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마지막편
2007. 5. 29. 23:56ㆍ[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7월 28일 얼마동안 잤는지 일어나니 낮 12시가 넘었다. 오랜만에 깨끗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몸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다. 한 달 넘게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산위에서 머물다가 도시에 내려오니 이곳이야 말로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개인 등반장비를 정리한 후 장상기, 박을규대원이 병원에서 이용순대원을 모텔로 데리고 왔다. 그 친구는 아직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며 많이 야위어 있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이용순대원은 내일 이슬라마바드로 떠나는데 그 곳에 거주하시는 원사범님이 수지침으로 치료를 시도해 보신다고 한다. 오후에는 샤비르, 창계지(무하맛 알리), 마북알리, 미국팀 모두 만날수 있었다. 특히 샤비르, 무하맛 알리, 마북알리는 이용순대원의 스카르두 병원 입원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니 고맙기 짝이 없다. 우리는 스카르두로 와서 우리팀의 쿡에게 우리가 필요없는 취사장비를 모두 나누어 주고 임금은 내일 아침에 계산해주기로 했는데 정부연락관이 사사건건 개입하려고 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저녁에는 유태인 야크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시설이 깔끔하고 음식맛도 상당히 좋았다. 우리는 모두 17명이 가서 식사를 하였는데 겨우 2,000루피(1루피는 약 40원) 정도의 계산이 나왔으니 아주 싼 편이다. 정인규, 박을규, 이용순대원은 내일 아침 일찍 이슬라마바드로 떠나기로 했고 나머지 대원들은 30일과 31일에 이틀에 걸쳐 나누어서 나가기로 하였다. 스카르두-이슬라마바드 항공편은 한 꺼번에 여러장의 표를 구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가 체류하고 있는 세헤르모텔에서 한국인 승려 한 사람과 트레커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쪽 지역은 대부분 원정팀 아니면 잘 방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대원들은 산에서 한 달이상 굶주리다 도시로 내려오니 모두 식욕이 엄청나게 왕성해져서 음식이 있으면 닥치는대로 먹어 치운다. 지금 이곳 스카르두는 가을 날씨처럼 시원하지만 이슬라마바드는 아직 한 여름일 것이다. 7월 29일 오늘 아침 일찍 정인규, 박을규, 이용순대원은 이슬라마바드로 떠나고, 우리는 실컷 늦잠을 잔 후 아침도 굶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세헤르모텔에서 지프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샹그리라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샹그리라호텔은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는데 제법 멋지고 근사한 곳이었다. 그 곳에는 맑은 호수도 있고 푸른 나무도 많이 있었다. 우리는 부페식을 먹었는데 파키스탄에서 지금까지 먹었던 부페중에서 가장 우리 입맛에 맞았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며 우리는 17명의 인원이 먹었는데 비용이 2,000루피 나왔다. 그 곳은 부유한 파키스탄인들의 고급 휴양지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신혼부부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또 그날은 파키스탄 군 고위장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오기도 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괜찮은 외국산 담배도 구입할 수 있었으며 기념촬영을 한 후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사파리호수로 가서 통닭 바베큐를 해 먹었다. 파키스탄식 통닭 바베큐 요리인데 아주 맛이 좋았으며 물고기 튀김 또한 별미였다. 이 날 저녁은 샤비르, 무하맛 알리, 마북알리 등이 우리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자리였는데 뭐라고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파리호수 역시 맑고 깨끗한 물의 호수로써 규모가 제법 큰 편이며 모텔에서 걸어서 20~30분 거리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실컷 먹고 놀다가 10시가 넘어서야 모텔로 돌아왔다. 대원들 모두 그 동안 굶주린 체력을 보강하려는지 무슨 음식이든지 닥치는 대로 깨끗이 먹어 치웠다. 