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무즈타가타 해외원정 등반기 11

2007. 6. 2. 17:25[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7월 25일 화요일 18일차
연달아 이틀이나 오후 늦게까지 무리하게 운행한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 피로가 덜 풀린 것 같다. 옆 텐트의 대원들은 아직 자는지 인기척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갔다 왔다. 고소에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캠프3의 아침 기온은 아주 추웠다. 김헌남대원을 깨워 함께 눈을 녹여 식수를 만들어 수통에 가득 채우고 누룽지를 끓여서 아침 준비를 한다. 고소에서는 그나마 누룽지가 먹을만 했는데 오랫동안 충분히 끓이지 않으면 딱딱해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옆 텐트에 있는 지성이와 덕규를 불러서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대원들의 컨디션을 점검해 본다. 그 중 박덕규대원이 조금 피곤한 기색이 보인다. 대원들에게 최대한 배낭을 가볍게 하고 불 필요한 장비는 모두 캠프에 두고 출발하도록 지시한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무즈타가타 정상을 향해서 장도의 발걸음을 내 딛는다. 캠프3에서 출발하기 무섭게 100여m의 급경사 설벽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최대한 천천히 스키등반으로 길게 지그재그로 오른다. 그 벽을 올라서니 다소 완만한 눈사면이 지평선처럼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뒤따라 올라오는 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한 참 기다리고 있으니 모두들 기진 맥진한 모습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이렇게 느린 속도로 올라가다가는 해가 지기전에 정상까지 갔다가 캠프로 복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고도 해발 7,000m를 넘게되면 누구든지 힘들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소가 평지의 1/3 밖에 없다보니 우리 몸이 그 환경에 적응 하려고 이상한 신체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4명의 대원이 모두 도착하여 간식을 먹으며 한 동안 휴식한 후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능선을 향하여 출발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캠프3에서 정상까지 구간은 전 구간중 가장 완면한 설사면이지만 가장 멀고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조바심을 갖고 등반하다가는 십중팔구 몇 백미터 오르지도 못하고 뒤돌아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고 눈앞의 힘든 현실을 내가 원해서 하는 행위이니만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등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어차피 내가 좋아서 선택해서 하는 행위가 아닌가? 우리가 국내에서 훈련 등반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정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꼭대기 위에 가 있으면 몸뚱아리는 마음과 따로국밥 신세가 되어 힘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일종의 마인드 콘트롤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단지 나만의 생각이지만...적어도 10년 이상 열심히 산악활동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고난도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각같아선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7,200m 고도에 진입하여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 올라오던 박덕규대원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너무 힘들어 등정을 포기하고 내려갔다고 김지성대원이 전한다. 그 때부터 약 1시간 후에는 또 다시 김지성대원이 등정을 포기하고 뒤돌아 선다. 대장을 맡은 나로서는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남은 대원은 나와 김헌남 대원 오직 두 사람만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대원들 중에 적어도 4명 이상은 정상에 세우려던 나의 계획은 허무하게 이미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쩌랴 이 상황에서 신의 섭리에 따를수 밖에...등정을 포기한 2명의 대원들은 아직 5천대 초반의 고산등반 경험밖에 없어서 상황 판단이 힘들었을 것이지만 죽음의 지대라 할 수 있는 7,000m 이상의 고산을 등반하면서 등반 포기 여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하며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결정하는 것이 어쩌면 현명하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조난으로 말미암아 동료대원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7천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고산등반가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료대원을 모른척 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만약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던 두 명의 대원들중 누구라도 위급한 도움을 요청했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나와 김헌남 대원중 적어도 한 명은 동료대원을 부축하여 하산했을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뒤쳐진 김헌남대원을 기다렸다가 함께 정상을 향해서 나아간다. 