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2. 18:33ㆍ[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7월 26일 수요일 19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별로다. 대장님과 나 그리고 김지성대원 이렇게 3명이 짐을 챙겨 캠프2로 향해 출발했다. 대장님과 지성이는 스키로 다운힐 할 모양이다. 나는 컨디션도 문제지만 지친 상태에서 다운힐에 자신이 없어 스키를 배낭에 메달고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캠프3의 장비들을 챙기고 스키까지 옆에 메달고 나니 배낭이 묵직하다. 무거운 배낭으로 말미암아 발이 눈속에 푹푹 빠진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 7천미터 대에서 스키로 다운힐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장님과 지성이는 스키로 다운힐 하면서 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자주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잘 내려오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내려간다. 얼마나 내려 갔을까? 드디어 캠프2가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하는 것 또한 올라가는 것 만큼 어렵고 힘이 든다. 캠프2 에 도착하니 대원은 아무도 없고 베이스캠프에서 단장님이 짐을 수송하기 위해 올려 보낸 포터 2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무전 교신이 되지 않았지만 단장님께서 정확한 판단으로 우리의 운행일정을 예상하시고 포터를 올려보내 캠프 철수를 도와주도록 배려해 주신 겄이다. 캠프2에 도착하자는 즉시 베이스캠프에서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고 계실 단장님께 먼저 무전 교신을 보냈다. 현재 우리는 무사히 등정을 마치고 어젯밤 캠프3에서 머문 후 오늘 대장님을 포함한 3명의 대원이 지금 캠프2에 도착하였으며, 베이스캠프에서 올려보내신 3명의 포터와 만났다고 전해 드리니 단장님은 정상등정에 성공한 우리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주신다.
캠프2 철수 후 나는 계속 워킹으로 하산하고 대장님과 지성이는 여전히 스키로 다운힐 한다. 내려가다 중간지점에 데포해 둔 짐을 회수하고 계속 내려가다 크레바스지대에 도착하니 크레바스 계곡 안쪽에 배낭도 없이 우모복을 입은 여자1명이 환상방황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산하다가 잠시 쉬는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극심한 고산증으로 판단력을 잃은 듯 위험한 크레바스 가장자리쪽으로 들어 서려고 하길래 나는 다급하게 그녀에게 그 쪽은 위험하니 밖으로 나오라고 고함을 쳤다. 그녀는 내가 고함쳐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중국팀의 대원이었는데 영어 회화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내가 어설픈 영어로 이야기해도 잘 알아 듣는 듯 했다. 그녀는 등반 후 자신의 팀과 떨어져서 하산하는 중이었는데 극도의 피로와 고산증으로 인해 판단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듯 했다. 내가 파워젤과 물을 권하자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먹는다. 그녀는 현재의 상태로는 혼자 하산하기가 어려울것 같았는데 주변에는 나 이외에 중국팀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마침 나도 캠프1으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그녀를 부축해서 함께 하산하기로 했다.
그녀는 한쪽 손에 달랑 스키폴만 하나 가지고 있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내려오면서 눈 위에 떨어져 있는 스키폴을 하나 보았는데 아마도 그녀의 것이리라. 그런데 그녀는 왜 마실 식수나 간식도 전혀 없이 혼자 낙오되어 크레바스속에서 헤매고 있었는지 궁금다. 자기팀의 대원이 탈진과 고소증으로 하산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부축해서 함께 하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의문점이 많아도 서로 대화 소통이 잘 안되다 보니 궁금증을 참을수 밖에 없다.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중국어 이름을 가르켜 주었는데 발음하기도 어렵고 고소에서 나타나는 기억력 망각현상 때문인지 들어도 금방 까먹어 버린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우리나라에 대해서 조금 아는 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씩이나 중국어로 고맙다는 뜻인 "쉬세" 를 연발한다. 크레바스 지역을 통과하여 베이스캠프에 무전으로 크레바스에 빠진 중국팀 여자대원 1명을 구조해서 같이 하산하고 있다고 알렸다. 베이스캠프에서 우리팀의 조선족 통역이 중국팀 여자대원과 직접 교신한 후 중국팀 등반대장에게 연락하여 중국팀 등반대장에게 조난당한 여대원이 무슨 내용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중국어로 조난 상황을 설명하는 듯 했다. 중국팀 교신이 끝나고 나서 중국팀에서 구조대를 편성해서 캠프1으로 올려 보낸다고 하면서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달라는 연락이 온다.