오늘은 종일 먹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이 난다... 7월 30일 오늘은 5명이 이슬라마바드로 가기로 했는데 어제 스카르두행 항공기 한 편이 결항하여 스케쥴이 연기되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무하맛 알리가 한 두명 정도는 힘써 보겠다고 해서 오전 9시에 성대팀 김창선씨와 우리팀의 권순두대원이 스카르두 공항으로 나갔으나 좌석을 1개 밖에 구하지 못해서 권순두대원은 도로 모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아마도 모두 이슬라마바드로 떠날수 있을 것이라 한다. 아침으로 샌드위치와 달걀 프라이를 먹고 오늘은 수송할 개인 짐과 장비를 정리해서 배낭과 카고 백에 나누어 패킹했다. 한 사람당 무게는 약 30kg가량 되는 것 같다. 오후에는 스카르두 라디오 방송국에서 우리팀의 등반 성공에 대한 인터뷰를 하러 왔으나 별 흥미가 없었다. 내일은 대원 모두가 이슬라마바드로 떠날 수 있으려니 생각 했지만 좌석을 2개 밖에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장과 권순두대원이 먼저 이슬라마바드로 출발하기로 했다. 이곳 스카르두는 고산지역이라 기류가 불규칙해서 항공기의 결항이 잦다고 한다. 실제로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도 정원대비 약 30~40% 만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는 이 산골 도시도 지겨워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 뿐이다. 7월 31일 대장과 권순두대원은 오늘 아침 비행기로 이슬라마바드로 떠나고 이제 스카르두 세헤르모텔에는 우리팀 3명과 성대팀 3명만 남았다. 하릴없이 종일 빈둥거리고 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오전 10시쯤 성대팀의 정부연락관과 스카르두시장 구경을 나갔다. 먼지를 자욱히 뒤집어 쓰고 있는 시장이었지만 상품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중국산 비단, 카페트, 차 등도 있었고 싱싱한 과일, 양배추, 오이, 수박도 있고 인더스강에서 잡은 물고기도 있었다. 짜파티는 1개에 고작 1루피이다. 세헤르모텔에서 스카르두 시장까지 스즈끼픽업을 이용하면 1~2루피면 충분하다. 모텔로 돌아오니 우리팀 정부연락관이 성대팀의 한상국대장님이 빠유 군인캠프에서 다소까지 타고온 헬기운임을 청구한다고 한다. 분명히 태워줄때는 공짜로 태원준다고 했는데 지금와서 헬기운임으로 4,800루피를 내라고 한단다. 웃기는 녀석들이다. 우리팀의 대장과 이용순대원의 헬기 사용료는 약 2,000달러가 될 것이라 한다. 오후 3시경 이슬라마바드의 송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용순대원의 병세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하루 빨리 귀국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비록 등반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으나 아픈 대원이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우울하다. 오늘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 티켓팅이 완료되어 내일은 전 대원이 이슬라마바드로 떠날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또 날씨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저녁에는 모텔에서 로스트 치킨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지금까지 이 모텔에서 먹은 음식중에 가장 입맛에 맞다. 이 나라 특유의 향신료도 가미하지 않고 약간의 양념만 발라 구운 닭고기 요리였는데 아주 맛 있었다. 그기에다 감자와 콩을 섞은 샐러드도 맛이 있었다. 그러나 아침은 거의 매일 토스트와 달걀후라이로 때운다. 대원들 모두 식욕이 왕성해져서 이제는 아무 음식이나 없어서 못 먹는 형편이니 맛 없는 음식이 어디 있겠냐마는...우리팀의 정부연락관이 처음과 달리 요즘은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그런 행동도 한 두번이라야 이해를 할텐데 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지나치고 있다. 현지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 무엇인가 한 참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이곳 스카르두 세헤르모텔을 떠나야 하므로 저녁에 체크아웃하기 위하여 계산을 하니 상당한 비용이 청구된다. 지금까지 숙박료가 7,500루피이고, 음식값이 6,000루피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45만원이 된다. 이 모텔의 음식의 수준이나 숙박시설의 편의성을 감안하면 아주 비싼 편이다. 라왈핀디에 있는 플래쉬만 호텔은 무하맛 알리의 소개로 가면 3~4인실이 1박에 450루피라고 하니 아주 저렴한 편이다. 앞으로 이슬라마바드에 체류하면 그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물가도 이슬라마바드보다 라왈핀디가 훨씬 싸다고 한다. 