시계는 이미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다.정상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2시간 정도는 더 올라야 할 것 같은데 내려올 시간도 감안해야 한다. 김헌남대원은 지난해 남미 알래스카에 있는 매킨리(6,194m)봉에 도전했다가 초반에 귀에 심각한 동상을 입는 바람에 제대로 등반도 해보지 못하고 하산한 아픈 기억이 있는 대원이다. 그 때문인지 이번 등반에서는 아주 결연한 자세로 등반에 임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저기 멀리 희미하게 작은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혹시 정상이 아닐까? 아니야...정상은 저 봉우리와 비슷한 봉우리를 2~3개 정도 더 지나야 나타난다고 말했는데...정상으로 향하는 루트는 내 짐작과는 달리 거의 90도가량 그 바위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아서 이어진다. 역시 아니구나..헌남아 괜찮니? 나는 걱정이 되어 바로 뒤에 따라오는 헌남이에게 컨디션을 물어본다. 선배님 괜찮습니다.. 라는 한마디에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오른쪽에 있는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서 오르는데 암봉 왼쪽 사면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 봉우리를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니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멀리 또 하나의 작은 바위 봉우리가 보이는데 역시 정상은 아닌 것 같다...도대체 정상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가도 가도 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녕 신기루 같은 이 길은 하늘과 맞닿아 있단 말인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봉우리를 쳐다보면서 올라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저 멀리 앞에 또 다시 3개로 이루어진 작은 봉우리가 보인다. 아...저 곳이 정상이구나..나는 직감적으로 그 봉우리가 정상임을 알 수 있었다. 헌남아 정상이 보인다! 나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헌남이에게 외친다. 마음은 이미 정상을 향해 줄달음치지만 육체는 그를 따라 가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정상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드디어 무즈타가타 정상에 도착했다. 정점에 올라서는 순간 가슴속에 뜨거운 눈물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이곳에서 눈물을 보일수는 없다. 이곳이 아직 나의 진정한 정상은 아니다. 나의 정상은 아직까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는 정상! 베이스캠프 응답하라! 여기는 정상! 베이스캠프 응답하라! 아무리 목이 터지라 불러봐도 무전기는 묵묵부답이다. 베이스캠프에 무전 교신용 GP안테나까지 세워놓아도 별 효과가 없는지 도무지 교신이 되지 않는다. 캠프3에서 정상까지 전 구간이 교신이 불가능하다. 오늘 이 무즈타가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얼마나 오랜 시간 가슴을 졸이며 준비하고 훈련을 해왔던가? 함께 고생하며 동고동락했던 대원들이 몇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정상에 함께 올랐으면 더 없이 행복할텐데 너무나 안타깝다. 또한 그 동안 우리 원정대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선후배 산악인들과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오늘 이 정상 등정의 기쁨을 전해드리고 싶다. 무즈타가타 정상은 약 7~8m 높이의 작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 중앙봉에는 여러가지 표식기 깃발이 꽂혀 있다. 그 중 가운데 봉우리가 주봉이지만 3개 봉우리의 높이가 거의 비슷해 보였다. 우리는 가지고 온 후원단체 깃발을 들고 정상 사진을 촬영한 후 등정의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서둘러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올라온 것 못지않게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서 체력을 많이 비축해서인지 내려갈 때는 염려했던 것 보다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스키로 다운힐 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느린 동착처럼 최대한 천천히 길게 턴을 하면서 내려와야 했다. 스키 다운힐은 아무래도 걸어서 하산하는 것 보다는 단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 번에 긴 구간을 다운힐 하지 못하고 몇 백미터씩 짧게 끊어서 자주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내려와야 했다. 