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니시호타카의 별빛과 폭풍설...[1]
2007. 5. 29. 23:58ㆍ[사람과 산]/▒ 해 외 원 정 ▒
니시호타카의 별빛과 폭풍설 이 등반기는 피츠가 2002년 12월 말에 출발하여 8일동안 일본 신호타카지역에 위치해 있는 동계 니시호타카 설암릉 등반기입니다. 그 산의 높이는 불과 3천미터대이지만 혹독한 폭풍설과 루트 전체가 눈과 얼음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리지 좌우는 수백미터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히말라야 등반레벨과 맞먹는 고난이도의 등반대상지 입니다. 피츠는 2000년 겨울에 이미 한 번 도전을 했다가 살을 에는 폭풍설과 3~4미터에 육박하는 폭설로 인해 리지 중간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바 있습니다. 2002년 12월 29일 드디어 D day 이다. 지난 4개월 동안 니시호타카리지를 목표로 전대원들이 밤 낮 없이 훈련하느라 시간 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특히 나는 훈련하랴 등반계획서 작성하랴, 또 일본 현지에 교 통편 예약관계 알아보랴 정말 정신이 없었다. 10명의 대원들이 모두 어젯밤 잠을 설친 것은 말 안해도 뻔 한 노릇이리라. 특히 대원들중 제일 연장자이신 두일 형님은 산악회 사무실에서 최종적으로 배낭을 패킹 해 집에 가져가서 다시 풀어 헤쳐 밤새도록 다시 꾸리곤 하셨다 한다. 그래도 56세란 결코 적지 않은 나이 에 연맹 등산학교를 부부가 나란히 졸업하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산악활동을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 형님이야 말로 진정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란 시를 무색하게 만드는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이다. 나도 그 나이때까지 이렇게 열정적으로 산악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침에 딸아이와 와이프와 함께 공항버스를 탑승하는 태화호텔옆 공항버스 정류장에 가니 벌써 몇 몇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들 얼 굴이 상기된 표정이다. 대원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또 평소에 친분이 있는 산악인들이 배웅을 많이 나왔다. 이번 등반의 대장인 나로서는 상당한 심적부담감이 간다. 10명이란 많은 대원과 평균나이도 40대 초반이라 그동안 히말라야 등반 훈련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을 하였지만 내심 불안하다. 또 절반정도의 대원들이 심설 등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암설빙 혼합등반 능력은 더욱더 걱정이 된다. 그동안 이 모든 점을 고려하여 훈련계획을 세워 비록 눈과 얼음이 없어도 아이젠 워킹훈련과 피켈 사용법, 믹스클라이밍 훈련 등 이번 등 반에 필요한 등반 테크닉을 모두 훈련하였지만 아직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다. 백두일 형을 마지막으로 전대원들이 모였다. 산악회 회원들도 많이 마중을 나왔다. 특히 선근이 녀석은 같이 떠나지 못해 못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니시호타카리지는 등반 난이도가 고소증만 제외하고는 거의 히말라야 레벨이라 대장인 내가 어쩔수 없이 대원선발에서 제외 시켰다. 선근아 미안하다. 다음에 또 등반갈 기회가 있으면 그 때는 꼭 데리고 간다고 약속하마. 8시 10분쯤 김해공항행 공항버스가 왔다. 우리는 배낭을 버스 화물칸에 모두 싣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배웅나온 가족들과 회원들이 차가 떠날때까지 자리를 떠지 않아 다시 차 에서 내려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하곤 하였다. 8시 30분 이제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다. 대원들 모두 버스에 탑승하고 차창너머로 손을 흔드는 환송객들과 7발 8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이별을 나누었다. 드디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 나온다. 아 이제 정말 가는구나 불현듯 2년전 니시호타카 아이노다케에서 기상악화로 분루를 삼키고 목숨을 건 야간 탈출을 감행하던 기억이 뇌리에 떠오른다. 이번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고야 말겠다고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대 자연의 섭리를 그 누가 미리 알수 있으리오. 