형님 저 멀리 불빛이 보입니다라고 한다. 듣던중 가장 반가운 소리이다. 자세히 보
니 멀리 희미하게 불빛이 보인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지끔쯤 호타카 산장 불빛이 보인다면 바
로 지척에서 보여야 하는데 저 불빛은 아마 키타호타카 산장 불빛이리라. 그래도 다행이 어렴풋이 진행할 방
향이라도 잡을수 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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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설로 뒤덮히는 오쿠호타카 |
폭풍설을 뚫고 정상에 선 대원들1 |
폭풍설을 뚫고 정상에 선 대원들2 |
나는 명환이와 설벽을 유심히 살펴본후 한곳을 택하여 조심스럽게 다운
클라이밍하기 시작했다. 약 10여미터 앞서가던 명환이가 "형님 쇠사슬을 찾았습니다." 라는 아주 반가운 고
함 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제 됐다. 나는 서둘러 명환에게로 다가갔다. 호타카 산장에서 올라오는 마지막
쇠사슬이 설치된 곳이었다. 이제 문제없이 내려갈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쇠사슬을 따라 조금 내려가자 철제 사다리가 나타나고 이어서 연속으로 철제 사다리가 나타난다.
급경사 암벽을 내려서서 명환이와 나는 호타카산장을 찾기 위하여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으나 바로 앞에 보
이는 2층 산장은 모두 문을 닫고 철수했고 눈이 2층 지붕까지 쌓여 있었다. 옛날 기억으로 분명히 산장은 능
선상에 있었으므로 나는 앞서서 눈이 덮힌 2층 산장의 지붕을 밟고 호타카산장을 찾으러 나섰다. 약 50여미
터 가자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호타카산장이 나타났다. 어라 그런데 1층으로 옆으로 돌아 내려가봐도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이럴수가 나는 큰소리로 쓰미마생을 외쳐 보았지만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아~산장이 너무 많은 눈이 덮혀 비상용 불만 밝혀두고 아무도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또 난감해 진다. 나는 한번 더 산장주변을 둘러 보기로 하고 명환이와 함께 설사면을 돌아
올라서 2층쪽으로 올라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산장처마 옆에 피켈이 한자루 꽂혀 있었다. 어 누가 피켈을 버
리고 갔나?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는 순간 눈앞에 눈이 움푹 파인 곳이 보였다. 서둘러 안쪾을 보니 맙소
사! 그곳이 바로 2층 산장 출입문이 있는 곳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너무 서둘러 입구를 찾다보니 그곳을 보
지 못하였던 것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산장의 문을 잡아 당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
는 고함을 질렀다. 바로 그때 안쪾에서 한사람이 문을 덜컥하고 열고 내다보는 것이 아닌가 정말 반가웠다.
그는 일본 산악인이었다. 나는 들어가서 영어로 상황을 이야기하니 대화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
각나는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부르는 칸꼬꾸라는 단어로 나를 가르키니 그제서야 알아듣고 왜 이렇게 늦게
도착 했느냐고 한다. 나는 시간일정상 야간등반을 감행하여 니시호타카리지를 넘어 왔다고 하니 그 사람은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다. 일단 대략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밖으로 나가니 대원들이 아직까지 하강중이다.
그래도 이젠 걱정끝이다. 산장을 찾았으니까 나는 대원들에게 헤드랜턴으로 진행방향을 일러주고 다시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대원들이 혼이 나간듯한 모습으로 하나, 둘 산장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밤 8시쯤 전대원이 산장에 도착했다. 나는 산장안 다다미방으로 들어가 먼저 늦게 도착하여 소란스럽게 하
여 죄송다는 말과 함께 우리팀은 대원이 10명인데 이곳에 다 잘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40대 중반쯤 되어 보
이는 일본인이 2층과 1층 공간을 가리키며 충분히 잘수 있다고 한다. 산장실내에는 약 10여명의 일본인이
자리하고 있었고 3~4명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최대한 정숙하게 장비를 대충 정리하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알파미부터 끓였다. 그사이 나는 20대 초반쯤 보이는 5~6명의 일본인과 40대 중반의 일본인과
함께 우리가 등반한 루트를 지도를 꺼내 설명하니 그들은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나는 내일 하산루트를
물어보기 위해 지도상의 루트를 가르키니 그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원래 우리가 하산하려고 계획한
루트는 호타카 산장에서 신호타카 계곡쪽으로 바로 내려가는 코스인데 그 코스를 계획해두었지만 나 자신도
내심 눈사태가 걱정되는 루트였다. 하지만 작년에 광양 한울산악회의 김황식회장팀이 악천후를 뚫고 무사히
하산하였다고 해서 우리도 그 코스로 하산하기로 계획했었다. 그런데 오늘밤의 폭풍설 징조로 보아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심한 폭풍설이 몰아칠것 같아 걱정이다. 나는 그래서 일본산악인들에게 당신들은 어디로 하산
할거냐고 물어 보니까 자신들은 내일 가라사와-다케 웨스트리지로 하산할 것이라고 하면서 동계시즌 일본
산악인들은 눈사태 위험때문에 호타카 왼쪽 계곡코스는 거의 이용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가라사와 다케 웨
스트 리지를 이용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렇다면 우리팀도 하산루트를 변경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내일
하산한다는 2명의 일본산악인에게 동행을 요청하니 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호타카산장은 겨울에 등반
객들의 응급대피소로 이용되며 주인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산장이다. 물론 동계에는 산장이용료도 없고 자리
만 비어 있다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산장이다. 일본의 산악인을 위한 배려가 부럽다. 우리나라 국립공
원 어디에 그러한 대피소가 있는가? 조금만 돈벌이가 될것 같으면 궁궐만하게 통나무 집을 짓고 어중이 떠
중이 산꾼들도 예약을 받아 무슨 호텔처럼 운영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립공원 산장의 실태가 아닌가?
호타카 산장내부는 담배꽁초하나 쓰레기 하나 흩어져 있지 않았으며 일본산악인들의 수준높은 문화의식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대원들은 늦은 저녁을 먹고 피곤한 몸을 잠시 휴식한후 각자의 자리를 대
강 정하고 가지고 온 소주와 양주로 이곳까지 무사히 등반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간단히 한잔씩 하고나
서 각자의 침낭속으로 들어갔다. 산장 창문밖에는 폭풍설이 웅웅거리는 굉음을 내며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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