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공비 지휘소에 가다...
2007. 6. 4. 17:33ㆍ[알피니즘]/▒ 바람과구름 ▒
지난 겨울 내내 스키등반 훈련 때문에 거의 산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조금 긴 코스로 산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요즘은 산에 올라보면 마치 갈가마귀 떼처럼 수 많은 등산객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검정색 일색의 등산복을 입고 떼 지어 몰려 다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산 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적인 등산 활동은 자연의 심각한 오염과 파괴를 불러 온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심장인 백두대간은 무분별한 집단 산행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 훼손 정도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신문과 방송은 이미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고 오로지 판매부수와 시청률 높이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시민들의 그러한 질곡 된 문화생활을 바로 잡기 위한 계도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원래는 일요일 아침에 몇몇 지인들과 산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산행이 취소되어 산악회 신입회원 교육장소인 문수산에 토요일 저녁에 들렀다가 일요일 혼자 산행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토요일 밤에 문수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10여명의 회원들이 담소를 나누며 오순도순 모여 앉아 있다. 날씨만 좋으면 비박하면 좋은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2인용 고어텍스 텐트를 주차장 한 켠에 설치하고 나서 회원들과 함께 소주 잔을 기울이면서 산악활동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밤은 깊어만 간다.^^ 사실 요즘은 술을 좀 멀리하려고 노력중인 데...오늘은 그 결심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핑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각설하고 이번 여름에는 반드시 날씬한 허리에 쫄 바지와 나시를 입은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ㅎㅎ 아침에 부산한 소리에 텐트에서 일어나니 기온이 많이 떨어져 있다. 텐트 입구가 하얗게 서리가 생겨서 얼어 있었다. 훈련대원들은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자연 암벽 등반을 하기가 어렵겠다고 하면서 방어진에 있는 최병호씨 인공암장으로 훈련 장소를 변경한다고 한다. 아침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암벽 등반이 힘들다고 판단되는 여자 회원 한 명과 같이 신불산으로 워킹을 하러 먼저 출발 한다. 혼자 산행하는 것도 좋지만 어제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 세계가 맑지 못하여 동행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등억온천 단지 입구에 있는 스카이모텔 간판이 있는 곳에 보면 신불산등산로 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그 곳을 따라 약 200미터 정도 올라가면 무료 주차장이 있고 자수정 광산 입구에서 시작되는 신불산 서릉 중간쯤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이 등산로는 옛날에는 없었는데 등억온천 단지가 개발되고 나서 새로 생긴 것 같다. 배낭을 챙기고 등산화를 갈아 신고 고개를 들어 산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산 중턱부터 온 산이 하얗게 눈으로 덥혀 있지 않는가? 전날 종일 비가 올 때 산 위에는 종일 눈이 내렸던 것이다. 아마도 이번 겨울 최대의 적설량인 것 같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맞이하는 하얀 눈은 약간 심술 맞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 동안 제대로 한 적설기 산행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등산로 들 머리에는 벌써 봄의 전령인 얼래지 산나물이 드문드문 눈에 보인다. 겨울은 마지막에 항상 봄에게 심술을 부려 자연이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을 훼방 놓곤 한다. 이 등산로는 아직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조용하다. 시작부터 미경이는 힘들어 한다. 어제 나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고 자신에게만 술을 많이 주었다며 투정을 부린다.^^ 작은 능선을 따라 중간쯤 올라가니 눈이 조금씩 보인다. 오를수록 눈이 많아 진다. 소나무 가지에 붙어 있던 눈이 녹으면서 물방울과 눈덩이가 함께 후드득 소리를 내며 머리위로 쏟아져 내린다. 서릉 주 능선에 가까워 지니 눈이 발등만큼 쌓여있다. 서릉에 올라서 보니 고헌산,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모두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고 봄을 시샘하면서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이렇게 영남 알프스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 흔치 않는데 우리는 아주 행운인 셈이다. 신불산 서릉 리지에는 등산객들이 더러 보이고 바위에 눈이 쌓여있어서 제법 미끄럽다. 신불산 공룡능선 입구에 도착하니 등산객들이 줄을 지어 오르고 있다. 눈에 덥힌 신불공룡능선은 정말 아름답다. 그러나 평소에 즐겨 다니던 바위 위로 난 길은 위험해서 갈 수가 없다. 나 혼자이면 별 문제가 없을 텐데...같이 간 미경이 때문에 우회 길을 따라 오른다. 미경이는 오늘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고 두통도 심하다고 하면서 힘들어 한다. 내가 신불산 정상에 가서 라면을 사 주겠다고 하니 좋아한다. 오래 전부터 신불산 정상에는 일명 내가 마고할멈이라고 부르는 잘 아는 여인이 비닐 움막을 짓고 라면과 동동주를 팔고 있다. 그 여인은 옛날 신불산에 뻔질나게 돌아 다닐 때 산에서 가끔 만났던 여인인데 산에 살고 있는 산 귀신(?)들과 서로 왕래를 하면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오랜만에 찾아 가니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준다. 