리더는 극한 상황에서는 빠르면서도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 다. 리더의 판단 여하에 따라 대원들의 생사귀로가 뒤바뀔수도 있는 것이다. 그 때도 과감히 탈출을 시도하 지 않고 등반을 강행했더라면 이번 대원중 그 때 등반에 참석했던 몇 명은 지금 이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 다. 그 당시 우리가 야간탈출을 감행하고 난 다음날 부터 기상이 극도로 악화되어 폭풍설이 3박 4일 동안 몰아치고 약 3미터가 넘는 적설량을 기록해 일본 열도 전체가 눈과의 전쟁을 겪었으며 신간센 고속열차가 불통되는 등 난리가 났었다. 우리도 공항에 너무 많은 눈이 내려 잘못했으면 비행기도 탈수 없을뻔 했었다. 니시호타카리지의 가장 위험한 요인은 첫째가 폭풍설이다. 기상이 돌변하여 폭풍설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체감온도가 영하 40~50도 내려가는 것은 보통이고 또 한가지 문제는 아무곳에서나 탈출할 수가 없다는 점 이다. 전 구간 중 3~4곳을 제외하곤 아예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차라리 탈출루트를 선택하느니 등반을 감행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루트가 험난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잠깐 졸다보니 어느새 김해공항에 다와 가고 있었다. 현재 김해 공항은 공항 사정상 국제선은 임시청사를 쓰고 있었다. 배낭을 트롤리에 싣고 공항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리 출입국 카드를 모두 작성해 갔기 때문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행정담당이 공항세와 문화관광세를 1인당 19,000원씩 납부하고 등반경비를 추가로 10만엔 더 환전하였다. 수하물 수송전에 무전기를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요즘은 무전기가 고가품에 속하 지 않기 때문에 신고할 필요는 없으나 기내 반입은 금지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전기도 수하물 배낭 속에 넣어 화물로 먼저 보냈다. 대원들의 배낭무게가 평균 28~29kg은 되는것 같다. 그래도 2년전의 평균 32~33kg 과 비교하면 약 4kg 정도 가벼워 졌다. 이번에는 등반 식량을 거의 전량 알파미로 준비했으며 간 식도 많이 줄였다. 고난도의 등반에 있어 중량은 최대의 적이나 다름없다. 얼마후 고헌산악회 김명찬 회장 이 이곳까지 마중을 나왔다. 김회장 산악회와 우리 산악회는 사돈간이다. 옛날 우리 산악회 총무였던 여회 원이 고헌산악회 남자 회원에게 시집을 갔다. 그 결혼의 중신아비가 바로 나 자신이다. 신랑될 사람이나 신부 될 사람을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보았을때 두 사람이 아주 잘 맞을것 같았고 바보처럼 두 사람 다 그 당시에는 따로 사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신랑은 2000년도에 울산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에 참 가해 로체정상을 등정하였었다. 그 때 우리 여 총무가 중간에 장문의 연애편지를 보낸것이 신랑의 마음을 움직였던것 같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러다 나 뺨 석대 맞는것 아닌가 모르겠네 하하하 어쨌든 아직까 지는 두사람 다 재미있게 살고 있다. 또한 고헌산악회 회장 와이프도 서로 잘아는 사이여서 그 산악회와 우 리 산악회는 너와 내가 따로 없고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김회장이 고맙게도 집에서 손수 고추장 한통 을 볶아서 가지고 와서 건네준다. 그 양반은 겉으로는 아주 무뚝뚝하고 욕도 잘하지만 속마음은 정말 비단 과 같이 곱고 정도 많고 생각도 깊은 사람이다. 그와 난 거의 같은 시기에 산에 입문해서 아직까지 잠수함 한번 못타보고 지금껏 산중에서 헤매고 있다. 김회장의 환송을 뒤로 하고 우리는 11시쯤 트랩을 밟고 비행 기안으로 들어갔다. 해외 여행을 처음하는 김상표 대원은 사뭇 들뜬 표정이다. 이놈이야 말로 친구따라 강 남 왔다가 정작 친구놈은 등반을 못가고 자기는 등반을 가는 아주 행운아인 녀석이다. 품성이 듬직하고 믿 음직한 녀석이다. 11시 20분 대한항공 KE753기는 굉음을 울리며 김해공항을 이륙한다. 옆자리에 앉은 상 표 녀석이 비행기를 처음타서 못내 불안한지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며 연신 창밖을 내다본다. 하기야 요즘 항공기 사고가 워낙 자주 발생하니까 나 자신도 조금은 염려가 된다. 