그렇지만 다운힐 하는 동안 내내 내 가슴속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희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산악스키를 이용한 등반을 와서 정상을 등정하고 7천미터 대에서 내가 지금 스키로 다운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 자신을 한없이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캠프3에 도착하니 김지성대원 혼자서 텐트안에 머물고 있었다. 얼마 후 김헌남 대원도 무사히 캠프에 도착하여 누룽지를 삶아 허기를 채우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끝없는 환상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영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세벽 3시나 되었을까. 밤새도록 웅성거리던 중국 상해등산학교팀이 또 부시럭 거린다. 벌써 출발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아침 7시에 기상하여 8시 출발 예정이지만 몸이 천근 만근이다. 이대로 한 반나절 푹 쉬었으면 좋겠다. 텐트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으니 숨쉬기도 곤란하고 머리도 약간 어지럽다. 그 사이 깜빡 다시 잠이 들었었나 보다. 옆 텐트에 있는 지성이가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는지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대장님은 아직까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지 얼굴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 덕규형과 지성이가 우리 텐트로 건너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누룽지 국물에 알파미를 섞어 끓여서 멸치와 쥐포조림 그리고 인스턴트용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는다. 고소에서 먹는 누룽지와 미숫가루의 미세한 가루가 안그래도 호흡이 곤란한 내 목구멍을 자극하여 기침까지 나올 것 같았다. 기호가 당기는 음식은 무겁고 가벼운 것은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식사 후 눈을 녹여 식수를 만들어 수통에 가득 채우고 정상을 향하여 출발할 준비를 한다. 불필요한 장비는 과감히 빼서 배낭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스키씰의 상태도 점검한다. 대장님을 포함한 4명의 대원들은 모두 산악스키를 착용하고 스키폴을 뒤로 밀면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전진한다. 등반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더욱 더 힘이 든다. 우리는 좌우 지그재그로 킥턴하면서 스키 궤적을 남기며 하염없이 올라간다. 가끔 고도계를 보면서 얼마나 올랐을까? 어디쯤일까? 확인을 하면서 오른다.

나는 이번 원정등반에 촬영용으로 방송용 디지털캠코더를 가져왔는데 사이즈가 커서 배낭에 넣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크다. 크기에 걸맞게 무게도 무거워서 아예 삼각대는 텐트에 남겨두고 왔다. 고도가 차츰 높아지니 촬영을 하기위해 배낭에서 캠코더를 꺼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엄청나게 힘이 든다. 멋진 등반 장면을 촬영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은 내 생각과 상관없이 말을 듣지 않는다. 실제 등반하면서 촬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이번에 직접 체험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집에서 TV로 보았던 많은 산악등반 다큐멘터리 장면을 촬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경외감 마저 우러러 나온다. 한 참을 오르다가 잠시 휴식하기로 하고 나는 파워젤을 한 개 먹고 물도 한모금 마신다. 나는 고소 행동식으로 파워젤을 개인적으로 더 준비했고, 맥킨리등반 때 미국에서 구입해 온 에너지바도 추가로 더 가지고 왔다. 그 외 다른 제품들은 내 체질에 잘 맞지도 않는 것 같고 효과도 별로 없는 것 같아 사용하지 않았다. 파워바 리커버리 분말도 내 체질과 맞지않아서 사용하지 않았다. 또 쵸코바나 찰떡파이 등의 간식 종류는 그 속에 함유된 당분으로 인해 몇 개 먹고 나면 나의 체내 성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 같다. 고소에서는 간식 하나라도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으로 잘 선택해야 하며 너무 많거나 모자라지 않게 적당량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 동안 휴식 후 다시 일어나 노란색 표식기를 중간에 두고 좌우로 지그재그 턴을 하면서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덕규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지성이도 올라오는 속도가 많이 느려졋다. 나 역시 휴식하는 시간과 횟수가 차츰 증가하고 부족한 산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섭취하기 위해 숨을 몰아쉰다. 무게 때문에 식수도 1리터짜리 한 통만 가지고 왔기 때문에 혹시나 도중에 물이 모자랄까봐 한 모금 마신 후에는 수통에 눈을 한 웅큼 집어넣고 흔들어 먹은만큼 보충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눈은 쉽게 녹지않고 슬러쉬 처럼 되었는데 차라리 그것이 커피나 딸기 슬러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대장님은 여전히 별 말씀이 없었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지평선 같은 설사면을 향하여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로 올라간다.