스카르두 세헤르 모텔은 더블 룸 1박에 500루피를 받는데 3명이 겨우 잘 수 있다. 아무리 산골도시의 모텔이라고 해도 너무 초라한 시설이라서 안락하지가 않다. 내일 수송할 짐이 많아서 화물 오버차지를 물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걱정이다. 비행기도 조그만 24인승이라고 한다. 그나 저나 날씨라도 좋아야 할텐데..이제 스카르두를 떠나면 내 생애 다시 한 번이라도 또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을런지 궁금하다. 8월 1일 7월 한 달도 어느새 끝이 나고 우리나라로 치면 본격적이 여름이 시작되는 8월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하여 2대의 스즈끼픽업을 호출하여 짐을 싣고 스카르두공항으로 갔다. 세헤르모텔에서 스카르두공항까지 스즈끼픽업 비용은 대당 100루피정도 한다. 공항옆 경찰서에 외국인 출국 신고를 하고 수하물 체크를 하니 150~200kg정도 초과되어서 우리돈으로 약 3만원의 오버차지 비용을 물었다. 이슬라마바드까지야 거리가 가까워서 오버차지가 얼마 안되지만 우리나라로 들어갈 때가 문제다. 우리가 이용한 비행기는 40인승 경비행기였는데 겨우 15명만 탑승하였다. 이곳은 항로의 고도가 높고 기류가 험해 매 번 이 정도의 인원만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스카르두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얼마 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잔뜩 흐려있다. 우리가 타고 온 여객기는 너무 작아서 우리의 짐을 그 비행기에 다 싣지 못해 나머지 화물은 다음 비행기에 싣고 온다고 해서 기다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스카르두의 기상이 악화되어서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내일 다시 화물을 찾으러 오기로 하고 이슬라마바드의 다운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했다. 이슬라마바드공항에서 다운게스트 하우스까지 택시비는 150~200루피 정도 한다. 숙소에는 먼저 도착한 3명의 대원들이 있었고 대장과 성대팀의 김창선씨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러 갔다고 한다. 박을규대원이 숙소 가까이 있는 원사범댁에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만들고 있다고 해서 원사범댁을 방문하여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짜장면을 실컷 먹었다. 이제 먹는데는 다들 이력이 날 만큼 정말 왕성한 식욕을 보여준다. 오후에 빈둥거리다가 저녁에는 홀리데이인호텔에 부페를 먹으러 갔다. 한 달 이상 굶주린 대원들을 풀어 놓으니 부페음식이 바닥이 다 보인다. 이 곳 이슬라마바드의 음식점에서는 통상 음식값의 10% 정도를 팁으로 준다고 한다. 8월 2일 어제 찾지 못한 짐을 찾기 위하여 무하맛 알리의 사무실로 가서 마묵 알리와 같이 이슬라마바드공항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직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틀 후에 출국해야 하는데 짐이 빨리 도착하지 않아서 큰일이다. 스카르두에서 정작 짐은 오지 않고 무하맛 알리만 비행기를 타고 이슬라마바드로 왔다. 우리는 함께 지프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대원 모두 파키스탄대사관에서 점심 초대를 해서 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이런일이 있나?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웠다. 저녁에는 현대건설의 따르빌라 댐 건설 현장에 근무하시는 심상욱씨가 맥주 2박스를 가지고 찾아왔다. 가기 전에도 신세를 졌는데 또 이렇게 우리의 등반 성공을 축하해 주시려고 맥주까지 가지고 오신 것이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우리팀은 이렇게 주위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덕분에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저녁식사는 진하마켓내에 있는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에 주문해서 먹었는데 꼬치 요리가 일품이다. 심상욱씨는 우리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늦게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돌아갔다. 8월 3일 오늘은 관광성에 등반종료 브리핑을 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에 2명의 대원은 공항에 화물을 찾으러 가고 2명의 대원은 비행기 표를 예약하러가고, 나와 대장과 장상기대원은 관광성으로 갔다. 관광성 부국장인 시데끼씨가 부재중이라 먼저 경찰서에 출국신고를 하러 갔다. 출국신고는 입국신고서를 반납하고 새로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면 인장을 찍어준다. 