얼마후 간단한 기내식(양식)이 제공되 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캔맥주도 사양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사실 내머리속에는 온통 이번 등반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 루트를 등반하기에는 대원수가 너무 많은 인원이다. 하지만 모두 열심히 4개월동안 만사 제쳐두고 훈련에 참석했는데 누구는 데려가고 누구는 오지말라고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막판에 아이를 출산하여 어쩔수 없이 등반에 불참하게 된 총무가 생각 난다. 그 친구는 겉으로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이번 등반을 위해 일본어 학원까지 다닐정도로 열심이었는데 한순간의 감정억제 실패(?)로 등반 출발 약 1개월 전에 아이를 출산해 버린것이다. 그것도 년년상으로 말이 다. 그러니 지금 키우고 있는 아이도 아기인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또 아이를 출산하여 누가 돌보아 줄 사람 도 없어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만 것이다. 12시를 조금 넘어 일본 영토위로 비행하면서 보니 창밖으로 먼산 이 눈에 허옇게 덮힌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雪國의 나라 일본은 매년 겨울만 되면 산간지역은 엄청난 눈 이 내린다고 한다. 11시 40분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하는데 입국카드에 일본 현지 연락주소 가 없다고 제동을 건다. 녀석들 전화번호만 있으면 됐지 꼭 주소까지 기록해야 하는가? 옆 게이트에 한 대 원과 출입국 직원이 대화 소통이 안되어 내가 다가가서 우리는 일본에 등산을 하러 왔으며 그 연락처에 있 는 사람은 다테야마에서 산장을 운영하는 한국인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통과 시켜준다. 그런데 이번 에는 한칸 건너 왼쪽 게이트에서 여자 출입국 직원이 대원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내가 다가가서 우리는 모두 같은 팀이며 등산을 하기 위하여 왔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주소를 기입하라고 한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간단하게 산장 이름만 기입해서 건내주니 다른 사람도 모두 쓰라고 한다. @@ 모두 영어로 산장이름을 적고 겨우 통과하였다. 차후 일본으로 가는 팀은 일본 입국카드에 반드시 일본현지 주소와 연락처를 기입해 가기 바란다. 일본인들은 입국 심사때 이 항목을 가장 세밀하게 검사한다. 배낭을 찾아 공항 대합실로 나가니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다테야마 산장에서 온 사람이다. 그런데 안경을 끼지 않아 조대 제씨냐고 물으니 아니고 자기가 노운석이라고 한다. 그 분의 홈 페이지에서 얼굴을 몇번 보았는데 안경낀 모습만 보아 착각을 한 것이다. 우리는 공항앞 도로변에 주차해 있는 25인승 전세버스에 배낭을 모두 싣고 오후 1시쯤 목적지인 신호타카로 출발했다. 차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지난해 한국팀이 6팀이나 니시호타카에 도전했는데 모두 실패하였다고 한다. 이말을 들은 대원들은 기가 죽어 조용하다.^^ 하지만 자 신의 느낌으로 이번 등반팀은 꼭 성공할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한다. 어쨌든 기분 좋은 말이었다. 부탁한 가 스 카트리지의 버너 나사 결합상태를 점검하니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부탁한 1/25,000 지도는 편집한 지도가 아니고 원도라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할것 같다. 중간에 다까야마 분기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 서 가스 카트리지를 추가로 구입하기 위하여 다까야마 KONG 등산 장비점으로 갔다. 그 장비점은 2년전 이 곳에 등반 왔을때 하산하여 도시체재를 하면서 하룻밤 머문 근처 유스호스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어서 잘 아는 곳이었다. 다까야마에서는 유일하게 조금 큰 규모의 장비점이라 한다. 개스 카트리지가 더블 사이즈는 없고 스탠다드사이즈 밖에 없었는데 동계용 노란색 글씨가 진흙색 글씨로 기존의 노란색 글씨와 틀린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가격은 더 저렴한 반면 화력은 더 좋다고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싸고 질좋은 가 스를 추가로 12개더 구입하였다. 나중에야 알수 있었지만 우리는 과도한 연료 준비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반하는데 고생이 많았다. 