해발고도 7,200m 쯤 올랐을때 덕규형에 이어 지성이마저도 더 이상 못 올라 가겠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GPS를 나에게 건네준다. GPS장비를 주면서 내게 간략한 설명 사용 설명을 하였지만 그 고도에서 과연 두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떠했을런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GPS를 받아 배낭 멜빵에 걸고 한 50m 쯤 진행했을 때 GPS화면에 나타나는 LOW BATTERY...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서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덕규형이 먼저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이제는 아직 삼십대 중반인 지성이까지 정상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대원들 중에 지성이와 원수형은 꼭 정상에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원수형은 이미 전날 포기하고 하산해 버렸고.. 이제는 대장님과 나 단 두 사람 뿐이다. 오늘 올라가지 못한 대원들은 기운을 회복하여 2차 공격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은 대장님과 내가 최선을 다해 반드시 정상 등정에 성공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아직도 정상 봉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오늘 아침 새벽에 출발한 중국팀 대원 중 일부인 듯한 2~3명이 우리를 스쳐지나 하산하고 있다. 그 중 한 명은 어제 캠프3으로 올라오는 도중에 허리 깊이까지 크레바스에 빠져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장본인 이었다. 그들은 아래위로 우모복을 껴 입고 비몽사몽간에 허느적거리며 내려가고 있다. 부종으로 얼굴도 많이 부은 듯 하고 저래서 캠프까지 내려 갈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상황이 다른 사람 걱정 할 때가 아닌 듯 하다. 한순간 저 멀리 희미한 봉우리가 보이자 대장님과 나는 기운을 낸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상이 아니고 첫 번째 전위봉 이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앞에 보이는 암봉을 왼쪽으로 크게 돌아서 한 참 가다보니 오른쪽에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났는데 그 역시 정상은 아닌 듯 하다. 2번씩이나 낙담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빠졌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갈 수는 없다. 아직 체력이 충분히 남아있고 현재의 지형으로 보아 적어도 앞으로 20~30분만 더 가면 분명히 정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저 멀리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봉우리가 보인다. 아! 정녕 저 봉우리는 분명히 정상이리라...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이미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면서 서서히 다가가니 맙소사! 작은 봉우리 3개가 불과 7~8m의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왼쪾 봉우리에는 중국팀이 설치한 것 같은 붉은 중국국기가 걸려 있고 중앙봉에는 여러 등반팀들의 표식기가 바람에 세차게 휘날리고 있다. 오른쪽 봉우리에는 아무 표식도 없었으며 굵은 돌이 여러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중앙봉에 올라서니 전면에는 콩그루산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왼쪽 멀리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구불구불 희미하게 보인다. 콩그루산 방향 정상 바로 앞은 천길 벼랑인데 섬뜩하여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멀리 콩그루산 오른쪽으로 길게 펼쳐진 산맥의 파노라마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정상 바로 앞 절벽지대는 폭풍설이 몰아칠 때는 잘못하면 날려 갈 수도 있어 아주 위험하다. 나는 서둘러 정상 주변 파노라마를 촬영하고 대장님과 함께 10여장에 달하는 후원사 및 단체 깃발을 들고 정상사진을 촬영하고 난 후 다시 한 번 정상을 둘러 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곳에 오르기 위해 1년여 동안 했던 많은 훈련과 준비과정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지나간다. 또 함께 고생하면서 훈련하고도 비록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그 대원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과 같은 환희를 맛 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겄이다. 