관광성으로 돌아오니 성대팀이 먼저 등반종료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 화물을 찾으러 갔던 대원들에게서 오늘도 화물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반갑지 않은 연락이 온다. 내일 모두 함께 출국하기로 되어 있는데 문제가 생겼다. 할수 없이 우선 나와 정인규, 이용순대원이 먼저 출국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용순대원이 아직까지 건강이 많이 좋지 않기 때문에 먼저 귀국하기로 하였다. 관광성 뒤편에 있는 샨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정부연락관의 임금을 계산해 주었다. 샨채 레스토랑은 양파스테이크가 맛이 일품이다. 점심식사 후 관광성으로 가서 브리핑을 시작하였다. 브리핑시에 대원이 한 두명 빠져도 상관없으며 브리핑 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헬기 사용료 때문에 차후 정산을 해야 한다고 해서 원사범님이 대신 해 주시기로 했는데 비용이 1,000달러 정도 될 것이라 하니 우리가 처음 예상했던 비용의 절반인 셈이다. 포항 빠유피크팀은 못된 정부연락관을 만나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마지막에 한 통의 영문 편지를 남겨두고 떠났다고 한다. 대장과 나머지 대원들은 8월 5일 출국하거나 그 보다 더 늦을 수도 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파키스탄 방문 기념으로 진하마켓에 들러 20만원정도 하는 조그만 수공예 카페트를 하나 구입하였다. 파키스탄 수공예품 카페트는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늘은 정부연락관이 저녁을 사겠다고 해서 만리장성이란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래도 역시 중국 음식이 파키스탄 음식보다는 훨씬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정부연락관은 등반기간동안 발생한 서로간의 오해는 대부분 언어소통의 문제로 인한 것 같다고 하면서 서로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등반을 마무리 짓자고 한다. 당연히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팀과 2개월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그는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고 또 우리팀으로서는 그에게 많은 도움도 받았지 않는가? 스카르두에서의 불협화음도 지금 생각해보니 서로간 언어소통의 문제로 말미암아 무엇인가 단단히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못된 정부연락관을 만나서 등반도 제대로 하지 못한 포항 빠유팀에 비한다면 우리팀은 행복한 투정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내일 출국하는 선발대는 고작 400달러의 경비로 일본까지 운항하는 파키스탄 에어라인을 타고 일본에서 1박 후 노스웨스트 항공편으로 갈아타야 한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체재비가 많이 들텐데...이제는 모든 것이 귀찮고 하루 빨리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 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8월 4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대장과 잔류 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정부연락관 차와 택시 1대를 불러서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이동했다. 수하물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표를 받은 후 정부연락관과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인해 출발 시간이 다소 늦어진다는 방송이 나온다. 젠장...기다리는 동안 항공사측에서 주는 아침은 빵 한조각에 음료수 하나다. 오전 7시 20분 발 PK752편 비행기는 오후 12시 30분에서야 겨우 이륙한다. 오후 5시 10분경 비행기는 중국 북경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중국행 승객만 내리고 출발해야 할 비행기가 오늘은 너무 늦게 북경에 도착하여 내일 아침에 비행기가 출발한다고 한다. 황당하기 그지 없다. 덕분에 쉽사리 들어올수 없는 중국땅을 밟아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되는가 보다. 북경 공항의 바닥은 얼굴이 비칠정도로 깨끗하였으며 공항 직원들은 모두 군복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들의 안내로 모든 승객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베이징시에 있는 그레이스호텔로 안내되었다. 우리나라의 중상급 정도 등급인 그 호텔은 서비스도 친절했고 시설도 깔끔하였다. 