나는 그녀를 도와 캠프1을 향해 계속 내려가고 있는데 그녀는 많이 지친 상태여서 약간만 경사가 있어도 앉아서 글리세이딩으로 미끄럼을 타며 내려간다. 나는 그녀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내려가며 이제 캠프1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 말을 듣고나서 그녀도 있는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의 지루한 하산끝에 겨우 캠프1에 도착했다. 얼마 후 대장님과 지성이가 스키 다운힐을 하면서 내려왔다. 걸어 내려오는 것 못지않게 스키 다운힐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베이스캠프에 무전으로 캠프1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고 있는데 내가 구조해서 함께 하산한 중국팀 여자대원이 자기팀 구조대원을 만나 하산 하면서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내려간다. 우리는 캠프1을 철수하여 포터에게 짐 수송을 맡기고 하산한다. 대장님과 지성이는 전진캠프의 오른쪽 설계로 전진캠프까지 스키로 다운힐 하기로 하고 나는 계속 걸어서 하산한다. 전진캠프에 도착하여 캠프를 철수한 후 스키부츠를 벗고 중등산화로 갈아 신고나니 발걸음이 너무 가볍고 경쾌하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아주 홀가분하며 기분도 좋다. 황량한 자갈길을 내려가면서 베이스캠프의 시원한 수박과 메론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뒤를 돌아 전진캠프쪽으로 쳐다보니 설선이 등반을 시작할 때 보다 많이 위로 올라가 있었고 빙하 계곡물도 많이 불어 있었다. 베이스캠프가 가까워지면서 형형색색의 각국 원정대 텐트들이 베이스캠프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 중에 우리팀의 텐트도 보이고, 식당 텐트에 높이 설치해두었지만 무용지물인 흰색 GP안테나도 보인다. 베이스캠프 앞 빙하 개울에 도착하니 단장님과 대원들과 마중을 나와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등반을 끝내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모두가 너무 반가웠고 가슴속에서 벅찬 감동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대원들이 다 같이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헌신적으로 지원해 주었던 다른 대원들이 없었다면 나 또한 정상에 올라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정상 등정의 기쁨과 성과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무즈타가타원정대 모두의 결실인 것이다. (김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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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산이다. 어젯 밤 내린 눈이 스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여 있다. 부대장님과 원수형, 덕규형이 캠프2에서 2차 공격을 위해 대기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캠프3에서 하산 한다. 오전 11시반경 하산을 시작하여 헌남형은 걸어서 내려가고 나는 대장님과 캠프2까지 눈사면을 스키로 길게 턴을 하며 내려간다. 지난 겨울 무주리조트의 얼어붙은 슬로프에서 실시했던 스키등반 훈련이 실전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그때 조금은 위험했지만 과감하게 얼어붙은 슬로프에서 다운힐 훈련을 한 덕분에 웬만큼 크러스트된 눈사면도 무난하게 다운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라갈 때와 달리 지형이 생소하다. 이런 곳을 우리가 올라 왔던가 할 정도로 그 사이 눈사면과 능선의 형태가 많이 달라져 있고 크레바스의 간격도 한층 더 넓어져 있었다. 다운힐을 계속하여 캠프2가 바라 보이는 언덕에 도착한다. 그곳부터 캠프2까지는 설벽의 경사가 아주 급한 지역인데 이제는 스키를 벗지 않아도 웬만한 급경사 설벽을 다운힐 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우리는 길게 크게 턴을 하며 신나게 내려갔다. 캠프2에 도착하니 뉴질랜드팀과 중국팀도 캠프를 철수하고 있다. 하지만 캠프2에 우리팀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베이스캠프와 무전 교신을 하니 먼저 하산한 대원들은 모두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있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단장님이 캠프의 짐 수송을 위해 포터들을 올려 보냈다고 하시길래 주위를 둘러보니 3명의 포터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을 우리에게 무슨 종이 쪽지를 보여 주었는데 단장님이 보낸 편지였다. 내가 이들을 보냈으니 믿고 짐을 맡기고 무사히 내려오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우리와 연락이 불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상황을 예상하여 캠프2까지 짐 철수를 위하여 포터를 보내주신데 대해 감사드리며 그 명석한 판단력에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러 나온다.
사실 캠프를 철수해서 그 짐을 우리가 모두 수송해야할 상황이었다면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오후 2시에 캠프2를 출발하여 바로 아래 짐을 묻어 둔 데포지점에 도착하여 짐을 파내어 포터들에게 인계하고 크레바스 구간 직전까지 스키로 계속 하산 한다. 크레바스 구간에서 스키를 벗고 스노우리지를 통과하는데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오후 4시반경 캠프1에 도착해서 캠프를 철수하고 나와 대장님은 전진캠프까지 스키로 다운힐하고 헌남형은 걸어서 내려간다. 스키장비 데포지점에 도착하여 중등산화로 갈아 신고 일어서려니 다리에 힘이 빠진다. 헌남형이 전진캠프를 철수하고 있는데 내려가서 도와줄 힘 조차 없다.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겨우 일어나 다시 내려간다. 전진캠프를 지나 먼지 나는 자갈길을 내려 오면서 이제 다시는 오지 못 할 길이라고 생각하니 그 동안 힘들었던 훈련과 등반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만 눈물이 핑 돈다. 하지만 이제는 저 산을 뒤돌아 보기도 싫고 산이라는 단어조차도 싫어진다. 등반을 떠나오기 전에 내게 어느 스님의 말씀하셨는데 산을 보고 좋거나 싫다고 말을 해도 산은 그대로일 뿐인데 정작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자신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역시 산은 그대로인데 나 자신의 마음만 상처투성인가 보다. 복잡한 생각과 서글픈 마음으로 몇 발자욱 걷다 쉬었다를 반복하며 내려가니 베이스캠프가 저 멀리 조그만 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세월에 도착할수 있을까 낙담했는데 베이스캠프가 눈에 보이니 저절로 힘이 솟아난다. 저녁 7시 40분경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모두 나와서 그 동안 힘들었던 등반의 노고를 뜨거운 가슴으로 격려해준다. 시원한 수박과 감자로 쓰린 속을 달래고 저녁에는 등정기념으로 염소와 약간의 술을 준비하여 축하파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속도 아프고 힘이 없어 나갈 수가 없어 영주에게 꿀물을 좀 타 달라고 해서 마신 후 누워있었는데, 속이 아파서 식은 땀이 날 정도로 고통스런 밤이 지나간다. (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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