많은 대원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의 일년동안 훈련하면서 준비 했지만 정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별안간 기상이 악화되려고 하는지 저 멀리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정상 등정의 환희을 뒤로 하고 캠프3으로 하산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와 산허리를 감싸고 정상쪽으로 밀려오면서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한다. 내일부터 기상이 악화될 것이라는 기상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조바심이 났다. 넓은 설원에서 짙은 안개구름에 휩싸이면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자칫하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GPS장비 없이는 이곳 무즈타가타 정상을 제대로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원정대원들이 설치해 놓은 표식기가 약 100m간격으로 꽃혀 있지만 화이트아웃 현상이 나타나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또 커니스나 크레바스가 눈에 잘 띠지 않아 운행하는것 자체가 위험하다. 기상이 더 악화되기전에 가능한 빨리 내려가야 한다. 오후 6시가 넘어서 지친몸을 이끌고 겨우 캠프3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대장님과 도중에 내려간 지성이가 텐트에서 쉬고 있었다. 오전에 보고 오후에 만났는데도 너무나 반가웠다. 컨디션 때문에 정상을 불과 200m 앞두고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던 지성이.. 하지만 그는 우리의 등정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나는 텐트속으로 들어가자 말자 무거운 몸을 침낭에 파묻고 오늘 하루 동안의 등반 과정을 반추하면서 심연의 공간으로 추락한다. (김헌남)

----------------------------------------------------------------------------------------------------

아침에 일어나니 속만 조금 쓰릴 뿐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매우 화창하다. 새벽에 중국팀이 먼저 출발하면서 캠프가 왁자지껄 했지만 몸이 말을 안들어 계속 누워있다가 늦게서야 겨우 일어났다. 9시반경 캠프를 출발하니 몇 백미터 구간까지는 경사가 완만했다.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굉장히 시리다. 체감 온도로는 현재 온도를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급경사 설벽 구간을 돌파하여 보다 넓고 완만한 왼쪽 사면으로 방향을 바꾸어 오른다. 덕규형이 차츰 체력이 떨어지는지 계속 뒤로 쳐진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뉴질랜드팀은 어느새 바로 우리 뒤까지 따라왔다. 정말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들 역시 급경사 설벽을 지나 우리가 올라온 루트를 따라서 올라오고 있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루트는 아주 넓고 지루한 설사면의 연속이다. 서서히 오른쪽 능선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능선쪽으로 올라간다. 뒤쳐져 오던 덕규형이 더 이상 등반하기가 힘이 드는지 하산 하겠다고 한다. 내가 대신 해 줄수 없기 때문에 너무 안타깝다. 한참을 올랐을까? 눈사면의 경사가 완만해 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저 눈사면을 올라서면 축구장보다 넓은 눈사면이 끝없이 길게 이어지고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써 있던 다른 팀의 보고서 내용이 생각 난다. 현재 위치의 GPS 고도는 7,300m를 가리킨다. 잠시 앉아 쉰다. 이제 고소등반에 대한 노하우르 많이 터득했다. 고소적응 방법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고 호흡법은 들숨보다 날숨에 비중을 두어 날숨을 깊이 쉬면 들숨은 알아서 깊이 들이켜진다. 나는 수영할 때도 이런 방법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곤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위 산군들의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언어를 현재로써는 찾을 수가 없다. 밑에서 흰구름이 조금씩 위로 올라온다. 정상쪽을 한 동안 쳐다보고 있노라니 그만 종아리의 힘이 빠진다. 아 이제 그만 내려가고 싶다. 아니 사실은 나의 의지력이 약해지고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여기서 그만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바로 뒤에 올라오는 헌남형에게 각종 후원사 깃발과 GPS를 주고 끝까지 함께 등반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 하자 헌남형은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아쉽지 않느냐며 함께 올라가자고 독려했지만 나는 이미 더 이상 올라갈 용기와 의지를 잃었다. 스키씰을 떼어내고 부츠를 스킹모드로 바꾸어 스키 다운힐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스키로 내려가니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캠프3에 도착한다. 배낭을 텐트에 내던지고 스키도 아무렇게나 벗어버리고 텐트속으로 몸을 던졌다. 