우리는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객실로 들어 갔다. 난생 처음 뜻밖에 들른 중국땅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잠이 제대로 올것 같지가 않다. 저녁이 부실한지 배가 출출해서 룸 서비스를 불러 약간의 음식과 캔맥주를 몇개 시켜 마셨다. 우리는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오버차지를 300달러나 물었기 때문에 남은 경비라야 현금은 달랑 100달러 밖에 가진것이 없으니 마음놓고 음식을 시켜 먹을수도 없다.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이 이용순대원이 이제 그런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소증세의 후유증으로 인한 두통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고산병에 심하게 노출되면 그 후유증이 몇 년씩 지속된다고 하는데 걱정이 된다. 8월 5일 아침 5시 호텔측의 모닝콜로 일어났다. 프론트에 체크아웃을 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북경공항으로 향했다. 북경의 아침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사방을 볼 수가 없었다. 공항에서 거의 1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비행기를 탑승할 수가 있었다. 이 곳 또한 파키스탄과 같이 느릿느릿한 업무 처리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편이다. 만만디의 대국 중국이라 더 오죽하겠냐만...아침 8시 PK752편은 굉음을 울리며 북경공항을 이륙한다. 북경에서 일본 토오쿄오 나리타공항까지는 3시간 40분 소요되었다. 나리타공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가서 내일 비행기 표를 알아 보았으나 내일은 고사하고 10일 후에나 티켓팅이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체재비용이 아주 비싸다. 3등급 호텔 3인실 하루 숙박요금이 14만원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특급호텔 숙박료보다 더 비싸다. 우리는 일단 공항 가까이 위치해 있는 홀리데이인 호텔을 예약하고 신용카드로 계산을 했다. 호텔 예약은 공항에서 바로 해야 방을 얻을수 있으며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매 시간 셔틀버스가 다녔다. 우리는 호텔로 가서 방을 배정 받은 후 프론트에 한국행 비행기 표를 부탁해 보았으나 결과는 신통찮았다. 그래서 우리는 송대장과 잘 아는 사이이고 서울의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는 권순호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그 역시 현재 시즌에는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나리타공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가서 비행기 표를 알아 보았으나 허사였다. 노스웨스트항공 사무실은 나리타공항 3층에 있고 티켓팅은 4층 북쪽 끝에 위치해 있는 예약창구로 가서 해야 한다. 허탈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오니 대책이 서질 않는다. 비싼 체재비를 허비하면서 무작정 이 곳에 머무르고 있을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는 돈이 떨어져서 저녁조차 밖에서 사온 빵으로 대신했다. 8월 6일 아침 일찍 정인규대원이 비행기 표를 구하러 공항으로 먼저 나가고 나와 이용순대원은 호텔 체크아웃을 한 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나갔다. 정인규대원이 비행기 표가 있다고 빨리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해서 택시를 탄 것인데 호텔에서 공항까지 택시비가 5,000원이나 한다. 일본에서는 모든 비용에 일정 금액의 세금이 포함되어 계산된다. 공항에 도착하니 표는 고사하고 사람들만 붐비고 있다. 우리는 나리타에서 서울을 운항하는 여러 항공사에 확인을 해 보았으나 남는 표는 없었다. 무려 5~6시간을 헤매인 끝에 JAS항공에 좌석이 3개 있다고 해서 얼른 예약을 했는데 표를 예약한 손님이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 나타나는 바람에 좌석을 1개 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정인규대원 1명이라도 보내려고 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또 개인 수하물이 많아서 오버차지를 79달러나 물었다. 자기 짐이 그렇게 많으면서 개인 경비를 10원도 없이 다 써버리다니 이해가 안된다. 짜증이 나려고 했만 꾹 꾹 눌러가며 참았다. 식사를 빵으로 떼우면서 오버차지나 몇 백불씩 물고 호텔비 십 몇만원에..