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2. 16:50ㆍ[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7월 24일 월요일 17일차
어제의 피로가 누적되어 오늘은 캠프3으로 출발하는 시간을 늦추어 오전 10시쯤 출발한다. 수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스키등반으로 오르다가 이따금 스키를 벗어 배낭에 메달고 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심장은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느라 쿵쾅거리고 휴식하는 빈도도 점점 늘어만 간다. 그에 반비례하여 오르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만 간다. 자주 휴식하면서 간식도 먹고 물도 마시며 오르는데 나는 다시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것 같다. 스키 킥턴을 하다가 몇 번 넘어졌으나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배낭이 무거워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정부대장이 옆에서 지켜보고 고소증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라고 한다. 혼자서 내려가려고 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정부대장이 앞서 올라가던 대장님에게 보고하니 정부대장님과 같이 캠프2로 하산하라고 지시한다. 천근만근인 발걸음을 어렵게 옮기려고 하면 어지러움은 더 심해가고 어느 순간 배낭을 벗고 일어서려고 하다가 그만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하여 스키폴을 짚고 일어서려고 했으나 힘이 없어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며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혼란스러워 진다. 하는 수 없이 눈 바닥에 주저 앉은 자세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잠까지 쏟아진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자꾸 옆으로 넘어지려고 하고 눈꺼풀은 졸음때문에 천근만근이다.
고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잠이 들면 죽는다는 섬뜩한 말이 현실로 나에게 실제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부대장이 다그치는 고함 소리는 메아리처럼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 때 정부대장은 내가 잠들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야기도 하고 고함도 치고 했었다고 하지만 나의 귓가에는 모든 소리가 환청처럼 아련히 들려올 뿐이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캠프2로 내려가면서 부대장이 베이스캠프에 도움을 요청하여 포터를 올려 보내기로 한 것 같다. 캠프2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더 내려가야 하는데 어느 덧 해가 지고 어두워져서 우리는 헤드랜턴을 켜고 내려 갔다. 한참 후 겨우 캠프2 상단에 도착하여 어느 팀의 텐트인지 모르겠지만 아스피린을 한 알 얻어 먹고 다시 내려오기 시작해서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캠프2의 우리 텐트에 도착했다. 서둘러 텐트로 들어가서 누룽지를 삶아서 허기와 추위를 달래고 있는데 짐을 수송할 포터들이 새벽 3시쯤 도착한다는 무전 교신이 온다. 나 때문에 베이스캠프의 단장님과 대원들도 초 비상사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포터들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밖에서 두런두런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텐트 문을 열어보니 포터들이 도착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워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비좁은 텐트에서 같이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다시 죽음보다 깊은 잠의 수렁속으로 빠져든다. (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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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계속 아프다. 하지만 어제와 같이 먹지 않아 쉽게 지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누룽지를 억지로 먹는데 계속 트림이 나온다. 10시경 캠프2를 향해 출발하는데 시작부터 설벽의 경사도가 아주 심하다. 최대한 높은 곳에 캠프3을 설치해야 내일 정상공격에 도움이 된다고 하므로 부지런이 올라간다. 눈사면을 길게 지그제그로 스키등반으로 올라간다. 6,700m정도 도착하여 쉬고 있는데 밑에서 부대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원수형이 고소증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탈진하여 움직일 수가 없단다. 아침에 캠프2를 출발하기 전에 스키를 착용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체하다가 대장에게 잔소리를 들었는데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그때 눈치를 챘어야하는 건데...부대장님이 원수형의 현재 상태로는 혼자서 하산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여기서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동료 대원의 생사가 달려있는데 그까짓 정상이 뭐 중요하겠는가? 대장님이 부대장님에게 원수형을 부축해서 하산하도록 지시한다. 부대장님은 사정상 어렵게 겨우 원정대에 합류했는데 함께 올라가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원수형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할만큼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부대장님이 원수형을 도와서 함께 내려가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하였다고 하니 천만다행이었다.
하산하는 두 대원이 하염없이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하고 끝없이 펼쳐진 눈사면을 오른다. 뒤따라 오르는 덕규형도 많이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캠프3은 캠프2와 비슷하게 급한 눈사면을 지루하게 올라서 언덕이 끝나고 조금 더 올라야 보인다. 오후 늦은 시간에 캠프3(6,900m)에 도착했다. 캠프3은 약간 경사진 설사면에 설치하였는데 캠프2에서 아무 문제없이 교신이 잘 되던 무전기가 여기서는 전혀 교신이 되지 않는다. 역시나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 무거운 GP안테나까지 가져와서 설치했는데 어이없게 캠프3부터 벌써 교신이 안된다니 큰일이다. 캠프1에서 8명의 대원이 출발했지만 도중에 4명의 대원이 포기하고 10명의 대원중에 캠프3까지 도착한 대원은 대장님과 덕규형, 헌남형, 나, 이렇게 4명만이 도착했다. 캠프3의 고도는 GPS 고도계가 6,950m를 가르킨다. 이 곳은 머무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체력소모가 되는 것 같다. 텐트안에서 눈을 녹여 식수를 만드는데는 제트보일 가스버너가 아주 유용했다. 텐트 천정에 메달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텐트 바닥에 물 을 흘릴 염려도 없다. 그리고 이소부탄 가스는 캠프3에서도 화력이 좋았다. 누룽지를 끓여서 즉석국과 함께 저녁을 먹고 내일도 날씨가 좋기를 무즈타가타 여신에게 빌면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고소증으로 인하여 경미한 두통이 발생한다. 내일 아침에는 제발컨디션이 좋아야 할텐데... (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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