고참녀석들이 내가 애초에 계산해서 결정한 더블사이즈 가스 14개가 모자랄것 같다고 우기는 바람에 나도 어쩔수 없이 추워서 떠는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 동의를 하였는데 등반 종료시에 보니 절반정도의 가스가 남아 있었다. 무식한 녀석들 아직도 주먹구구식으로 계산을 하다보니 정확한 데이 타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입이 두개라도 할말이 없다. 장비점을 둘러보니 별로 많지는 않아도 장비종류별 로 골고루 구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플라스틱 눈삽이 걱정이 되서 추가로 품질좋은 조립식 눈삽을 2개 더 구입하였다. 아무래도 눈이 많이 오는 나라여서 그런지 눈에 관한 장비는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오후 4시반쯤 다까야마 등산장비점을 출발하여 신호타카로 향했다. 약 1시간쯤 가니 적설량이 점점 많아진 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운석 선생님은 능숙하게 운전을 하신다. 일본에서 이정도의 눈은 아무것도 아니라 고 하시며 하지만 대원들은 차창 좌우로 보이는 것이라곤 순백색의 눈뿐이자 차츰 긴장하는 모습이다. 어디 서 이처럼 많은 눈을 볼수가 있었겠는가 이제 주위가 차츰 어둠으로 뒤덮여 오고 있었다. 노운석 선생님도 직접 운전하여 신호타카온천으로 가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것 같은 산길도로가 어 느 순간 낮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 바로 여기구나 신호타카 버스 터미널 나고야 공항에서 이곳까지 3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나는 서둘러 온돌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세면장 공간에 아무도 없어 재빨리 배낭을 이동하게 하였다. 이곳은 우리의 단골 베이스캠프이다.^^ 화장실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결함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천만이 말씀이다. 이곳은 공중 화장실이지만 정말 깨끗하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을 뿐더 러 결정적인 것은 타일 바닥밑에 온돌을 깔아놓아 호텔수준이다.^^ 날이 어두워지니 눈이 얼기시작하여 선생님이 돌아가실 일이 걱정이된다. 주위의 식당도 문을 닫아 마땅히 저녁을 대접할 곳도 없어 난감해하니 선생님께서 그러지 말고 대원들과 같이 식사하자고 하신다. 역시 산악인은 뭐가 틀려도 틀리다. 나는 대원 들에 신속히 저녁을 짓게 하였다.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짐을 정리하고 불과 30분도 안걸려 먹음직스런 쌀밥을 지어 내놓았다. 노 선생님께서는 대원들의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준비에 혀를 내두르시며 다시한번 나에게 이팀은 다른팀과 무엇인가 틀리다고 말씀하신다. 대장인 나로서는 아주 고마운 이야기이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한 후 선생님을 배웅해 드렸다. 위험한 밤길에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빌면서 우리는 자 리를 정리하고 코인락카에 데포시킬 장비를 분리하고 소주를 한잔 하기로 하였다. 인원이 많다 보니 소주 1.8리터 한병이 순식간이 바닥났다. 좀 모자란 것 같아 한병을 더 먹기로 하였는데 이마저 얼마지나지 않아 동이 났다. 내일 기상시간을 정하고 각자의 침낭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제대로 올리가 만무하다. 새벽 1시쯤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끓여 먹고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수가 있었다. |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메모 :
'[사람과 산] > ▒ 해 외 원 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니시호타카의 별빛과 폭풍설...[3] (0) | 2007.05.29 |
---|---|
[스크랩] 니시호타카의 별빛과 폭풍설...[2] (0) | 2007.05.29 |
[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마지막편 (0) | 2007.05.29 |
[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13탄 (0) | 2007.05.29 |
[스크랩] 빛나는 벽을 향하여...12탄 (0) | 2007.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