얼마동안 곯아 떨어 졌을까?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린다. “야 안에 누구 없나 물 좀 줘” 대장님의 목소리다. 눈을 뜨니 시계가 저녁 6시를 가르키고 있다. 정신없이 하산해서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모르겠다. 겨우 몸을 일으켜 남은 물을 드리고나니 많이 피곤하신지 등정 기쁨을 채 나누기도 전에 대장님은 텐트안으로 들어가서 누우신다. 한 참 후에는 헌남형이 무사히 캠프에 도착했다. 그나마 대장님보다는 컨디션이 조금 좋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지만 우리팀이 등정에 성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기뻤다. 서둘러 눈을 녹여서 밥을 해서 허기를 채웠다. 그리고는 또 잔다. 밤 사이 조금씩 눈이 내리는 것 같다. 가끔 우박이 내리는지 다다닥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래도 잔다. 속은 여전히 아프다. 이곳에서 베이스캠프간에는 무전 교신도 안되니 밑에서 기다리는 단장님과 대원들은 얼마나 많이 걱정을 하고 있을지 염려가 된다. (김지성)

----------------------------------------------------------------------------------------------------

아침에 눈을 뜨니 벌써 시계가 9시를 가르키고 있다. 지난 밤 새벽에 올라온 2명의 포터들과 한 개 남은 알파미를 끓여서 4명이 나누어 먹었다. 오늘은 어제처럼 마냥 앉아서 내려갈 수 없어서 억지로 스키폴을 잡고 일어섰다. 다행히 오늘은 아주 천천히나마 걸을 수 있었다. 포터에게 배낭을 맡기고 비틀거리면서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앞서 간 포터들과 점점 더 거리가 벌어진다. 물과 간식이 모두 포터에게 맡긴 배낭 안에 있기 때문에 겨우 소리쳐 불러 물을 마시고난 후 수통은 직접 가지고 내려간다. 크레바스와 스노우리지 지역을 지나 능선 왼쪽으로 한참 내려가니 드디어 캠프1의 모습이 보인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캠프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정부대장이 피곤한 듯 텐트에 몸을 반쯤 걸치고 누워있다. 나는 목이 몹시 아파서 텐트안에 있는 의약품에서 종합감기약을 찾아 먹었다. 텐트 안에 남아 있던 약간의 간식과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나도 부대장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데 순식간에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또 다시 비틀거리며 하산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베이스캠프의 모습이 시야에 나타나고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쉴수 있었다. 5,400m 캠프1을 지나 전진캠프로 내려가는 중간 쯤에 돌로 쌓은 큰 케른에 도착하여 스키부츠를 벗고 데포시켜 놓았던 중 등산화로 갈아 신고 있는데 낯 익은 얼굴이 보인다. 권영주대원이 우리가 걱정이 되어 베이스캠프에서 이곳까지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영주가 가지고 온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부대장은 앞에 먼저 내려가고 나는 영주와 함께 천천히 내려갔다.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는 길은 돌 자갈로 이루어진 길인데 다리에 힘이 없으니 바닥이 더 미끄러워서 몇 번이고 넘어질 뻔 했다. 고도를 낮추면 어지럼증이 금방 회복될 것 같았지만 어지러운 증상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천천히 걸어서 드디어 베이스캠프 직전에 있는 빙하 개울에 도착하니 단장님을 비롯한 대원들이 반가이 맞아 준다. 그 사이 빙하 개울의 물이 불어나서 뛰어 건너다 균형을 잃어 넘어질 뻔 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시원한 수박과 차로 목을 축이고 편안히 앉아서 쉬고 있는데 단장님과 대원들은 정상공격조 대원들과 무전 교신이 되지 않아 모두들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단장님께서 박덕규선배가 7,100m 쯤에서 고소증세로 하산하여 얼마 전에 캠프2를 통과하고 있다는 무전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주신다. 맛있는 김치와 함께 저녁을 먹고 국화차도 마시며 오랜만에 이빨을 닦고 몸을 깨끗이 씻고 나니 아주 개운하다. 저 멀리 능선에서 박선배가 포터를 앞세우고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캠프3에서 곧장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고 하니 모두들 놀라면서 대단하다고 한다. 식당텐트에서 고량주를 한 잔 하면서 정상공격조 대원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다. 단장님께서 내일 새벽 5시에 고소포터 4명을 캠프2로 올려 보내서 정상공격조가 하산하면 함께 캠프를 철수하여 짐을 수송하도록 지시한다. 정상공격조의 무전 교신을 자정이 넘도록 기다려도 여전히 소식이 없어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깊은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김원수)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