원래 신불산 정상에는 옛날에 방민혁이라는 산 꾼이 커피를 팔곤 했었는데 오래 전부터 그만두고 이곳 저곳 떠돌다가 다시 돌아와서 지금은 자신의 초가집에서 수도를 하고 있다고 하길래 내가 그 녀석은 아직 한참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하니 마고할멈이 빙그레 웃는다. 내가 술을 한 잔 권하면서 이 잔 마시면 장사 못하는 것 아닌가? 라고 하니 웃으면서 요즘은 주량이 아주 세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동동주 두 잔 만 마셔도 취했지 않냐고 하니 술 장사를 하다 보니 술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신불산 정상에는 수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그 중에서 나와 인연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월 재로 하산하는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간월 재 방향 갈림길에서 우리는 공비지휘소가 있는 능선을 따라 직진한다. 이 등산로는 공비지휘소를 거쳐서 파래속폭포로 이어지는데 이 코스 또한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루트이다. 공비지휘소란 지명은 6.25때 이 산속에서 활동하던 공비들을 홍길동이란 공비두목이 주변 산세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서 지휘하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동족상쟁의 가슴 아픈 비극이 지금까지 아니...영원히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공비지휘소 전망대에 올라서서 나도 두목이 되어 마음속으로 우렁차게 외쳐본다. 공비지휘소 전망대에서 파래소폭포까지는 급경사의 내리막 길이 계속된다. 오후 2시 반경 파래소폭포에 도착했다. 폭포에는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되돌아서 간월 재로 가기 위해 왕봉골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왕봉골은 계류가 맑아서 물색이 완전히 비취 빛 색깔이다. 계곡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여분 올라 가다가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작은 코펠에 라면을 2개 끓이고(실은 코펠이 너무 작아서 2군데 나누어 삶아서 합침^^) 신불산 마고할멈에게 얻은 김치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지만 인체는 정직해서 먹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쉽게 지쳐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왕봉골은 가을에 오면 경치가 아주 멋질 것 같았다. 한참 계곡 옆 등산로를 따라서 오르다 보니 신불산 자연휴양림 상단 휴양림이 보인다. 산 중턱 임도 에서는 지난 수해로 유실된 임도를 복구하느라 중장비 소리가 요란하다. 한심하게 쓸데없이 임도를 개설하여 자연을 파괴하여 산 사태가 나자 다시 국민의 혈세를 들여 임도를 복구하는 몰지각한 행정 관료들을 생각하면 정말 염증이 난다. 신불산 상단 휴양림만 해도 그러한 시설을 심심산골 계곡 바로 옆에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그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임도를 개설하고 자연을 훼손하였을까? 과연 그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한 해에 몇 사람이나 된단 말인가? 첩천 산중 계곡 옆에 길을 닦아 보도블록까지 깔아 놓은 길이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휴양림 매표소에서 간월 재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는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간월 재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다. 미경이가 점차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직도 두통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고통을 호소한다. 휴양림에서 간월 재까지는 임도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벌써 오늘 산행을 한 시간이 7시간이 지나고 있으니 힘들만도 하다. 가냘픈 몸매치곤 미경이의 산행 실력이 대단하다...지난해 고난도의 원정훈련에도 참가해서 거뜬히 완주한 체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나마 걱정이 덜 된다.^^ 간월 재에 올라서니 때 늦은 눈 구경을 하기 위해 올라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임도가 없었을 때 이 간월 재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차량이 올라오고 많은 사람들이 억새를 밟아서 이제는 간월 재 억새 밭이 볼품없이 변해 버려서 가슴이 아프다. 그나마 최근에 와서 많은 돈을 들여서 목재 데크를 설치하고 억새 밭에 보호 울타리를 하여서 다행이다. 간월 산장으로 내려서는 임도에도 눈이 하얗게 덮여서 아주 미끄럽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미 모두 하산하고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동호인들만 몇 사람 보인다. 무덤 정도 내려오니 산악회 총무가 몇 시쯤 울산에 도착할 수 있는지 연락이 온다. 아마 빨라도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빨리 오라고 한다. 나는 먼저 내려가서 차량을 가지고 오기로 하고 앞서서 내려갔다. 출발 지점에 가서 차량을 가지고 간월산장으로 올라오니 미경이가 입구에 서서 배시시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하루 종일 괴롭히던 두통이 하산과 함께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날으는 새는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미경이가 선배님은 어떻게 이렇게 오랜시간 동안 산행을 해도 바지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다니시나요 하고 묻길래...ㅎㅎㅎ) 오늘 9시간 정도 산행 했으니 1주일 동안은 산에 가고 싶은 갈증이 좀 덜 나지 않을까 싶다... 주)미경이는 본인 산악회의 재무담당을 맡고 있는 여자 회원임.
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메모 :
'[알피니즘] > ▒ 바람과구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다." (0) | 2007.06.04 |
---|---|
[스크랩] 야간 단독 산행 (0) | 2007.06.04 |
[스크랩] 야간 산행... (0) | 2007.06.02 |
[스크랩] 삼태봉 근처까지... (0) | 2007.05.30 |
[스크랩] 무룡산에서~토함산까지(일명 `태화북기맥`이라고도 함) (0) | 2007.05.29 |