정말 돌아버릴 정도다..JAS항공에서 좌석 2개는 우리나라의 아시아나항공으로 바이패스 시켜 주었지만 아시아나항공 역시 이코노미클래스 좌석은 없고 퍼스트클래스 좌석만 여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코노미석에 비해 일등석은 운임이 1.5배나 비싸다. 빵으로 떼우면서 하루 체재비만 20만원 가까이 드는 판국이라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이 나는 신용카드로 일등석을 2장 끊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시기가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세계 잼버리대회 때문에 이렇게 비행기 표를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공항에서 예약 취소된 좌석을 구하려면 일단 티켓팅을 하고 비행기가 출발하기 1시간 쯤 전에 해당 항공사 창구로 가서 좌석을 배정 받아야 하는데 이것을 웨이팅이라 한다. 일등석은 수하물이 40kg까지 운반이 가능하며 조금 초과되어도 봐준다고 한다. 아시아나 항공기에 오르자 그제서야 정말 그리운 우리나라로 돌아간다는 실감이 난다. 하마터면 토오쿄오 나리타에서 국제 난민이 될 뻔 했다. 두 녀석 모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꼬질꼬질한 옷 차림으로 비행기에 오르니 모두 쳐다본다. 스튜어디스에게 능숙한 영어발음으로 Where is my seat? 라고 하니 Your seat is a first class in the there 라고 대답한다. 아시아나항공인데 우리가 얼굴이 너무 새까맣게 타서 외국인인줄 아는 모양이다. 그런데다가 2개월 가까이 영어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영어는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김포공항에 오후 3시경 도착하여 권순호씨에게 전화를 하니 프라자 모텔에 방을 예약해 두었다고 한다. 모텔에서 승용차를 보내준다고 해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우리는 승합차에 짐을 싣고 모텔로 가니 주인이 벌써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우리는 짐을 들여놓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여태껏 굶주렸던 원수를 갚았다. 귀국해서 나중에 알았지만 몸무게가 무려 7kg 가까이나 빠졌다는 사실을 들으면 왜 매일 먹는 이야기만 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저녁에는 권순호씨가 찾아와서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에서 사용하지 못한 노스웨스트 항공권은 환불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모텔 주인에게 내일 아침 공항까지 짐을 운반할 차를 부탁해놓고 오늘은 푸근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8월 7일 울산이나 부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갔다. 울산행은 좌석이 없고 다행이 부산행은 좌석이 있었다. 신용카드로 티켓팅을 한 후 체크인 할 때 수하물 무게가 초과되어 공항 직원이 오버차지를 물어야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장기간 해외 원정등반을 나갔다 오는 팀이라서 수중에 가진 돈도 없다고 하소연하니 측은한지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역시 한국은 좋은 곳이다. 김포공항에서 울산의 구영철 선배님에게 김해공항으로 마중을 좀 나와 달라고 부탁을 하고 비행기를 탔다. 김해 공항에 도착하니 울산연맹 회장님, 구영철전무이사님, 우리산악회 김갑민 회장님 이렇게 3분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처음 20여일동안 등반을 가니 못가니 할 때 같았으면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훗날 우리가 선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그런 부끄러운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는 2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울산으로 와서 연맹회장님이 사 주시는 회와 점심을 먹고 이용순대원은 연맹회장님과 바로 병원으로 가고 나는 짐을 싣고 회사 사택으로 돌아왔다. 이제 정말 그 지긋지긋한 히말라야에서 속세로 돌아온 것이다. 요즘도 가끔 내가 아직 히말라야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그 날의 기억들을 지우기가 힘들다. 저녁에는 몇 달만에 산악회 모임에 나가서 선, 후배들을 만나고 그 날 부터 몇 날 몇 일 동안 기억이 안 날 만큼 술독에 빠져 살고 있다. (끝) (1991년 8월 한영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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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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